사랑의 네 단계
 
<하나님의 사랑>, 클레르보의 베르나르 저, 엄성옥 역, 은성

오늘날처럼 사랑이라는 단어가 진부하고 공허하게 사용되던 때가 또 있을까? 12세기에 베르나르라는 영성가가 있었다. 그는 사랑의 의미가 하찮아지고 변질되던 당시 시대 속에서 사랑의 본질에 대하여 깊은 숙고를 했던 사람이다. 사랑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위해 유익한 조언을 많이 남겼던 그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짧은 책에서 네 가지 차원의 사랑을 기술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단계를 설명한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 사랑이 깊어지고 성숙해지는 네 단계와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의 첫 번째 차원은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현대인들 사랑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수고한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 자신을 위해서 주위 사람이나 상황을 통제할 때도 있다.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보살피는 것, 모두 필요한 일들이며 좋은 것들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훨씬 복잡하다. 어찌 할 수 없는 일들이 찾아오고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 자신이 던져졌음을 깨닫게 된다. 그때 사람은 누군가를 찾는다. 가족이나 친구가 그 대상이 되기도 하고 신이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랑의 두 번째 차원은 “자신을 위해 타인을 사랑하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며 중요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가족이 생긴다. 함께 하는 시간도 많고 감정의 강도도 가장 강한 이들이다. 그리고 동료들, 친구들이 생긴다. 우리는 이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그들을 소중히 여기지만 또한 그들로 인해 상처를 입고 갈등을 겪는다. “당연히 당신을 사랑하지” 말한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속은 훨씬 복잡하다. 

엄마 아빠는 자녀에게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이가 잘되길 바라고 아이를 위해 헌신한다. 그런데 어느날 자신이 사랑이라 부르는 그것을 깊이 들여다보았더니 그 중심에 ‘자기 자신’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애가 타는 것도, 땀을 흘린 것도, 헌신했던 것도 깊은 곳에 있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었다. 선을 베풀며 기도도하지만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결국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임을 발견한다. 현대인이 사랑이라 부르는 대부분의 경우가 첫 번째 두 번째 차원의 사랑이다. 

사랑의 세 번째 차원은 “그를 위해 그를 사랑하는 것”이다. 가족이 되었든, 이웃이 되었든, 공동체가 되었든, 사람에게는 이따금 자신을 위해 타인을 사랑하다가 어느 순간 그를 위해 그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 사랑도 배워가는 것이라 더 온전한 사랑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두 번째 세 번째 차원이 달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심이 달라졌다. 그 존재를 있는 그대로, 내가 중심이 아니라, 그를 위해서 그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랑이다. 

인도 캘커타의 빈민가에서 죽어가는 행려병자들을 돌보았던 마더 테레사의 고백이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대단히 특별한 것을 뜻하는게 아닙니다. 단순한 받아들임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이고, 그분께 헌신했음을. 그러므로 그분이 나를 어디에 두시든지 상관없습니다. 그분은 나를 도구로 쓰실 수도 있고 안 쓰실 수도 있습니다. 나는 전적으로 주님께 속해 있기에 나를 어떻게 하시든지 문제 삼지 않습니다.” 자기를 잊어버리는 사랑이다. 

사랑의 네 번째 차원을 12세기 영성가 베르나르는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라 했다. 자신에게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러나 이것은 처음 자신을 위해 자신을 사랑하던 그때의 ‘자신’이 더 이상 아니다. 사랑 안에서 참 자기로 살아가는 것이라 할까? 사실 기독교 전통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과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것을 분리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깊이 알아갈수록 인간은 자기 존재를 진정으로 알게 된다. 사랑도 같다. 진실된 사랑은 나를 더욱 나 자신이 되게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사랑으로 지어진 존재, 우리 본질이 하나님을 닮아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다. 우리가 진실된 사랑을 배워갈 때 우리는 “아, 나의 참 모습이 이것이었구나” 깨닫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으로, 사랑받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 나의 사랑이 더 깊어지고 성숙해지기를, 촛불 하나 켜고 기도하고 싶은 밤이다.

백광흠 목사(한무리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