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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복지와 분배적 정의를 향해서
김민호  |  지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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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10월 23일 (토) 23:35:04
최종편집 : 2021년 10월 23일 (토) 23:37:34 [조회수 :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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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복지와 분배적 정의를 향해서

<쌀 재난 국가>, 이철승, 문학과지성사, 2021

“우리는 왜 ‘평등과 정의와 형평’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위계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가.”(23)

국가란 무엇인가. 이 질문은 언제나 유효하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진 못했지만, KBS 드라마 어셈블리의 명대사가 하나가 떠오른다. “국민이 국민의 의무를 다했을 때는 국가가 의무이고 국민이 권리입니다.” 헌법에 따르면, 국민에게는 행복추구권과 참정권, 또한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 등등이 주어진다. 국가는 세금납부나 병역 및 대체복무를 통해 의무를 다한 국민들의 안전과 삶의 질을 위해 힘써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헌법 제119조는 경제의 민주화, 국민들에게 적정한 소득 분배가 되도록, 국가가 개입해야 함을 명시했다. 국가의 역할이 이토록 크다.

코로나19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재난지원금이라는 국가로부터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혜택을 경험했다. 기실, 다양한 복지정책들이 국민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를 지탱하고 있다. 의료복지는 대한민국만큼 잘 되어 있는 국가가 드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실례다. 과거에는 어땠을까. 국가라는 개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시절,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특별히 그들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였을까. 또한 후손들에게 어떤 문화를 유산으로 물려주었을까. 어떤 생각의 유전자들이 전해져왔을까. 이철승의 <쌀 재난 국가>가 그 이야기를 잘 다루고 있다.

<쌀 재난 국가>, 제목에 기재되어 있듯 첫 번째 열쇠낱말은 ‘벼농사’이다. 동아시아 지역민들에게는 쌀이 주식인 까닭인데, 벼농사가 지닌 특성이 어떤 여파를 지녔는지, 저자는 흥미롭게 분석하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치열한 경쟁과 사생활 간섭 문화, 관료제와 위계, 사적 복지에 대한 집착, 열악한 여성인권 등이 벼농사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다.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마을주민들의 협업이 그것이다. 과부나 독거노인의 밭까지 관리를 해주는 것은 오늘날에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다. 동전의 앞뒷면 같은 것일까. “‘아름다운 품앗이 협업 네트워크’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치열한 사다리 타기 경쟁’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가?”(25) <쌀 재난 국가>는 이 물음에 응답한다.

벼농사는 많은 양의 물을 필요로 한다. 이게 시발점이다. 대다수가 농민인 까닭에, 태풍과 장마, 가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자연재해에 선제적으로 잘 대응하는 것, 이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극심한 가뭄이 찾아오면, 세금을 감면해주고, 관료의 녹봉 삭감을 통해 국가는 구휼 재정을 마련했다. 재난의 시기, 동아시아의 국가들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했던 것이다. 이 전통이 오늘날의 헌법으로 잘 연결된 것 같다.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신뢰감이다. 마을주민들끼리 협력은 하지만 서로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 이보다 더 모순적인 것이 어디 있는가. 개별 노동력을 공유하지만, 수확물은 나누지 않기에 생기는 일이다. 

“벼농사 지역 정주민일수록 신뢰하지 않는다고 응답할 확률이 더 높았다. … 일상적으로, 반강제적으로 서로를 돕는 문화권에 사는 정주민들이 독립적으로 살며 협업에 덜 의지하는 문화권의 사람들보다 이웃에 대한 신뢰가 더 낮은 것이다. … 출구가 없는 닫힌 네트워크 안에서 공동생산-개별소유라는 이중 구조가 만들어내는 끝없는 경쟁과 질시의 메커니즘으로부터 비롯된다고 본다.”(138)

대한민국은 K방역이라며 칭송을 받은 바 있다. 이는 협업이 몸에 밴, 벼농사 체제 하 재난 대비 매뉴얼 덕분이다. 그러나 땅과 자산에 대한 집착, 벼농사문화의 또 다른 유산이 공적 복지의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 지대통제권을 지닌 공직자들의 부조리 또한 예나 지금이나 주요하다. 연공제로 집약되는 대한민국에 불평등은 그렇게 공고화되고 있다.

어떤 원주민 사냥꾼들은 짐승사냥에 실패한 동료에게도 고기를 나눠준다. 현장에서 몰래 말이다.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행위가 아니다. 사냥에 실패한 사람이든 성공한 사람이든 모두 똑같은 사회적‧영적 지위를 지닌 존재임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승자독점에 익숙한 시대다. 시기질투에, 상대적 박탈감에, 사람들 간에 신뢰는 점점 더 균열이 심해질 것이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한다”는 공산주의의 기치는 폐기되었으나, 논제 자체는 항상 시의적절하다. 공적 복지와 분배적 정의에 대해 재고해야 할 때다.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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