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 존 폴킹혼, 비아, 2021

1755년 11월 1일 당시 유럽에서 가장 화려하고 활기찬 도시 가운데 하나였던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대지진이 발생했다. 리히터 규모 9.0가량의 강진이었다. 지진은 도시 인구 사분의 일을 희생시키고 건물 대부분을 파괴하였다. 수많은 시체들이 쌓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림과 전염병으로 고통 받아야 했다. 소수 과학자들은 비극적인 자연현상으로 리스본 대지진을 설명했지만 많은 성직자들은 그것을 타락한 도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해석했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는 그같은 해석에 분개하며 리스본 재앙에 관한 시를 쓴다. “‘신이 심판하셨도다, 그들의 죽음은 자신들의 죄악에 대한 대가로다.’ 당신들은 이렇게 말하지. 엄마 품에 안긴 채 짓눌려 피를 흘리던 이 아이들은 무슨 죄악을 범했다는 말인가? 쾌락 속에 잠겨 있는 파리나 런던보다 리스본의 악행이 더 심했단 말인가?”

교회에서 종종 회자되던 하나님은 모든 것을 관리 감독하는 신이었다. 자연재해건 전쟁이건, 질병이건 복권당첨이건, 행운이건 불행이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생각은 매우 경건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러한 믿음은 용납할 수 없는 신에 대한 개념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 또한 이 세계에서 발생하는 좋고 나쁜 모든 일의 최종적인 책임을 신에게 전가하게 만든다. 모든 것이 신의 감독 아래서 이루어졌는데 인간의 자유와 책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나님은 세계 속에서 어떻게 개입하고 계시는가” 너무도 중요한 질문이다. 이것에 따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과 신앙의 모습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과학과 신앙에 대한 주제는 단지 진화론, 창조론만을 다루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은 세상 속에서 어떻게 일하고 계신가? 근본적으로 묻는 물음이다. 과학은 자연법칙에 따라 세상이 움직인다 하고 신앙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끄신다 하는데, 하나님은 이 세상에 어떻게 개입하고 계시는가? 하나님이 우리 걸음을 인도하신다 신앙은 고백하는데 그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는 어떻게 되는가? 코로나 대유행 중에 보여 줬던 몇 몇 교회들의 신념이나 행동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렇다면 우리들의 기도는 과학 세상 속에서 어떻게 작용하는가? 기적은 일어나는가? 보이는 증거를 요구하는 과학 시대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말할 수 있으며 신앙은 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는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대신하여 이같은 질문을 던져 준다. 물리학자이자 성직자로서 과학과 종교와의 대화에 뚜렷한 발자국을 남긴 존 폴킹혼 신부의 대표저서이다. 존 폴킹혼 신부는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다가 인생의 기수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1982년 영국 성공회 사제 서품을 받은 것이다. 그는 기독교 신학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확장한 이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폴킹혼 신부는 과학과 종교, 과학과 신앙이라는 서로와 관련된 통념이 어떻게 왜곡되어 왔는지, 어떠한 측면에서 그 둘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며 진리를 탐구해 갈 수 있는지 모색한다. “과학과 종교, 과학과 신앙은 모두 필요하며 서로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줄 수 있다. 훌륭한 과학 이론이 우리의 상상력을 넓혀주고 무언가를 이해하려는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만큼이나 기독교 신앙 역시 놀랍고 흥미진진하다.” 그는 강조한다. “과학과 종교는 적이 아니다. 지식을 탐구하는 공통의 과업을 함께하는 친구이다.” 이년 가까이 코로나 대유행을 겪고 있는 오늘 특히 일독해 볼만한 책이 아닌가 싶다.

백광흠 목사(한무리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