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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은 집단 이기주의를 제어하고 조정할 수 있는가?
신영배  |  평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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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10월 08일 (금) 00:02:24
최종편집 : 2021년 10월 08일 (금) 00:04:29 [조회수 :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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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은 집단 이기주의를 제어하고 조정할 수 있는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라인홀더 니버 저, 문예출판사, 2004

기독교 윤리학자이면서 기독교 현실주의자인 라인홀더 니버 목사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사회’가 던지는 중심 주제이다. 1932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 책의 주제는 집단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고 첨예한 현재에도 생각해야 하는 것들 임에 틀림없다. 지미 카터 대통령은 이 책을 “정치학의 성서다”라고 극찬을 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생존의 필요성을 넘어서 욕구를 확대시키는 상상력을 갖고 태어난다. 다른 사람의 필요보다 자신의 필요를 더 절실하게 생각한다. 이기적이다. 이기적인 충동의 힘은 인간의 이성보다 더 강력하지만, 개별적인 개인은 높은 수준의 지성과 종교적 자애심으로 사회에 누룩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신의 은총에 의해 구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도덕적인 사람들도 사회 내의 어느 집단에 속하면 집단적 이기주의자로 변모한다. 집단은 이기적 동기에 따라 행동하는 다수에 의해 좌우되는 데, 복잡한 사회관계 속에서 현실적 이해타산 따라서 움직인다. 집단이 크면 클수록 그 집단은 스스로를 더 이기적으로 더 끈질기게 표현한다. 특히 국가는 오직 국익에 따라서만 행위한다. 지금까지 어떤 국가도 자기의 이익과 무관한 이유로 조약을 맺은 적이 없다. 집단적 이기주의에서 비롯되는 사회적 불의는 지성이나 도덕적 설득만으로 막을 수가 없다. 사회가 집단의 비합리적인 불의를 용인하게 되는 이유는 권력층에 의해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를 불의를 당한 피해 계층조차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경향 때문이다.

권력은 공동체 내부의 평화를 위해 정의를 희생시키고 또한 공동체들간의 평화를 파괴하기도 한다, 평화는 힘에 의해 획득되기 때문에 일시적이고 잠정적이다. 강제력에 의존하지 않고 사회적 평화와 정의를 이룰 수는 없다. 그러나 강제력의 사용은 또 다른 불의를 가져 올 위험이 있다. 

종교적 도덕적 낭만주의자들은 사회가 직면한 위험을 과소평가하거나 도덕적 자원을 과대평가하여 그들의 목표는 달성될 수 없다. 교회는 사회를 구조적 병폐로부터 구출해 내기보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노예제도를 방해하지 않고 방치해 두었고 현재의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격렬하게 맞서지 않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철저히 소외당한 노동자 집단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노동자 억압을 위한 부르조아의 계급적 도구로 간주한다. 프롤레타리아가 폭력을 통해 평등한 체제를 수립하면 그 평등은 확실히 유지하기 위해 정치권력의 집중이 필요하다. 정치권력의 집중을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 것인가, 또 내부 적대세력의 완전한 제거와 새로운 인간상 확립이 가능한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그 어떤 공동체도 자기 이외의 다른 모든 공동체를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현대사회의 이해관계의 복잡성과 첨예한 대립과 분화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기대하는 혁명에 장애가 되고 있다.

종교적 정치적 이상주의는 영웅적 행위를 촉진할 수는 있지만 현실에서는 위험천만하다. 종교 현실에서 절대주의는 부조리를 허용하고 정치 현실에서는 잔인성을 용인한다. 사회가 절대적인 것을 얻고자 달려들면 수백만명의 생명과 재산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게 된다. 개인의 열광주의도 정치적 정책으로 나타날 때는 잔혹해 질 수 있다.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다. 사회를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다. 이성은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지만 강자의 힘을 약화시키고 약자의 힘을 강화시키므로 평등한 정의를 위해 부단히 노력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관심은 충분한 평화와 정의는 있되 강제력이 충분히 비폭력적인 그런 사회의 건설에 있다. 올바른 정치적 도덕성은 사회분쟁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강제력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단일 정치세력에 의한 합리적 평등사회 실현은 어렵다. 모든 행동은 서로 상충하는 가치들 사이에서 결정되고 수행된다. 다소의 혼란이 있더라도 상호 융합의 불가능한 도덕적 요소를 완전히 제거할려고 해서는 안 된다. 조정과 타협에 의해 접근할 수 밖에 없다면, 비폭력적 정치적 강제는 폭력적 정치적 강제보다 낫다. 

비폭력은 매우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형태의 저항이지만 가져다주는 결과는 적극적이기도 하다. 비폭력적 강제력과 저항은 상대의 적대감이나 반발을 최소화하고 중립적 집단의 반대를 최소화하는 장점이 있다. 상충하는 이해관계의 합리적 조정과정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는다.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은 백인의 도덕적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폭력적 반란의 시도로 현실적인 방법이 아니다. 백인의 박애주의적 학교는 백인의 적개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범위에서만 흑인의 권리를 개선한다. 공격적인 젊은 흑인과 인내심 있는 늙은 흑인을 한데 묶어서 비폭력저 저항운동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수 있다.

신영배 집사 (평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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