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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은 낯선 땅일까? 아니면 낯설게 된 땅일까’철원 DMZ’ 평화통일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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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8월 27일 (금) 20:39:27
최종편집 : 2021년 09월 02일 (목) 16:03:44 [조회수 :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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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DMZ’ 기행
한민족통일신학연구소 주관 
평화통일기행

박상호(한민족통일신학연구소)

 
통일 그 낯선 이름

 
20년 전쯤의 일이다. 90년대 후반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이 시기의 학창 시절을 공유하는 사람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한 일. 6월이 되면 우리는 통일을 염원하는 글짓기와 웅변대회에 열정을 쏟았다. 잠깐, 열정이라는 단어가 낯설 수 있겠다. 아이들은 순진무구하며 동시에 솔직하지 않던가. 우리는 열렬하게 통일을 염원하며 또 그만큼의 의문을 품으며 6월을 지났다. 물론 나에게 6월은 소중하다. 말주변이 없던 소년을 걱정하던 어머니는 아이에게 웅변을 가르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자연스레 한 소년으로서 통일에 대한 염원을 연설문의 형태로 표현해야 했다. 

다만, 소년은 통일을 의심하지 않았다. ‘한민족’이라는 말은 소년의 마음을 들끓게 할만한 요소였으니. 나는 이 염원을 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표현했다. 돌이켜보면,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떠한 장벽들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었던가. 그건 아이의 마음으로 보았을 때 어른들의 이기심에 다름 아니었다.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하는 불편함이 있으시다면 조금은 내려놓으시라. 때로는 아이의 순진한 마음이 난제를 꿰뚫는 힘으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20년 뒤, 사뭇 다른 풍경의 분위기가 나 혹은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반세기가 훌쩍 넘은 이 중대한 사안은 생존의 문제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한 세대 혹은 두 세대를 사이에 두고 우리는 통일에 대한 서로 다른 얼굴을 품고 살아간다. 세상의 원리는 단순하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공감할 수 있으랴. 새로운 세대는 염원 이전의 의문을 해소하기를 원한다. 단순하게 표현해서 ‘왜?’라는 문제다. 통일 담론의 난제는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 왜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하는가. 다만, 우리는 여기서 이 문제를 둘러싼 긴 서사와 세부 내용을 모두 담을 수 없다. 그럴 필요도 없고. 단순하게 접근해 보자. 

아이처럼 직접 보고, 느껴 보자는 말이다. 낯섦을 극복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경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낯선 땅 철원


월요일 아침 서울에서 차량으로 2시간 남짓, 남과 북의 풍경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낯선 땅 철원으로 향했다. 2021년 8월 9일 화요일 한민족통일신학연구소(이사장: 이광섭목사, 소장: 최태관목사)에서 주최한 ‘철원(DMZ) 기행’,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재학 중인 학부 및 대학원생, 졸업생, 그리고 목사님들로 구성된 약 20여 명은 철원 동송읍에 위치한 월촌감리교회(담임목사 김형래)에서 모였다. 20년을 훌쩍 넘는 세대 구성은 이 기행의 목적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 단순한 문제. 이들은 어떤 공감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이러한 궁금증을 가지고 우리의 기행은 시작되고 있었다.

 

   
 

 

   
 

 

월촌감리교회에서 모인 우리는 김형래 목사님을 통해 철원 지역 선교 역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모든 땅은 나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철원은 제법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조금 낯설다. 그것은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지역적 특성 탓이기도 하다. 물론 이 사실은 북한 땅이 그리 멀지 않을 곳에 있다는 사실을 대변한다. 분단국가가 지닌 슬픔은 전쟁의 위협 앞에 이 공간을 위험이라는 이름으로 덧칠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가. ‘가까움’이란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한다. 분단의 현실은 이만큼 가까우나 그 분위기를 애써 외면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철원이 불과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굉장히 큰 역사(驛舍)를 지니고 있던 강원도의 큰 도시였다는 사실은 조금은 놀라운 충격이었다. 물론 그것은 무지에서 기인한다. 6.25 전쟁 이전 북의 통치를 받던 철원은 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도시로서의 기능을 상당 부분 상실했다. 철원이 입은 폭격의 상처는 말로 다할 수 없다. 더욱 비탄스러운 것은 이 폭격과 함께 철원이라는 도시의 역사적 흔적을 함께 상실 했다는 사실에 있지 않을까. 

철원은 도시 규모에 걸맞게 강원도 북부의 초기 선교와 교육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전쟁의 상흔은 이러한 기억을 함께 앗아가 버렸다. 철원이 낯선 땅이 되어버린 이유는 분단의 현실과 매우 밀접한 연관 안에 있는 것이다. 반대로 철원의 기억을 복원하는 일은 선교의 역사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질문을 다시 던져보자. 철원은 낯선 땅일까. 아니면, 낯설게 된 땅일까.

 

민통선 안으로 : 통일촌교회

 

   
 

우리는 각자의 차량에 올라타고 민통선(민간인 통제 지역) 안으로 들어갔다. 남방한계선 바깥 남쪽으로 5~10km에 있는 지역은 민간인 통제구역으로 지정되어 군의 출입 허가 없이는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민통선을 넘어 우리가 향한 곳은 남쪽에서 이북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교회 중 하나, 유곡 마을에 위치한 ‘통일촌 교회’다. 권혁석 담임 목사님의 안내에 따라 우리는 예배당 안과 밖을 둘러볼 수 있는 값진 기회를 얻었다. 지금은 포장된 도로가 교회 앞에 길을 내고 있지만, 제대로 된 도로도 갖추어지지 못할 만큼 유곡리는 ‘척박한 사역지’였다고 한다. 

유곡리의 높고 푸른 하늘, 태양이 저 멀리 오성산 등줄기를 벗 삼아 내려앉았다. 마을은 전쟁의 상흔이 무색하게 고요한 정취를 풍긴다.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가 지났다. 마을을 지키던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젊은 층 유입인구가 없다는 사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이 마을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들이 한(恨)을 품고 있을 것이다. 유곡 마을의 평안을 위해 기도했다. 언젠가 이곳이 지닌 모든 슬픔이 위로받기를.

한탄강 강줄기를 따라 주상절리가 장관을 연출하는 곳, 자연이 선사한 눈부심에 한눈이 팔린 사이 민통선 안에서 우리가 마주친 또 하나의 장소는 ‘철원 금강산 전기철도교량’이다. 금강산 전기철도교량은 일본 회사인 철춘 철도 주식회사가 1926년 설치한 곳으로 철원역을 출발하여 내금강까지 하루 최대 8번 운행하던 철도이다. 이 교량은 금강산 관광 이외에도 창도 지역의 풍부한 지하자원인 유화 철을 수송하기 위해 운행되었다고 한다. 물론 우리 역사에서 보면 한국 전쟁 시기에 북한의 군수물자 수송으로 사용되는 등 한국 근-현대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끊긴 교량 앞에 서 있으면, 금방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달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기차는 더 이상 운행되지 않는다. 강물을 따라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기차가 다니지 않는 외로운 교량을 보는 일, 흘러야 할 것이 흐르지 못하는 흐름의 절단이 묘한 기분을 실어 나른다.
 
 

철원제일교회 : 다시 살아난 불씨


벽과 바닥의 일부만 남기고 폐허가 된 교회의 터, 철원제일교회의 이야기다. 북장로교회 선교사 웰본(E, A. Welbon)에 의해 1905년 철원읍에서 시작된 이 교회는 1907년 감리교회 소속으로 편입되었다. 폐허가 된 이 교회는 1937년 준공된 교회 건물로 건축가 웰리엄 메럴 보리스(William Merrell Vories)가 건축했다고 알려져 있다. 철원 지역은 일찍이 초기 기독교 선교로서 저항과 구국 운동에 앞장섰다. 필연적으로 복음을 지키기 위해 수난을 당한 역사를 함께 지니고 있기도 하다. 

철원제일교회는 이러한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폐허가 된 교회의 터, 기쁜 소식은 이 모든 상징들을 품에 끌어안고 철원제일교회가 몇 해 전 복원되었다는 사실이다. 2014년 준공예배부터 철원제일교회(2013년 복원)를 담임하고 있는 이상욱 목사님의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철원이 품은 선교의 역사와 사명, 통일 후의 선교적 열정까지 생동감 있게 엿들을 수 있었다.

철원은 멀리, 멀리 있지 않다. 교회의 복원은 철원이라는 낯선 땅에 새겨진, 교회가 품어 안은 그 숨겨진 상징을 새롭게 되살리는 우리의 관심과 궤를 같이 한다. 이상욱 목사님은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사참배 운동의 첫 순교자 강종근 목사님의 생의 기억을 다시금 불러오며 그 의미를 생생하게 되살렸다. 철원제일교회를 담임하셨던 강종근 목사님은 처절한 옥 생활 중에서도 “자신을 취조하던 일본 경찰을 절대 미워하지 말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라”라고 하셨다. 결국 고단했던 삶을 떠나는 시점에서도 ‘삶이 기쁘다’라는 말씀을 남긴 목사님의 최후의 문장은 식어가던 우리의 신앙의 열정에 불씨를 되살린다. 

  

   
 
   
 

그 열정이란 무엇인가.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일이 아닌가. 그렇다면 우리에게 사라진 열정이란 무엇인가. 철원제일교회가 껴안은 상징들이 아닐까. 이때 통일은 낯선 언어로 남기를 거부한다. 단순한 이데올로기를 넘어선다는 말이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수많은 역사의 흔적들, 잊고 있던 신앙의 불씨, 그 모든 것들이 통일 이면에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되살아 난 열정을 통해 숨겨져 있던 목소리 안에서 생생한 생명력으로 자신을 드러내실 것이다. 우리는 교회의 터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기도했다. 각자의 소명을 마음에 품고, 그 숨겨진 미래의 희망을 간절히 기대하며. 철원이 조금은 가까워져 있었다.             

 


소이산 정상, 새로운 꿈이 솟는다


철원 평야에 우뚝 솟은 362m의 작은 산, 약 30여 분을 오르면 소이산 정상에 도착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정상의 열기와 함께 몰아쳐온다. 이곳은 고려시대부터 외적의 출연을 알리던 제1봉수대가 위치한 공간이다. 그만큼 철원이 한 눈에 보인다. 한국전쟁 이전의 화려했던 구 철원의 역사를 한눈에 품은 철원 역사의 중심지에서 우리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 도대체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럽다. 숨을 천천히 고른다. 날이 좋다. 저 멀리 북한 땅이 눈에 훤히 보인다.

철원의 풍경이 단번에 각자의 시선을 압도했을 때, 목사님들의 눈가에 땀과 눈물이 함께 맺혔다. 벼가 무르익을 때 다시 ‘이 산에 오르자’는 한 목사님의 말이 귓가를 스쳐 온다. 철원이 숨을 쉬는 곳, 수많은 초기 선교의 주역들이 목숨을 걸었던 그 절체절명의 순간들이 바람처럼 가슴으로 파고들며 소이산 정상을 성스러운 땅으로 변모 시키고 있었다. 조금 더 가면 북한의 동료들이 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함께’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순간이다. 철조망은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건 비무장 지대를 둘러싼 숲, 고요한 자연의 울음이었다.

 

   
 

우리의 기행은 어떻게 마무리되고 있을까. 통일은 우리에게 얼마나 가까워진 이름이 되었을까. 함께 참여했던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생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빌려 한 번 들어본다. 

 
“이제는 한민족이던 북한을 오로지 맑은 날씨에 DMZ너머로 볼 수 있다. 그 곳에서 마주한 분단의 아픔은 잊고 있던 북한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이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어주신 자유가 동일하게 주어지기를 기도하고, 지금 여기서 내가 어떻게 응답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이 되었다.” (감리교신학대학교학부, 현수빈)

 
“십자가로 하나님과 인류는 화해하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복음의 역사 속에서 오늘 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한민족통일신학회에서 준비한 철원 기행을 통해서 하나님이 맡겨주신 애통의 마음이 또한 그곳에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과 인류를 화해하게 한 십자가 정신이 남과 북의 화해와 평화를 향해 있음을 알았습니다.” (감리교신학대학교대학원, 김도경)

경험보다 좋은 선생이란 없다는 말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두 사람의 후기다. 특히나 현수빈 학생은 자신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어떻게 이 자리에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이 말은 상상하지 못했던 공간에서 그만큼 예상하지 못했던 경험을 했다는 말로 이해된다. 멀게만 보이던 ‘통일’, 시간의 격차를 물리적 공간의 경험을 통해 끌어당기며 ‘지금-현재-나’의 의미를 다시 묻는 그녀의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김도경 원우의 말처럼 ‘통일’은 그 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류의 화해’, ‘십자가 정신’이라는 신학적 의미로 거듭났을 때 더 생생한 무엇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시선은 역사적 의미를 신학적 의미로 읽어내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낯선 공간(철원)으로 향했던 우리의 기행은 이제 낯선 미래를 낯설지 않은 미래로 바꾸어 갈 것을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이 기행의 값진 경험이 한민족통일신학연구소의 신학적 연구들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리라 기대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때로는 단순함이 필요하다. 아이처럼 직접 경험하고 느끼는 것 말이다. 적어도 철원이라는 도시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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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봉성도 (122.101.20.169)
2021-08-30 08:15:04
철원은 평화의 상징이 되어야 한다.
6.25때 철원평야를 두고 북괴와 중공군 국군간에 치열한 접전이 펼쳐졌지요.
백마고지의 주인이 12번이 바뀔정도로 엄청난 전쟁이 있었던 곳인데 그래도 우리
국군이 적들의 총탄을 온 몸으로 받아내어 기어이 백마고지를 지켜냈습니다.
김일성이 철원평야를 뺏기고 3일간 굶었다는 우스겠소리도 있었습니다만 철원은
앞으로 더 이상 전쟁이 없는 평화의 땅이 되어 평화의 상징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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