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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026-이 시대의 큰 스승, 김홍도김홍도 목사야말로 이 시대의 큰 스승 아닌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장경현  |  claremontkr@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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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1월 30일 (목) 00:00:00 [조회수 : 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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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교회를 섬기는 장경현입니다. 그동안 감리교 자유게시판과 영등포교회 홈피, 그리고 희망연대 게시판에 글을 올렸었는데...  앞으로 이 곳에도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같은 글 여기 저기 올리는 것이 모양이 좋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제 글을 올려 주었던 희망연대 게시판도 지금은 없어졌으니 한 군데 더 싣는다고 해도 그렇게 욕을 먹지는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이전에 뉴스앤조이 부탁으로 썼던 글인데)... 당당뉴스의 첫 글로 올립니다.]


061026- 이 시대의 큰 스승, 김홍도

들어가는 말:

   
▲ 시청앞에서의 김홍도목사
일면식도 없는 김홍도 목사와 관련해서 그 동안 여기 저기 쓴 글이 여섯 편입니다. [2003년 1월 11일과 15일에 쓴 “시청 앞 기도회 철회 바랍니다” 와 “시청 앞 기도회 철회 바랍니다2,” 같은 해 9월 19일에 쓴 “김홍도 목사: 철인에서 참주까지,” 2006년 4월 16일과 28일에 쓴 “아~ WMC” 와 “아닌 것은 아니랄 밖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법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형을 받은 그가 감리교회의 법에 따라 ‘기소유예’를 받은 모습을 보며 2006년 10월 13일에 쓴 “눈 좀 뜨자 구요” 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섯 편입니다.]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감리교회의 한 ‘거물’(혹은 ‘괴물’)을 보면서 (그 동안 쓴 글을 정리하며 그리고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총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는 이 시대에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큰 스승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에게서 다섯 가지 정도의 가르침을 얻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1. 김홍도, 철인에서 참주까지-삶의 자리매김을 배우다!
첫 번째 가르침은 그를 통해 한 인간이 타락해 가는 온 과정을 유감없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인간의 혼에 반영된 심성을 나라의 정체에 비유해 다섯 가지로 설명하면서 점차?타락해 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철인정체(政體), 곧 ‘최선(最善)자의 정체’가 타락함으로 오는 ‘명예 지상(지배)정체,’ ‘명예지상(지배)정체가 타락함으로 오는 ‘과두정체,’ ‘과두정체’가 타락함으로 오는 (자유방임형) ‘민주정체’ 그리고 ‘민주정체’에서 필연적으로 파생되는 ‘참주정체’가 그것입니다.

“최선자의 정체”를 닮은 사람은 철인(哲人)이며 훌륭하고 올바른 사람이며 ‘좋음의 이데아’를 보는 사람입니다. 이 “최선자의 정체”에서 타락을 하게 되면 “명예지상(지배)정체”가 됩니다. 이 정체는 본(本), 곧 “좋음의 이데아”보다는 명예를 더 중요시 여기는 데 있습니다. “명예지상(지배)정체”가 다시 타락을 하게 되면 “과두정체”가 됩니다. “과두정체”는 부(富)를 근간으로 하는 소수 무리의 정체입니다. 이들은 부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한 그들끼리의 연합한 정체를 이룹니다. “과두정체”는 “민주정체”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민주정체”라 함은 오늘날의 민주주의와는 조금 다른 일종의 자유방임주의로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정체를 말합니다. 무정부주의적인 (멋대로의) “민주정체는” 필연적으로 강력한 독재의 “참주정체”를 가져오게 됩니다. 이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멋대로 하는 참주의 정체입니다. 따라서 “최선자의 정체”와 극명하게 대립되는 정체입니다.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로 인해서 한결 더 광범위하고 강력한 것이 생겨나 그들을 노예화 시켜버리기 때문입니다.

김홍도 목사는 초창기에 아마 하나님나라의 사역에 있어서 본(本), 곧 “좋음의 이데아”를 보면서 목회를 시작했을 것입니다. 성도가 수 만을 헤아리고 교회가 커지면서 많은 이들에게 존경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고 아마 가끔씩은 스스로 대견해 보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 틈새로 ‘명예’가 本, 곧 “좋음의 이데아”의 자리에 들어 옵니다. 감독에 나가는 조건을 얻기 위해서 껄끄러운 피 고소 사건을 (전혀 당신의 신앙, 곧 本에 맞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돈으로 무마한 때가 아마 “최선의 정체”에서 “명예지상(지배)정체”의 모습으로 내려오는 시점이 되었을 것입니다.

감독에 감독회장에, 여전히 존경도 받고 그리고 마음껏 부(富)를 쓸 수 있는 (누릴 수 있는) 자리에 이르러서는 “좋음의 이데아” (곧, 하나님 사역의 “本”에 대한 깊은 묵상)보다는 당신과 같은 부류의 만남들을 찾게 됩니다. 유유상종이라 했던가요? 성공한(?) 대형 교회 목사들 혹은 권세가 있는 감독들과의 만남, 극우 보수주의자들과의 연대 그리고 세 과시, 시청 앞 광장에서의 (전혀 종교인답지 못한) 기도 모임… 등등의 모습에서 “명예지상(지배)정체”에서 “과두정체”로의 타락이 느껴집니다. 과두정체는 자유방임형 민주정체를 불러옵니다.

“부(富)를 씀에 있어서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멋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 “좋음의 이데아,” 곧, 하나님 사역의 “本”에 대한 깊은 묵상보다는 당신의 아내가 아닌 다른 여인을 만나고, 가족들의 이름으로 별장을 짓고, 땅이나 모터 보트를 사고… 등등의 모습에서 “과두정체”에서 (멋대로 하는)”민주정체”로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MBC 2580 방송 이후 금란교회 교인들의 방송사 앞에서의 시위, 목요기도회 세 분 목사에 대한 사회법에의 고소, 일련의 법정에서 들려지는 언행들, 최근의 교회법 재판 중에 기획된 시국강연회 등등이 그의 ‘안하무인’(眼下無人)이 어느 정도인지… 타락한 참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사역의 本에 대한 깊은 묵상, 그 ‘좋음의 이데아’를 명예와 부(富)에 놓아 버리고 결국엔 “할 것, 안 할 것” 가리지 못한 그를 보면서 우리는 철인에서 참주로의 타락까지 그 과정을 온전히 다 볼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우리 자신이 지금 삶의 어느 자리에 있는지 돌아 볼 수 있으니 그는 과연 이 시대의 큰 스승이 아닐까 싶습니다.

2. 김홍도, 사탄의 전형-하나님의 사람, 義, 情, 聖을 배우다!
두 번째 가르침은 신앙인이 피 터지게 싸워야 할 사탄의 전형적인 모습이 어떠한 지 그를 통해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깨달은 사탄의 모습은 삼재(三才), 곧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에 대하여 희롱하는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요한에게 세례받던 때)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설정 이 후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삼재 곧 “하늘”에 대한 유혹이었고 (내게 절하라…), “땅”에 대한 유혹이었고 (돌을 떡으로…) 그리고 “사람”에 대한 유혹이었습니다 (뛰어 내리라…). 사탄의 유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의 사역 속에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사탄은 빌라도 앞에서 “하늘”의 유혹을, 헤롯 앞에서 “땅”의 유혹을,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 때 ‘내려오라’며 외치는 군중 앞에서 “사람”의 유혹으로 예수를 꼬드겼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입성 이 후 예수는 하나님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심으로 “하늘”을 대하는 禮, 곧 “거룩함”(聖)을, 두 렙돈의 과부를 칭찬하시면서 “땅”을 대하는 禮, 곧 “의”(義)를, 제자의 발을 씻기시면서 “사람”을 대하는 禮, 곧 “정”(情)을 보여 주시며 사탄의 유혹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때문에 의(義)와 정(情)과, 거룩함(聖)은 하나님의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땅’과 ‘사람’과 ‘하늘’에 대한 예수의 답이 됩니다.

김홍도 목사는 이단 시비를 걸어 두 교수를 출교시키고, 쓰나미가 하나님의 뜻이었다느니 천국이 북극성에 있다느니 하며 ‘하늘’(天)을 희롱하고, 온갖 종교의 가면을 쓴 정치 집회를 주도하며 신앙인들을 미혹하여 분열시키고, 유부녀와 간통하며 “사람”(人)을 희롱하고, 교회 공금을 횡령하고 십일조를 0원으로 보고하는 등 “땅”(地)을 희롱하므로 하나님의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속성, 곧 물질에(地) 의로움(義)과, 사람에(人) 정다움(情)과, 하나님에(天) 거룩함(聖)을, 희롱한 유혹자 사탄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시편기자의 노래대로 ‘땅’에 대하여 “악인의 꾀”를 쓰고, ‘하늘’에 대하여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고, ‘사람’에 대하여 “죄인의 길”에 선 그 분의 모습에서 저는 이 천년 전 광야에서 예수를 만나 “하늘”과 “땅”과 “사람”을 희롱하던 사탄의 모습을, “하늘”의 거룩함(聖)을 잃고 ‘네가 왕인갗 물었던 빌라도와 “땅”의 의(義)로움을 잃고 예수의 이적을 ‘희롱’하던 헤롯과 하나님의 호흡을 지닌 “사람”에 대하여 정(情)을 잃고 ‘내려오라’ 외치던 십자가 앞의 군중의 모습을 봅니다. 흉측한 사탄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제 멋대로 가르는 사탄의 전형, 그 분의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 義와 情과 召을 우리로 하여금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니 그는 과연 이 시대의 큰 스승이 됩니다.

3. 김홍도, 극우 정치인-종교와 정치, 그 관계를 배우다!
세 번째 가르침은 종교와 정치에 대한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그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종교의 이름을 빌린 정치집단, 한기총이니 서기총이니 하며 소위 ‘시국기도회’라는 종교의 이름으로 가장한 ‘극우 정치인’으로서의 그의 행보는 종교인이 어떻게 정치에 관여해야 하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교인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무엇인가를 표방한다면 (즉, 공적으로 정치적인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종교적 이유(신앙)에 근거할 때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약자를 대변할 때입니다. 억압을 받는 이들, 소외된 이들, 나그네 된 자들, 인권을 유린당한 이들, 성 차별을 받는 이들, 저들을 위해서,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존엄한 창조정신을 되살리기 위해서 정치에 공적으로 관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치적 행위는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 상실을 가져 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외적으로 정치적인 행위라고 해도 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내적인 신앙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과 같은 종교적 이유에서 그 행위의 근거를 찾지 못한다면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종교인의 가면을 쓴 그의 정치 행보로 인해 많은 신앙인들이 좌우로 분열되어 가는 모습은 참으로 비극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좋은 소식, 복음을 정치 해석의 다름으로 인해 선교의 문을 막은, 이 시대의 극우 정치인, 김홍도 목사를 봅니다. 그는 2003년 1월 11일, 시청 앞에서 미군철수를 반대하는 기도회를 열었고, “미군철수 반대한다,” “미국은 우리의 혈맹이다,” “반미 부추기는 무리 있어 회개합니다” “미군철수는 위기상황, 살길 허락하소서”라고 기도하고 특별히 “김정일 정권이 무너지도록…” 기도했습니다.

그 후 기도회를 빙자한 이런 류의 정치 모임을 많이 주도했고 특별히 최근 2006년 10월 16일 대림교회에서 열린 <감리교 신앙부흥방향과 국가관>이라는 주제 강연에서는 "전시작통권 환수, 한미연합사 해체, 미군 철수는 모두 김정일의 적화 통일 수단이다." “최근의 모든 상황을 볼 때 우리나라가 공산화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들이 나오고 있다" 라며 “이는 김정일의 적화통일 방법인 전시작통권 환수, 한미연합사 해체, 미군 철수를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는 마귀 사상이다. 우리는 공산주의가 아닌 사탄과 싸우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와 함께 "사립학교법에 공산주의 주체사상이 들어있다,” “과거사 규명은 저들이 공산당 경력을 말소시키려고 그러는 것이다”며 "이 땅에서 사탄의 세력을 물리쳐야 한다"고 덧붙이고 강연을 마쳤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김홍도 목사는 10월 30일에 미국 펜타곤을 방문해서 "한국 국민이 노무현 대통령을 버렸는데, 왜 한국과 노무현을 동일시하고 한국 국민을 버리려고 하냐"고 하소연을 할 계획이라고 하는 소식까지 듣습니다. (이거 어떻게 감리교회에서 막지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참~ 감리교회 개망신 당할 일이 또 생겼습니다.) 그의 언행 속에서 이미 그는 종교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진 지 오래 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마디로 ‘극우 정치인’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보수니, 자유니, 진보니… 하는 논의는 종교인에게 있어서 궁극적 가치인 하나님, 그 분을 보는 관점의 차이에서 옵니다. 이러한 논의는 건전하고 또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교계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해석이 아닌, ‘미국’이라고 하는 한 국가에 대한, 혹은 ‘이데올로기’라고 하는 정치적 틀에 대한 해석 때문에, 복음을 그 안에 가두어 놓는 불행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종교인이 정치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그 정치적인 행위가 신탁,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겨질 때뿐이건만 목사의 이름으로 나서서 한 쪽의 그릇 안에 복음을 가두어 두니 어찌 이를 복음 전하는 종교인이라 하겠습니까? 종교인을 가장한 극우 정치인을 보면서 종교와 정치에 대한 바른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니 그는 과연 이 시대의 큰 스승이지 싶습니다.

4. 김홍도, 금란의 하나님-교회 내 민주주의를 배우다!
네 번째 가르침은 그를 통하여 교회 내 민주주의를 배울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회 내에서 황제처럼 군림하는 금란의 하나님, 김홍도 목사를 보면서 교회 내 민주주의 구조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어떤 구성체의 의견 수렴에 있어서, 방법은 대체로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상’(理想)을 중심에 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現實)을 중심에 두는 것입니다. 이상은 구성원의 ‘전체’(공동체)를 바라보고, 현실은 구성원의 ‘개인’을 바라봅니다. 이상과 전체를 근간으로 하는 정치 구조는 ‘사회주의’이고, 현실과 개인을 근간으로 하는 정치 구조는 ‘민주주의’입니다. 사회주의는 정의.평등을 바탕으로 자유.사랑을 추구하고, 민주주의는 자유.사랑을 바탕으로 정의.평등을 추구합니다.

둘 모두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기에, 역설적으로 ‘이상-전체(공동체)-정의-평등’을 모토로 하는 사회주의적 구성체에서는 민주주의의 장점인 ‘현실-개인-자유-사랑’을 많이 강조하고, ‘현실-개인-자유-사랑’을 모토로 하는 민주주의적 구성체에서는 사회주의의 장점인 ‘이상-전체(공동체)-정의-평등’을 많이 강조해 주어야 밸런스가 잡힌 건강한 구성체가 됩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주의적 구성체는 ‘이상-정의-평등’이 ‘전체’(공동체)에게 미치지 못하고 ‘개인’에게 갈 때이며 건강하지 못한 민주주의적 구성체는 ‘현실-자유-사랑’이 ‘개인’에게 미치지 못하고 ‘전체’(라는 이름으로) 드러날 때입니다.

‘현실-개인-자유-사랑’을 모토로 하는 이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한다는 김홍도 목사가 실상 자신이 속한 금란교회에서는 그 반대의 구조, 이상-전체(공동체)-정의-평등을 모토로 해야 할 사회주의적 구조를 가진 것은 참 아이러니 합니다. 게다가 그 ‘이상-정의-평등’이 ‘전체’(금란 공동체)에 미치지 못하고 그에게만 쏠려 있으니 매우 건강하지 못한 구성체가 되고 맙니다. 법정에서 그는 금란교회와 자신을 동일시 했습니다. ‘짐이 곧 법이니라’ 했던 옛날 군주 시대처럼 그에게는 ‘짐이 곧 금란이니라~’가 됩니다. 전체가 바라봐야 할 ‘이상’을 혼자 짊어지고 있으니, 그는 하나님이 아니면 안 되는 형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홍도, 금란의 하나님이 된 이유입니다.

미국 민주주의에 커다란 흔적을 남긴 라인홀드 니이버는 초기에 사회주의에 심취하기도 했는데 나치즘과 파시즘을 경험하면서 인간의 근본적인 악함을 보게 되고 결국 생각을 현실주의로 바꾸게 됩니다. 그리고 인간 구성체는 서로 견제하는 구조, 곧 민주주의라고 하는 현실주의적 정치 구조를 지지하게 됩니다. 인간은 늘 그 권리와 함께 견제를 받아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교회 내에서 견제를 전혀 받지 않는 금란의 ‘하나님,’ 김홍도 목사를 보면서 금란에서 되살아난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보게 됩니다. 금란의 하나님이요, 이 시대의 사탄인 셈입니다. 어쨌든 그를 통하여 오늘날 교회 내 민주주의 구조를 다시 생각하게 하니 그 분은 이 시대에 좋은 스승이 됩니다.

5. 김홍도, 맘몬의 (전) 감독회장-현 감리교회의 주소를 배우다!
마지막 가르침은 그 분을 통하여 감리교회의 현 주소를 읽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단 교수 운운할 때도, 쓰나미 발언이나 북극성 발언에도, 간통 때도, 횡령 때도, 심지어 사회에서 ‘죄 있다’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했을 때도 감리교회는 그를 제대로 치리 한 번 하지 않았습니다. (못했습니다.) 맘몬의 (전) 감독회장, 그 앞에 굴욕적인 감리교회의 현재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과연 영화 <엑소시스트>에서나 볼 수 있는 사탄의 힘이 느껴집니다.

부적절한 관계, 횡령 그리고 십일조 결산 0원의 2004년 보고서와 부담금 ‘생략합니다’라는 2006년 보고서… 뻔히 눈에 보이는 불의한 사실 앞에서 이를 치리해야 할 소속 감독의 말씀 (오늘날 감리교회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참 처절하기도 하고 비굴하기도 한): [ref. “윤연수감독은 축사에서 금란교회가 서울연회에 속한 교회인데 부담금을 내지 않아 섭섭했다가 오늘 부담금 1억이 입급되었다는 소식에 미안한 마음과 함께 화해를 청하러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당당뉴스에서)] 뭐… “부담금을 내지 않아 섭섭했는데… 1억을 내니 이제 미안한 마음이고… 그래서 이제 화해를 청하고 힘을 실어 주려고 왔다”고! 한 연회를 담당하신 현 감독의 말씀이라고!

사회에서 유죄를 선고 받은 두 목사에 대하여 감리교 재판위원회의 기소여부를 결정짓는 감리교 심사위원회의 결정이 10월 10일 내려졌는데 김홍도 목사는 기소유예를 받았습니다. “감독회장이었고 큰 교회를 이루어 감리교회에 공헌을 많이 했고 WMC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루었다”는 이유로 김홍도 목사를 기소유예했다고 합니다. 감리사들이 탄원서도 냈다고 하고. 과연 맘몬의 (전) 감독회장, 그 힘이 느껴집니다. 사탄의 힘이.

그것은 또 그렇다 치고 심사위원이 그야말로 치열하게 심사하고 있는 동안 기소인지 기소유예인지 결정이 되지도 않은 때… 그 시점에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2006년도 10월 2일 날짜로 적힌 <감리교 신앙부흥운동모임> 대표 김충식 서울남연회 감독 목사의 초청장입니다. 감리교회 목회자와 장로를 초청하여 10월 16일 대림교회에서 <감리교 신앙부흥과 국가관>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연다고 하는 초청의 편지입니다.

개회예배 설교자는 이번에 감독으로 당선된 한정석 “감독 당선자” 목사가 맡았고 그리고 주제 강연의 강사는 김홍도 (감독의 직분이 적힌) 목사입니다. 10월 2일 날짜로 편지를 받았으니 감리교 현 감독 목사와 감독 당선자 목사가 앞장서서 벌~써부터 준비했을 주제 강연 <감리교 신앙부흥 방향과 국가관> 그리고 강사,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2년 6개월 징역에 집행유예 3년…

그리고 감리교 재판 위원회 기소를 앞두고 있는 그 시점에 버젓이 현 감독의 이름으로 날아 온 (석고대죄하고 있어도 시원치 않을 때에) 10월 2일 날짜의 초청의 편지, 개회예배 설교자, 한정석 감독 당선자, 강사, 김홍도 목사! 현 감독과, 차기 감독이 합심하여… 그야말로 감리교 심사위원들의 위신에 똥칠을 한 이 편지! 이 편지 한 장처럼 현 감리교회의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교단의 한 쪽에서는 그를 치리 하고자 기소 여부를 심의 중인데… 그 와중에 그를 불러 세워 국가관, 신앙부흥 강연을 열 생각을 하고 있는, 다른 사람도 아닌 현 감독, 차기 감독, 그리고 그 줄 잡겠다고 선뜻 교회를 내어 준 대형교회 목사… 이 이상의 코메디가 있을까, 이 이상 감리교회의 비참함을 보여주는 것이 또 있을까?

‘기소유예’한 심사위원회 위원들, 서울연회 감독과 탄원서를 냈다는 서울연회 감리사들, 심사 중인 이를 불러 감리교 신앙부흥 방향과 국가관을 듣겠다는 서울남연회 현 감독과 서울남연회 차기 감독당선자, 그리고 그 곳에 줄 서기 바쁜 대림교회. 그들의 행태를 보면서 오늘 감리교회의 현 주소를 읽을 수 있으니… 헐헐~ 맘몬의 (전) 감독회장, 김홍도, 과연 이 시대의 큰 스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가는 말:

김홍도 목사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삶의 자리매김,” “하나님의 사람, 義-情-聖,” “종교와 정치의 관계,” “교회 내 민주주의,” 그리고 “감리교회의 현 주소”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으니, 김홍도 목사, 어찌 이 시대의 큰 스승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의 이 ‘큰 스승’ 위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임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한 목회자로서, 한 종교인으로서 다만 현재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단 5:25)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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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목사 (61.102.73.36)
2006-12-01 10:01:14
에휴~!
그러니, 어쩌면 좋습니까?
선배목사들을 보면 거의 다 반면교사만 있으니...
정면교사! 천연기념물이 됐습니다.
앞으로 10년 20년 뒤를 바라보며 우리는 타락하지 맙시다!
리플달기
6 5
목사후보생 (61.73.192.20)
2006-12-02 09:34:58
하여간에...
이땅에 왜 그리 나처럼 하면 안된다고 외치면서 몸소 희생 정신을 발휘하시는 목사님이 많으신지..
어찌해야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태백엔 눈보라가 내리는데..
눈보라 맞으면서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리플달기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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