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의 여성이 불법 원정 성매매를 했다고 일본 티브에 얼굴이 공개되었다. 불편한 마음, 아직 설명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이 스쳤다. 낯선 나라로 그를 끌어들여 돈을 번 조직은 어디 가고? 성매수자는 어디 가고? 일본으로 유학 갔다고 믿었을 부모, 그리고 그의 지인들은 마스크 너머의 그를 단번에 알아봤을 텐데. 그는 100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영상 속에서 낙인으로 남겨졌다. 창녀에겐 국가가 없다. 여자에게 국가가 없었듯이, 노동자에게 국가가 없었듯이

베네딕트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에서 국가는 남성들끼리의 ’형제애(brotherhood)’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남성들이 권력을 독점한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국가는 남성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남성의 얼굴을 한 국가에서 여성은 헌신적이고 숭고한 어머니 이거나 정숙한 아내일 때 환영받는다. 진한 화장을 하고 시위에 나온 여성이 “ 남자들은 진한 화장을 한 여자들을 무서워해요. “라고 말한 적 있다. 여자들이 성적 욕망을 드러낼 때 남성들은 혐오하거나 두려워한다. 

가출한 딸의 머리를 밀었던 아버지, 바람난 아내를 조리돌리며 분을 풀던 남편처럼 남성국가는 여성을 겁주고 달래고 통제해왔다. 임진왜란때 가장 많이 열녀문이 세워졌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전쟁속에서 여자들에게 목숨보다 정조를 강조한 흔적이다. 

국가가 성적인 문제와 연루된 여성을 외면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몽고에서 살아돌아온 여자들을 화냥녀라 부르며 문란한 여자로 치부했고, 일본강점기때 군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들에 대해 우리정부는 점잖게(?) 모르는 척했다. 여성들은 오롯이 혼자 응어리를 견뎌야 했다. 40년이 훌쩍 지나 할머니들이 함께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

▲ 그림 김덕순, 끌려감

▲ 그림 강덕경, 빼앗긴 순정

남자들의 일탈은 세계를 넓히는 대범함이고 여자들의 일탈은 위험한 일로 여기는 가부장성이 그대로 국가에 반영되었다. 오랫동안 페미니즘과 국가는 불편한 관계였다. 소수자성의 감수성은 저항, 변혁을 꿈꾸는 불온한 집단의 특성이다. 때론 시민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국가는 부와 권력의 결탁 장이 되기 쉽다. 소수자성에 기반을 둔 페미니즘이 이런 국가에 날 선 비판의 감수성을 갖는 것은 이상할 것도 없다. 

아시아 아프리카 활동가들과 함께한 국제 컨퍼런스에 참여했을 때다. 아프리카 지역에서 온 한 참가자가 ‘나는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민족주의자다“ 라는 말을 했다. 테이블은 싸늘해졌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그를 가르쳐야 하나? 그 낯섦은 내게 질문으로 남겨졌다. 

페미니즘과 민족주의의 관계는 국가마다 다르다. 서구 페미니스트들은 의무만 요구했지 시민권을 주지 않은 국가를 비판했다. 프랑스 혁명당시 국가는 함께 혁명에 참여한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달라고 주장했던 올랭드 드 구주를 단두대로 보냈다. 당시 여성이 평등한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죽을 죄를 짓는 일이었다. 

▲ 그림 베르사이유궁으로 행진하는 여성들

▲ 그림 올랭드 드 구주가 단두대에 오르기전

그렇다고 아시아 아프리카 국가는 여성에게 동등한 시민권을 주었다는 말일까? 물론 아니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보수화가 진행되고 민족의 순수성을 유지하려 애쓴다. 이슬람차별이 확산되자 탈레반은 여성들을 단속했다. 학교도 안 보내고 빨리 결혼시켜버렸다. 최근의 일이다. 이슬람권 아시아 여성들은 옹졸하고 폭력적인 가부장제와 여성인권으로 포장한(pinkwash) 무자비한 제국주의 사이에서 힘겨워한다. 종종 그들은 민족의 생존과 명예를 지키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만약 국가가 어머니의 얼굴을 가졌다면 어땠을까?

24살 여자, 일본땅에서 누구에게도 도움받을 수 없었던 그를 생각하며, 새삼 국가가 무엇이냐고 묻게 되었다. “폴 틸리히가 강연 때 한 말이다. 천주교 공동체가 개신교 공동체에 비해 정신질환이 훨씬 적다. 그 이유는 천주교는 여성을 (신의 어머니로) 존중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나의 은사 선한용 선생님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국가든 교회든 여성의 목소리를 회복해야 하지 않을까? 가장 여린 사람들을 품기 위해서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