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볕이 중요한 농사!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1년 09월 29일 (수) 23:29:27 [조회수 : 3010]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농사는 볕이 중요하다. 다른 요건도 중요하지만 지금과 같이 가을 수확을 앞두는 농부에게는 따가운 햇살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유난히 비가 잦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내리는 비가 영 달갑지 않다. 비가 오려고 하면 적어도 이삼일은 꾸물꾸물한 하늘을 봐야 한다. 볕이 나도 습도가 높을 수 있고, 볕도 없고 바람도 없을 때도 있다. 구름이 낮게 드리워지면 그날은 공치는 하루다. 오늘도 세찬 비가 종일 내렸다. 지금으로서는 비가 전혀 반갑지 않다.

추석 연휴 때 잠시 억센 비가 내린 날이 있었다. 그 비로 들깨와 콩이 쓰러졌다. 여름날의 긴 비에도 꿈쩍 않던 들깨와 콩이었는데 비와 바람이 쓸고 가니 버틸 힘이 없었는가 보다. 초반에는 쓰러진 작물을 일으켜 세우려고 애를 썼으나 지금은 그 힘이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들깨를 심은 간격이 너무 촘촘하다는 것이다. 간격을 넓게 벌려 심어야 흙의 기력을 충분히 받아 자라면서 대가 굵어지고 열매도 많이 맺히는 것인데 너무 촘촘하게 심은 탓에 모든 대가 얇고 키만 멀대같이 컸다. 그러니 세찬비에 속수무책으로 쓰러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하나는 들깨 모종을 심을 때 복토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서 그렇다. 구멍을 내고 그 안에 모종을 넣은 뒤에는 헛골의 흙으로 모종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힘을 붙여주는 것인데 이번에는 그것을 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쓰러진 것을 아무리 세우려해도 들깨 자체에 힘이 없기 때문에 나의 노력은 헛수고가 될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번에는 그저 바라만 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농사는 때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설렁설렁 했다가는 나중에 낭패를 얻기 쉽다. 내가 처음에 조금만 신경을 쓰고 작물을 심었다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은 덜 했을 것이다. 물론 소 잃고 외양간 고친 덕에 내년엔 요령 피우지 않고 제대로 심어야겠다는 마음도 얻었다. 

어느덧 들깨와 콩이 노랗게 변하고 있다. 자고 일어난 사이에 가을이 깊어가는 것을 그 속에서 본다. 가을에 따서 담그는 들깨와 콩잎 장아찌가 맛있다고 한다. 경상도 친구는 어릴적 엄마가 해준 콩잎 장아찌가 그립다고 하여 우리 콩잎을 따가라고 하였더니 친구 가족들이 모두 좋아했다고 한다. 나도 어릴 적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들이 그립다. 특히 강냉이호박범벅이 제일 그립다. 특별한 간식이 없었던 때에 엄마는 한해 농사지은 옥수수와 늙은호박과 팥으로 간식을 만들어주셨다. 겨울날 항아리에 담아 밖에 내놓으면 밤새 살얼음이 낀다. 그것을 꺼내어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앉아 먹는 재미는 지금도 잊지 못할 추억이다. 그 강냉이호박범벅 레시피는 꼭 배워놓으려 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대신 이번 가을에는 고추부각을 해 볼 참이다. 지금은 공장에서 잘 만들어져 나오지만 어릴 적만 해도 이 또한 시골집에선 빼놓을 수 없는 반찬거리였다. 가을 막바지 서리를 맞기 전 파란 고추를 따다가 반으로 갈라 씨를 빼고 밀가루에 묻혀 찜통에 살짝 찐 뒤 가을볕에 사나흘 정도 바짝 말려 보관하면 겨울 아니 이듬해 여름까지 두고두고 맛있게 먹는 달콤짭조름한 반찬이었다. 지방마다 특색이 있긴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엄마의 솜씨가 가장 좋은 것이다. 비록 그 또한 엄마에게 배워놓지 못했지만 어깨 너머로 보았던 것을 상기하며 이번 가을엔 꼭 해보련다.      

그러나저러나 이제 한 해의 농사 기간도 한 달 정도 남았다. 이 기간 동안 볕이 쨍쨍 내리쬐어주면 좋겠다. 그래야 들깨와 콩은 꼬투리 속에서 튼실하게 여물어 갈 것이고, 배추와 무는 무르지 않고 알차게 채워질 것이다. 생계형 농부가 아닌 나도 이렇거늘 생계형 농부의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그래도 흉년보다는 풍년이 나은 것이 농사일 것이다. 올 10월 한 달, 햇살이 고루고루 내려주기를 바란다. 

 

황은경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46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