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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원운영위원회는 연수원 폐지를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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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10월 08일 (금) 14:13:28
최종편집 : 2021년 10월 12일 (화) 20:58:20 [조회수 :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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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회 연수원 이야기

-태동과 의의-

 

 

1. 제1연수원

 

제1연수원은 1977년 7월 19일, 총리원 선교국위원회가 선교훈련원을 설립하고자 결의하면서 태동하였다. 당시 한국감리교회가 선교훈련원을 필요로 했던 역사적 이유를 우선 살펴보면서 연수원의 정체성과 그 과정을 통해 연수원의 의의를 되찾고자 한다.

 

   
제1연수원 전경

1) 제1기 (1971년~1984년) : 감리회 꿈의 숲(8.5만여 평) 부지 마련 이야기

총리원 선교국(최종철 선교국장)은 1971년 10월 27일~28일, 미8군 수양관에서 선교국 주최로 기관선교 실무자 30여명이 참석하여 기관선교협의회를 열었다. 이 협의회를 통해 선교국 내에 선교실무자 훈련원을 두어 실무자의 자질향상과 실무자 양성을 위한 훈련을 실시할 것을 정책적으로 결의하였다. 그리고 총리원은 1985년 감리교회 선교 100주년을 맞이하여 ‘5,000교회 100만 신도’를 목표로 3배가의 선교운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총리원 산하에 선교요원훈련원의 설립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1978년 총회를 앞두고 총회 대표들에게 호소하고자 기독교세계에 게재된 글, ‘선교정책 수립의 제언(김한옥목사)’을 보면, 감리교회의 선교적 책임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엿볼 수가 있다. “선교정책위원회는 전문적으로 훈련된 사람들로 위원회가 보강되어야 하고 선교정책과 전략수립을 위해 반드시 총리원 산하에 훈련원이 설립”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것을 강조하였다.

선교훈련원을 건립하기로 결의한 총리원은 지난 1977년 후에 국외교회들(독일복음교회, 미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부, 영국교회, 영국교회, 미국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은 건립기금 19억 6천 여 만원이 마중물이 되어 대지 85,566평(임야5필지)을 매입(867,164,000원)하였다.

이렇듯 한국감리교회는 국내외 교회와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 가운데 1971년 이래 부흥운동을 실천하기 위한 목표를 정하고 훈련된 인력을 양성할 선교훈련원을 총리원 산하에 두기를 염원하였다. 감리교회 100년 이상의 먼 미래를 보고 선교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했던 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의 기도와 헌신과 열정에 가슴이 뭉클하다.

 

2) 제2기 (1985년~1995년) : 건축과 봉헌 이야기

 

1985년 이래 건축에 몰두하던 감리회는 토지의 법적인 관계(그린벨트, 군사보호구역)와 효율적 운영을 위하여 1988년 10월 13일 건물 용도를 유스호스텔로 변경하여 양주시에 사업 승인을 신청하여 건축을 시작하였다. 총공사비 53억6천8백만 원을 투자하여 1995년 10월 9일, 162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감리교연수원(샬롬유스호스텔)건물을 봉헌한다. 또한 시설에 필요한 모든 비품은 국내외 33개 교회와 단체와 14명의 개인의 기증과 후원금 229,937,735원으로 마련하였다.

연수원 건물을 봉헌한 후에 발표한 교육훈련원 정책 선언을 살펴보면, 드높아진 교육훈련원의 위상과 사명감을 읽을 수가 있다. “연수원 건물의 최신식 시설을 활용하여 목회지도력과 영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연수교육과 목회신학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발돋움할 것을 역설하였다.”(원장 김준영목사)


3) 제3기 (1996년~현재) : 일영연수원 이야기

이 시기 일영 연수원은 연수원의 고유 기능과 함께 사회적 책무인 ‘샬롬유스호스텔’ 경영이라는 두 기능을 병행한 시기였다. 연수원 고유 기능과 달리 유스호스텔 경영은 법적 요구 사항을 충족시키며 경쟁적 운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주된 요인은 세월이 흐르며 시설이 낙후되고 지역적인 한계성으로 인하여 일반인들의 활용도 역시 저하된 점이라 하겠다. 결국 유스호스텔은 20년 경영 끝에 2015년 폐업 신고를 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오히려 매우 잘 된 일이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유스호스텔 폐업 이후 연수원의 운영을 회복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고 본연의 정책을 개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영연수원은 목회신학을 끊임없이 연구. 개발하고 이를 연수교육과 영성 프로그램에 반영하여 실시하고 있다. 2005년 총회 결의에 따라 정회원 연수교육을 진행하였고, 장로 연수교육을 매년 2~3회 진행하고 목회자 부인신학교육과정을 운영하여 2019년까지 13기 약 650명의 졸업생을 배출시키다. 2010년에는 영성공동훈련으로써 5-Day 영성형성아카데미와 엠마오가는길 등을 도입하여 영성수련 프로그램을 가동시키고 있다.

 

   
제2연수원

2. 제2연수원

 

2021년은 제2연수원이 지난 1959년 대지를 매입한 이후 62년이 되는 해이다. 감리교회 청소년부터 교역자와 평신도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행사와 프로그램들의 흐름을 살펴봄으로 감리교회 연수원의 의의와 가치를 되새기고자 한다.

 

1) 입석연수원 제1기 (1959년~1981년) 이야기

제2연수원은 1960년대 국내외 감리교회와 단체의 선교적 열정과 헌신적인 기도의 결실로 이룩한 청소년 수련캠프 시설이었다. 본래 태화사회관은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던 청소년 혼혈아를 위해 사회사업을 추진하였다. 학생층을 대상으로 공동체 훈련과 신앙 훈련을 실시하는 캠핑은 1960년 이후 태화사회관의 대표적 여름행사가 되었다. 기독교청년회 캠프장을 빌려서 추진하다가 ‘입석 캠프장’을 마련하는 것으로 활성화되었다. 총리원 교육국에서도 종교교육 훈련장으로 캠프 장소가 필요하던 차에 태화사회관과 공동으로 입석 캠프장을 구입 추진하게 되었다. 1959년 11월에 열린 한국감리교회 중앙협의회가 입석 캠프장 대지 구입 안을 통과시켰고 미연합감리교회 선교본부가 대지 구입비용(4,196달러-한화 1천6백만 환) 전액을 지급하여 89,479평의 수목이 울창한 산과 들을 매입하였다. 교육국과 태화사회관은 이 대지 위에 본관(48평) 한 채와 오두막집(11평 현, 캐빈) 다섯 채를 짓고 1961년 7월 11일 봉헌하였다. 기독교세계 1970년 초반부터 1980년 후반까지의 자료를 보면, 1961년 여름부터 학생, 청소년을 대상으로 여름캠프를 시작하여 여교역자 강습회, 전국교역자 연합산상기도회 등 평신도 지도자 훈련 행사를 진행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마다 행사내용과 사용자가 증가하고 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이 필요하였다. 이에 감리교회 선교 90주년을 기념하여 오하이오연회로부터 39,000달러와 국내교회의 5백 만 원의 기금으로 평신도교육원 건물을 신축하였다. 이로써 입석캠프장은 365일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다. 입석연수원은 협성신학교가 개교식을 갖고 1982 이후 임시 교사로 활용하였다.

 

2) 제2기 (1994년~현재) 이야기

 

1994년 3월 7일 지하1층, 지상3층 연건평 570여 평의 감리교교육원 본관을 봉헌하였다. 대지 2,000평, 운동장 1,000평, 300석의 식당, 800석을 수용하는 대강 등의 시설을 갖춘 감리교교육원으로 시설을 확충하였다. 고색창연한 고목들과 연수원 시설을 감싸듯 흐르는 구운천과 수려한 자연경관을 갖춘 터 위에 세워진 제2연수원은 감리교회의 신앙교육의 중추로서 차세대 지도자의 영성 수련에 부족함이 없는 한국교회 최고의 연수시설로 일반단체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이었으며, 일반 신문에도 대서특필되었다. 제2연수원은 1960년 초반에는 여름에만 운영하면서 행사 위주로 운영되었고 1970년 중반 들어 겨울에도 운영하면서 1980년 중반부터는 연수원에서 개발한 프로그램 중심으로 운영하였다. 1994년 이후에는 영성프로그램으로써 에니어그램(오아시스 프로그램, 공동체성서연구)과 몸비우기 영성수련회, 청소년 평화캠프, 농촌교회 연합 중고청 수련회, 그리고 FM청소년 캠프는 열반선교 사람낚는어부와 공동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수동작은음악회, 물골안반딧불이축제, 초,중고학생 대상 농촌체험교실, 학생 리더십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고 개체교회 및 단체의 하동절기 청소년.청년 수련회가를 실시하고 있다.

 

3) 제3기(2004년~현재) : 산돌학교 이야기

 

설립 취지와 목적

1960년 초반부터 학생과 청년 중심의 교육훈련 행사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던 제2연수원 자리에 감리교회는 대안교육기관을 설립하도록 승인해 주었다. 2004년 3월 1일에 신입생 25명을 모집하고 학교 개교식을 가짐으로 감리교회 내에 대안교육기관이 시작하게 되었다.

감리교회 산하에 여러 계통의 학교가 있지만, 대안학교가 새롭게 설립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003년에 작성된 ‘학교설립위원회의 발족 취지문’은 학교가 설립된 이유와 의미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교육국과 감리교신학대학교 교육연구소(송순재교수)는 우리 사회가 봉착한 교육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신앙인의 의무와 사회적 책임의식에서 기독교 대안학교를 설립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일부 기독교계통학교가 이제 일반학교에 비해 구별되는 특징을 찾아보기 어려워졌고 입시지옥에 대한 문제의식과 그 해결을 위한 노력 역시 알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동 설립위원회는 대안교육운동으로 범 감리교회 차원에서 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해 가기로 하였다. 이러한 취지하에 산돌학교는 ‘일반 공교육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하고 ‘학생 중심의 맞춤형’ 교육프로그램을 설계하여 운영하는 학교로 세워졌다. 지면관계로 산돌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을 지면에 담아내지 못하여 아쉽다. 2005년 11월 25일 제26회 총회실행부위원회가 산돌학교를 대안학교로서 설립을 승인해 주었다.

 

졸업생 현황

산돌학교는 “사람의 결을 살리고 자연의 길”을 따르는 교학상장을 교육철학으로 운영하지만, 창립 이래 ‘영성교육’을 교육이념의 본질로 삼고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20)는 기독교 신앙의 가르침을 교육과정에서 실천해 왔다. 산돌학교는 수도권에 인접한 5년제 중고통합 기숙형학교로서 2021년 현재 199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고 목회과정 중에 있는 전도사와 신학생(여학생회장), 프랑스 디자이너 과정을 이수한 파리 미술작가, 산돌학교 현직교사, 소설작가 등 감리교회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각계 각층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산돌학교는 주목받는 감리회 대안학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고 있다. 피와 땀으로 이룩된 제2연수원은 감리교회의 자랑이며, 산돌학교가 이만한 시설과 넓은 부지를 허락받아서 소중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감리교회의 공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부족한 기숙사 신축과 노화된 별관기숙사(구,웨슬레의집) 리모델링을 위한 교사들의 헌신

학생 수가 해마다 증가함에 따라 턱없이 부족한 기숙사와 교실을 신축하려는 계획을 수립하고 지난 9년 전에 건축기금모금 행사를 진행하였다. 1인당 20장씩의 모금전단지를 손에 든 교사들과 학부모들은 기금 마련을 위하여 동분서주한 결과 9억 5천만 원의 건축기금을 조성하였고 3층 신관기숙사와 교실 3칸, 그리고 강학당 등을 건축하여 2013년에 봉헌하였다. 또한 건축 된지 36년 된 별관기숙사(구,웨슬레의 집)의 시설이 낙후되어 생활공간으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으로 산돌학교가 6,000만원을 모금하여 리모델링하였다. 신관기숙사 신축과 별관기숙사 리모델링은 제2 연수원의 변화와 도약, 그리고 더 나아가서 감리교회의 영성훈련과 청소년 수련장으로 거듭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산돌학교

 

3. 마무리 : 제1,2 연수원의 정체성과 의의

 

제1연수원은 한국 감리교회의 먼 미래를 보고 선교의 비전을 실현하고자 선교훈련원을 총리원 산하에 두기를 기도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개혁을 모색하는 전환시대에 목회자 재교육과 평신도 지도자의 영성훈련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성장하려고 노력하였다. 제2연수원은 태화사회관의 청년캠프와 교육국의 종교교육 훈련장의 필요가 작용하여 만들어진 훌륭한 연수시설로서 청소년들에게는 미래의 기독교 지성인이 되게 하고 목회자와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강습회와 수련의 공간으로 크게 쓰임을 받았다. 그런 의미에서 감리회 연수원은 감리교회의 보석과도 같은 존재이다. 국내외 교회들의 도움과 헌신적인 기도로 이룩한 연수원에 대해 감리교회는 책임 있는 정책을 내어 놓아야 한다. 이에 연수원의 정체성과 의의를 회복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제언하고자 한다.

 

1) 제1연수원의 정체성과 의의

 

① 제1연수원은 영성목회 수련원으로 거듭나야 한다.

최근 30년간 한국교회의 성장 동향을 보면, 1970년대 성령은사운동을 시작하여 1980년대는 선교, 구재활동의 붐을 이루면서 농어촌교회 개척사업과 해외선교 확장이 모든 한국교회에서 경쟁적으로 일어났다. 1990년대의 대표적인 동향은 문화사역과 영성신학이었다. 21세기는 영성과 감성을 강조하는 시대로서 지성적인 목회와 영성 있는 목회를 조화시켜 나가는 균형적인 리더십을 겸비한 목회자를 요구하고 있다. 감리교회 연수원은 영성공동체를 개발하고 이에 걸맞은 영성목회 수련원으로 거듭나야 한다.

 

② 연수원 일원화 구조 속에서 책임 있는 정책과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

1985년 10월 입법총회에 교육훈련원 독립운영 장정개정안이 상정된 바 있었다. 그 시기 감사위원회는 이원화된 조직과 사업에 대하여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감사지적사항을 내놓았으나 잠정적으로 독립운영 체제를 유지하였다. 2004년 교육훈련원 원장 정용치목사는 “연수원의 구조적 문제로 인하여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였다는 비판의 소리”를 피할 수가 없다고 훈련원 업무보고를 통해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연수원의 본연의 사업과 프로그램을 수행함에 있어서 ‘연수원과 교육국’, ‘연수원과 사무국’과의 관계는 상호 책임져야 하는 이원적 구조 속에 있기에 사업을 추진하는데 장애됨으로 이를 극복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다.” 제1연수원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책임 보다 근원적인 부실의 원인은 제도적인 미비를 이유로 평가하였다. 일영의 연수원과 휴스호스텔 그리고 입석의 교육원이 명실상부한 동 기관으로 일사불란하게 운영되지 못하고 사무국과 교육국으로 이원화되어 있음으로 책임 있는 관리를 하지 못하는데 그 원인이 있다고 연수원의 이원화 구조를 꼬집었다.

 

2) 제2연수원의 정체성과 의의

 

① 제2연수원은 청소년 및 청년수련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해마다 감사 보고서는 수억 원의 연수원 적자를 보고한다. 수입은 줄고 유지비와 운영비를 쏟아 붓고 있다고 감리회 본부 안과 밖의 정치권에서 매년 회자되고 있다. 결국 이번 장정개정위원회는 연수원을 없앤다는 ‘연수원 폐지’안을 말하고 있다. 지난 수 년 전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구조적이고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이해가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하게 한다. 데이터는 데이터일 뿐이다. 데이터는 좌도 우도 아니고 중립이다. 그러나 중립이 파괴되어 한 쪽으로 치우치면,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노후한 시설과 수입에 비해 과지출로 손실이 막대하여 폐지해야 한다는 사유의 근거가 중립적이지 못한 데이터가 아닌가 싶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쓰레기로 버려지거나 보석으로 변할 수도 있다. 연수원을 폐지하면 운영비가 줄어들고 구조조정으로 인건비가 감소된다는 계산 이전에 우리는 닦아올 미래의 감리교회를 준비하고 설계하는 시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자각하는 마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제2연수원은 62년의 삶을 걸어온 감리교회의 유산이다. 오늘날 교회마다 청소년들이 감소하는 추세에 차세대 지도력의 위기를 감지하면서 교회 청소년 운동 활성화를 위한 연수시설로 거듭날 수 있는 연수원 정책이 제시되어야 한다.

 

② 감리교회는 위기와 변화에 상응하는 산돌학교의 대안교육 정책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학령인구의 감소와 코로나19 펜데믹은 비단 산돌학교뿐만 아니라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피할 수 없는 위기로 다가왔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는 교육적 관점이 변했다. 공통점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다. 학부모들은 대면 혹은 비대면 수업을 떠나서 기존 제도권 교육으로는 아이들의 창의성을 제대로 발현시킬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하고 요사이 대안학교를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추세가 증가하고 있다.

산돌학교가 진보성향의 노선을 모방하고 있고 교육프로그램 역시 그 사상에서 벗어나지 않다는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산돌학교는 감리교회의 정신으로 “영성교육”에 학교의 철학과 이념을 뿌리 내리고 운영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 정관에 “요한 웨슬레의 영성과 신앙교육의 전통을 계승하고 대안적인 중등보통교육을 실시한다.”라고 학교설립과 교육목적을 담아냈다. 산돌학교는 대안학교로 운영하라고 감리교회가 유일하게 승인해 준 학교이다. 그러므로 산돌학교가 불확실성의 시대적 변화에서도 감리교회 정신을 계승하여 지속적이면서 안정적으로 운영해 갈 수 있도록 감리교는 대안교육 정책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③ 산돌학교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 감리교회의 미래의 학교로 존재해야 한다.

교육부는 대안학교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기 위하여 일반 공교육기관의 초중등교육법에 준하는 「대안교육기관 법률」을 제정하여 2022년 1월 13일에 시행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대안교육기관 지원 법은 우리 사회에서 대안교육기관의 지위를 법으로 보장해 줄뿐만 아니라, 산돌학교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이 될 것이다. 지난 9월 30일 경기도 교육청 주관으로 열린 ‘미인가 대안교육기관 대표자 교육감 간담회’에서 교육감은 이렇게 발표하였다. “‘대안교육기관법’ 법제화에 맞게 경기도 산하 미인가 대안학교를 대상으로 지원금을 확대할 방침이다.”

산돌학교는 교육비와 시도교육청의 지원금으로 운영해왔고 현재까지 교사급여를 비롯하여 임대료가 체불된 바 없다. 그리고 교사 퇴직급여는 이미 적립되어 있음으로 운영비 결손증대라는 사유는 산돌학교를 평가하는데 적절한 데이터가 되지 못한다. 연수원이 폐지되면 산돌학교의 거취는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질문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감리교회가 산돌학교를 설립 승인해 주고서 어떤 피해를 담보로 해서 폐쇄하려는 것은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이제 대안학교에 대한 시각이 변화되고 있다. 그리고 산돌학교는 감리회 본부의 배려와 기회를 제공해 준 덕분으로 지난 16년 간 우수한 교육적 결과들을 이루어냈고 노하우들이 누적된 학교로 성장하였다. 아울러, 최근 우리 사회는 대안교육의 가치를 중요시 여기고 또한 그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들은 산돌학교가 지속적으로 운영해 가는데 원동력이 되고 있다.

 

 

 

2021년 10월 8일

 

제34회 총회 연수원 운영위원회

위원장 양명환 감독

위원 : 최성겸 임용선 최영석 서병오 최재동 백승문

김호집 유만섭 호경기 박창호 정승원 정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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