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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본심” 스가랴 11장1절~11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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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8월 30일 (월) 18:08:40
최종편집 : 2021년 08월 30일 (월) 18:09:19 [조회수 : 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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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본심” 스가랴 11장1절~11절

 

1. 진노 중에 긍휼, 심판 중에 구원

 

① (1절) “레바논아 네 문을 열고 불이 네 백향목을 사르게 하라”

▶ 동전의 양면처럼 심판의 날은 동시에 구원의 날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필수적인 과정이기 때문이다. 레바논 백향목의 불사름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세상의 모든 영광이 사라짐을 의미한다. 제 아무리 고급목재라도 한낱 나무에 불과한 까닭이다.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시103:15)” 인생의 유한성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갖게 된다. 인간의 한계를 자각할 때 진정한 신앙이 시작된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 그래서 종교의 반대말은 오만이다.

 

② (2절) “너 잣나무여 곡할찌어다 백향목이 넘어졌고 아름다운 나무가 훼멸되었도다 바산의 상수리나무여 곡할찌어다 무성한 삼림이 엎드러졌도다”

▶ 울창한 숲은 장수의 표상이지만 산천초목도 천년만년 영원하지 않고 언젠간 사라지는 존재다. 하물며 인간의 생애는 수목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짧다. “우리의 년 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년 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0~12)” 우리의 삶이 영원하지 않고 인생의 장막이 무너지는 날이 있고 그 날에 우리의 자랑이 헛되다는 사실을, 단 하루라도 빨리 깨닫고 사는 것이 지혜다. 생명과 건강, 물질과 자녀는 영원하지 않고 변하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이고 두고 가는 것이며 내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이 자명한 진실을 자각하면 하루의 삶 자체가 선물하는 기쁨과 감동을 온몸으로 만끽하며 살 수 있다.

 

③ “목자의 곡하는 소리가 남이여 그 영화로운 것이 훼멸되었음이로다 어린 사자의 부르짖는 소리가 남이여 이는 요단의 자랑이 황무하였음이로다” 영원한 것은 없다!

▶ ‘곡하는 소리’는 장송곡이다. 장례식은 고인이 마지막으로 침묵 속에 전하는 두 가지 진실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그대도 언젠가 나처럼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남은 생을 후회 없이 살라’ 죽음을 통해 삶을 보는 것이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를 인식할 때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재발견하듯 하나님의 심판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구원을 볼 수 있는 안목이 믿음의 눈이다. 타락한 나라와 성전이 먼저 무너져야 거룩한 나라와 성전이 새로 지어진다. 따라서 나라의 멸망과 성전의 파괴는 새 나라와 새 성전을 세우는 과정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의 과정이다. 이와 같은 안목을 가진 대표적인 사람이 선지자 하박국이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이 믿음이 있으면 절망 중에도 희망을 빼앗기지 않는다.

 

2. 너는 잡힐 양떼를 먹이라!

 

① (4절)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는 잡힐 양떼를 먹이라”

▶ (메시지성경)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 곧 도살될 처지의 양들을 위해 목자가 되어 주어라’스가랴의 사명은 잡힐 양떼를 먹이는 목자다. ‘잡힐 양떼’는 도살할 위기에 도인 양떼다. 도저히 살길이 없는 구제 불능의 절망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왜 하필 죽음을 앞둔 희망 없는 양떼인가! 호세아의 사명은 더 기막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호1:2)” 스가랴와 호세아의 사명은 메시아 예수그리스도의 사명을 미리 보여주는 예표다. 예수님의 사명은 잡힐 양떼를 이끄시는 목자다. 양은 온순하고 평화롭게 보이지만 고집이 세고 집착이 강한 동물이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53:6)” 예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 한마디로 죄인들의 구세주다. 그러니 얼마나 힘들고 괴로우셨을까!

 

② (5절~6절) “산 자들은 그들을 잡아도 죄가 없다 하고 판 자들은 말하기를 내가 부요케 되었은즉 여호와께 찬송하리라 하고 그 목자들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는도다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다시는 이 땅 거민을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그 사람을 각각 그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리니 그들이 땅을 칠찌라도 내가 그 손에서 건져내지 아니하리라 하시기로”

▶ (메시지성경) ‘양을 사들인 자들은 손쉽게 돈을 벌기 위해 그들을 도살할 것이다. 양을 파는 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운도 좋지, 나는 부자가 되었다. 그들의 목자들도 양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양떼는 이스라엘 백성, 산 자는 압제한 열강, 판 자는 정치지도자들, 목자는 종교지도자들이다. 잡힐 양떼의 슬픈 운명이다. 아무도 돌보지 않고 버림받아 뿔뿔이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의 비참한 상태를 은유적으로 전한다. 심지어 믿었던 하나님께 조차 버림 받은 것 같은 절망적인 현실이다. 하나님이 버리신 게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을 버리고 떠난 것이다. 도살장에 끌려간 양의 모습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비참한 실존이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시44:22)”

 

③ (7절~8절) “내가 이 잡힐 양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내가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떼를 먹일세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

▶ ‘내가 이 잡힐 양떼를 먹이니 참으로 가련한 양이라’ 하나님께서 도살당할 처지에 있던 양들에게 또 다시 목자를 보내신 까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련히 여기고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유일한 희망은, 우리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목자 되신 주님의 긍휼이다.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느니라.(롬8:36~39)”

▶ ‘이에 막대기 둘을 취하여 하나는 은총이라 하며 하나는 연락이라 하고 양떼를 먹일 세’ (메시지성경) ‘그래서 나는 돈밖에 모르는 악덕 주인들에게 가서 그 양들을 넘겨받아, 도살당할 처지에 있던 양들을 돌보았다. 나는 양을 치는 막대기 두 개를 가져다가 하나에는 사랑스러움이라 하고 다른 하나에는 화합이라고 이름을 써 넣었다’ 목자는 두 개의 지팡이로 양떼를 먹인다. 은총(恩寵, grace)은 조건이나 이해관계 없이 베푸는 사랑이다. 연락(聯絡,contact)은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에 나오는 교통(交通,communicans)이다.

▶ ‘한 달 동안에 내가 그 세 목자를 끊었으니’ 세 목자는 앞서 등장한 양을 사들인 주인, 양을 팔아버린 주인, 양을 돌보지 않던 매정한 목자를 가리킨다. 악한 목자들로부터 양떼를 구출하는 선한목자의 사역을 증거 한다. 하나님께서는 목자 출신의 모세와 다윗과 더불어 수많은 예언자들을 목자로 보내셔서 은총과 연락으로 인도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선한 목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은총과 연락으로 구원하실 것을 예언한다.

 

 

3. “천명이 나가던 성읍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던 성읍엔 열명만 남으리라(암5:3)”

 

① (9절) “내가 가로되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아니하고 죽이는 자는 죽는 대로, 망할 자는 망할 대로, 그 나머지는 피차 살을 먹는 대로두리라 하고”

▶ (메시지성경) ‘그 후 나는 양들에게 지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에게 지쳤다. 더 이상 너희를 돌보지 않겠다. 이제 죽든지 살든지 너희가 알아서 해라’ 얼핏 보면 이해가 힘든 난해구다. 선한목자가 양떼를 죽고 망하게 내버려 둔 까닭은 무책임한 방치나 방관이 아니다. 지쳐서 포기한 것이다.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하지만 돌이켜 회개하지 않았다. 심지어 독생자를 보내셔도 듣지 않았다. 끊임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않았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형벌은 멋대로 행하게 내버려두시는 것이다. 심판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회개치 않는 완고함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7~18)”

 

② (10절~11절) “이에 은총이라 하는 막대기를 취하여 잘랐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하였음이라.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줄 안지라”

▶ (메시지성경) ‘그러고 나서 나는 사랑스러움이라 이름 붙인 막대기를 무릎 위에서 부러뜨렸다. 그래서 내가 모든 백성과 맺었던 아름다운 언약을 깨뜨린 것이다. 막대기와 언약이 한 번에 깨졌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 않으신다. 언약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쌍방에 의한 상호협조로 성립한다. 하나님과의 신실한 언약을 깨뜨린 건 백성들의 계약위반이다. 이는 언약파기가 아닌 언약갱신이다. 은총의 막대기에서 징계의 막대기로의 변화다.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시89:32)”

▶ ‘당일에 곧 폐하매 내게 청종하던 가련한 양들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던 줄 안지라’ 하나님이 즉시 은총을 거두시자 열국에 팔려가는 신세로 전락했다.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삼하7:14)” 거듭 강조하신 말씀이기에 청종하던 자들은 ‘결국 올 것이 왔다’고 여겼다. 은총으로 인도하실 때 듣는 게 지혜다. 말로해서 듣지 않으면 ‘극약처방’도 불사하신다. 극약처방은 더는 방법이나 차도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내리는 최후의 수단이다. ‘백신’은 치료약이 아니라 병원체의 감염이 있기 전 인체 내에 인위적으로 약화나 변형된 병원체 등을 주입하여 인체의 면역력, 저항력을 키우는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충격요법’은 환자의 생명에 위험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급격히 최대한의 자극을 주어서 치료하는 극단적인 치료법이다. 위와 같은 치료법의 공통점은 아프고 부작용이 있어 위험하다. 하지만 죽이기 위함이 아니라 살리기 위한 방편이다. 이스라엘나라의 멸망과 예루살렘성전의 파괴, 열국에 흩어지는 디아스포라는 구원과 회복을 위해 하나님이 내리신 특단의 조치다. 성경의 역사 속에서 한두 번 벌어진 사건이 아니다. 수차례 시행되었고 또 언제든 다시 시행하겠노라 누누이 강조하셨다.

 

③ (암5:3)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중에서 천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백명만 남고 백명이 나가던 성읍에는 열명만 남으리라”

▶ 이는 지난해 3월15일 당당뉴스에 올린 말씀학교에서 이미 묵상했던 말씀이다.(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아모스5장) 아모스의 예언은 지난 8월9일 한국교회에서도 이루어졌다. 변경된 4단계 방역지침에 따르면 종교시설은 예배공간별 최대 10% ‘100석 이하는 10명까지, 1000석 이상은 최대 99명까지’다. (메시지성경) ‘이것은 메시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천명이 행진하며 나갔던 도성은 결국 백 명만 남게 되고, 백 명이 행진하며 나갔던 도성은 결국 열 명만 남게 될 것이다. 오, 이스라엘 가문이여!...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한다. 진실은 인기가 없는 법이다. 그러나 적나라하게 드러난 진실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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