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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탕의 역사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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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8월 24일 (화) 22:15:23 [조회수 : 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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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온다습한 쓰촨의 기후 속에서 탄생한 극한의 매운 맛 마라탕의 역사

 

며칠 전 집 근처 새롭게 오픈한 마라탕집에 갔던 아내와 딸이 맛이 참 괜찮다며 그 집에 나를 데리고 갔다. 매운 것을 아주 좋아하지 않는 나였지만 매운 맛을 선택할 수 있기에 함께 가 보았다. 한쪽에는 정말 다양한 식재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중국음식이라 그런지 당면사리도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접시에 다양한 야채와 식재료를 고른 후 무게를 재서 가격을 정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재료만 고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잠시 후 내가 고른 재료들을 끓인 후 매운 마라탕육수에 부어서 가져다준다. 반찬은 단무지 하나다. 중간 맛을 선택해서 먹을 만 했지만 중간에 목구멍에서 느끼는 매운 통증에 몇 차례 기침을 하며 찬물을 벌컥대기도 했다. 

예전엔 경험해 보지 못한 맛의 음식 마라탕이 이렇게 대중화된 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이 음식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오늘은 마라탕 이야기를 해 보자. 마라(麻辣)라는 말은 엄청 맵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마(麻)는 마비가 된 것처럼 얼얼한 매운맛을 의미하고 라(辣)는 불을 삼킨 것처럼 뜨거운 매운맛을 의미한다. 그런 마(麻)와 라(辣)가 만났으니 극한의 매운맛을 내는 것이다. 

마라탕의 뿌리는 중국 쓰촨(四川)에 있다. 쓰촨은 험준한 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지형으로 이름처럼 4개의 큰 강이 흐르고 있기에 여름에는 무척 무덥고 습도가 높다. 악명 높은 더위와 습도는 악명 높은 매운맛을 만들어 냈다. 중국의 전통의학에서는 습기를 만병의 근원으로 여겨 경계했다. 몸 안에 습기가 차면 몸이 무거워지고 이게 계속되면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킨다고 믿고 있기에 쓰촨사람들은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면서 몸 안에 들어찬 습기를 빼내려고 했다.

또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소금에 절이거나 여러 가지 향신료를 뿌렸는데 쓰촨 사람들이 이용한 대표적인 향신료는 화자오(花椒)와 건고추였다. 화자오는 레몬처럼 신맛을 내고 하이드록시 알파 샨쇼올(hydroxy alpha sanshool)을 함유하고 있어서 동시에 혀가 얼얼해지는 매운 맛을 내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이 맛을 마(저리다 麻)라고 했다. 또 건고추는 입안에서 뜨거운 감각으로 느껴지는 매운맛을 내는데 이 맛을 라(맵다 辣)라고 했다. 

쓰촨사람들은 이 화자오와 건고추를 기름과 함께 섞어 소스를 만들었는데 이 소스의 이름이 바로 마라(麻辣)이다. 마라는 쓰촨의 여러 음식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소스이고, 때문에 쓰촨의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마라음식으로는 마라훠꿔(샤브샤브), 마라탕, 마라샹꿔(볶음), 마라롱샤(가재), 마라팡시에(꽃게), 마라두부 등 다양한 음식이 있는데 모두 중국에서는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음식들이다.

1920년대, 쓰촨의 자연환경은 험악해서 육로로 쓰촨에 들어가는 것은 무척 어려웠기에 배를 타고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 충칭이나 청두에 닿는 루트가 많이 이용되었다. 그런데 이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순풍을 만나면 돛을 세워서 노를 가볍게 젓기만 해도 배가 잘 이동했지만 바람이 약할 경우에는 뱃사공들이 배를 밧줄에 묶어 직접 끌고 가야만 했다.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피곤에 지친 뱃사공들은 강기슭에 배를 대고 모여 입안이 얼얼해 질 정도로 매운 국물을 끓였다. 그들도 쓰촨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국물에는 마라소스가 들어갔다. 그리고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채소나 미리 챙겨온 천엽이나 내장 같은 부산물 고기들을 국물에 담갔다. 이 음식을 마라훠거라고 한다. 마라탕의 기원이 되는 음식이다. 

마라훠거가 뱃사공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자 청두(成都)나 충칭(重慶)의 부두에 있던 상인들도 이것을 만들어서 팔기 시작한다. 이들은 꼬치를 진열해 놓고 손님이 자기가 먹을 꼬치를 고르면 상인은 그 재료를 구멍이 송송 뚫린 작은 냄비에 담아 국물이 펄펄 끓고 있는 큰 솥에 담갔다. 재료가 익으면 꺼내서 그릇에 담았고 그 위에 국물을 부어 일품요리 형태로 내놓았다. 쓰촨사람들은 이 음식을 마오차이라고 불렀다. ‘채소를 데친 뒤 다시 꺼낸다’는 뜻이다. 마라훠거가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음식이었다면 이것은 ‘한 사람만을 위한 작은 훠거’가 되었다. 

쓰촨의 마오차이가 쓰촨 밖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마오차이가 이렇게 늦게 알려지게 된 것은 중국의 호구제도때문이었다. 1950년대 말 중국정부는 호구제도를 만들어서 전 국민을 농민과 시민으로 구분하여 농민이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막았다. 그래서 1970년대까지는 사실상 거주 이전의 자유가 제한되어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중국이 개혁개방을 시작했고 정부정책도 거주 이전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중국내 이동인구가 늘면서 중국 각지의 음식들을 맛보는 사람들도 늘었다. 

쓰촨(四川)의 마오차이도 란저우(兰州)의 우육면, 신장(新疆)의 양꼬치와 함께 본래 있던 지역을 벗어나 중국 전역에 소개되기 시작했다. 베이징(北京)이 있는 둥베이에서 마오차이는 마라탕이 된다. 마오차이를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둥베이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엄청난 매운 맛을 강조한 이름이었다. 둥베이의 마라탕은 둥베이 사람들 입맛에 맞춰 변화되어 마오차이와 조금 다른 음식이 되었다. 마라소스가 덜 들어갔고 대신 땅콩소스가 첨가되어 마라맛은 줄고 고소한 맛은 증가되었다. 국물은 땅콩소스 때문에 탁한 빗깔을 띠게 되었다. 

2000년대 둥베이의 마라탕은 중국 전역에서 인기를 끌었다. 2010년대에는 대림동의 중국인 거리를 중심으로 한국에 소개되기 시작했는데, 이후 한국으로 유학을 온 중국인들이 늘고 반대로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한국인들이 늘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마라탕이 입소문이 나게 된다. 결국 2019년에 한국에서 마라탕은 골목 구석구석까지 마라탕 가게가 생길 정도로 폭발적인 속도로 대중화되었다.

매운 맛은 뇌에서 통증으로 인지되기 때문에 뇌는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엔도르핀 같은 마약성 진통물질을 분비한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해소된 느낌을 받는 것이다. 100년 전 고온다습한 쓰촨의 기후와 노동의 피곤함을 견디기 위해 뱃사공들이 먹었던 것처럼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매운 마라탕을 먹어보는 것은 어떨까? 마라탕은 뜻밖의 기운을 선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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