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정신>, 몽테스키외 저, 고봉만 역), 책세상, 2006

역사를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삼권분립’을 주장한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몽테스키외의 역작 <법의 정신>은 워낙 유명하고 그 핵심 내용이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러나 역자 고봉만 선생도 언급했듯이, 그 유명세가 오히려 이 책을 실제로 읽은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동안 국내에 대여섯 종의 우리말 번역서들이 출간되었지만, 대부분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역이 많아 독자들의 기대와 관심을 저버린 측면도 없지 않다. 평자가 수백 쪽에 달하는 완역본 대신 이 발췌 번역본을 선택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몽테스키외는 프랑스 보르도의 고등법원장이자 한림원 회원이었고, 파리 사교계에서도 유명한 법복귀족(法服貴族)으로서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그는 그 지위와 재력 덕분에 유럽 여러 나라를 두루 다니면서 각국의 다양한 제도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대의 진보적인 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정치 철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는데, 볼테르나 장자크 루소와 비교해서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도 상당 부분 이 때문이다. 1728년부터 1731년까지 3년에 걸친 유럽 여행의 지적 결과물이 바로 <법의 정신>이었는데, 그 여정은 1748년 프랑스 왕국의 검열과 사상 통제를 피해 스위스 제네바에서 이 책을 출간함으로써 끝을 맺었다.

<법의 정신>은 다소 산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총 31편, 605장에 걸쳐 여러 나라의 다양한 제도와 역사적 선례를 언급하면서 법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민족의 다양한 관습과 풍습, 그리고 법”을 다루는데, 그 속에서 “제도의 기원을 찾아내고,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원인을 발견하며. 양호한 제도들과 어떤 장점도 지니지 못한 제도들을 검토한다.” 핵심 주제는 다음 여섯 가지이다. 1) 법과 정치체제의 관계, 2) 정치적 자유와 국가, 3) 풍토와 법의 관계, 4) 법률, 상업, 화폐, 인구의 상관관계, 5) 법과 종교, 6) 로마의 상속법과 프랑크족의 봉건법.

저자에 따르면, 각국의 실정법을 결정짓는 법의 정신은 세 가지 힘, 즉 자연법, 정치체제의 본질과 원리, 그리고 민족정신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 토양, 인구, 상업, 관습, 종교, 역사 등 각국의 고유 조건에 의해서 결정된다. 자연 상태의 모든 인간은 스스로를 보존하려는 생물적 본능과 집단을 이루고자 하는 사회적 본능 때문에 공동체를 형성한다. 인간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운영하기 위해서 정치체제를 선택하게 되는데, 역사적으로 공화정체(민주정과 귀족정), 군주정체, 전제정체가 존재했다. 정치체제의 본질이란 그것이 그렇게 존재하게 만드는 것이고, 정치체제의 원리란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각각의 정체는 덕성, 명예, 공포의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몽테스키외가 다양한 정치체제의 본질과 원리를 비교·분석한 것은 어떤 정치체제에서 진정한 자유가 추구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답하기 위해서였다. 여러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힘을 찾아내고, 그 힘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이 힘을 사용해서 가능한 한 최대의 자유를 실현하는 정치체제를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그의 해답은 정치권력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분리하고, 이 권력들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서로 견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바로 ‘삼권분립’이다. 권력을 가진 모든 자는 그 한계에 이를 때까지 권력을 행사하려 하기 때문에, 권력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 권력이 권력을 차단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권력 집중도 거부하며, 만일 권력이 집중될 경우 자유는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던 몽테스키외의 생각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시선을 끈다면, 그것은 어떤 권력 때문일까? 친일 전력의 경찰, 쿠데타로 득세했던 군부, 노동자를 짓밟으며 사리사욕을 채운 재벌, 기레기라 비난받는 언론, 아니면 기소권을 독점하고 사건을 조작하는 검찰???

박윤덕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