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공산주의 선언,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 아론 바스타니 지음, 김민수 윤종은 옮김, 황소걸음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라는 책을 읽었다. 계속해서 ‘호모 데우스’도 보게 되었다. 머리 속에 ‘사피엔스’라는 단어가 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그런 차에 ‘사피엔스의 미래’라는 제하의 유튜브를 보게 되었고 급기야 그 책도 읽게 되었다. 세계적 지성의 지적 경연이라는 멍크 디베이트(https://munkdebates.com/)는 캐나다 금광 재벌 피터 멍크(Munk)가 세운 오리아재단이 2008년부터 열어온 지적 경연이다. 당대에 가장 뜨거운 국제 현안을 두고 연 2회 세계 정상급 지식인들을 불러 토론을 벌인다. 

2015년 11월에는 전례 없는 거대 주제(사피엔스의 미래)를 놓고 기라성 같은 토론자들이 격돌했다. 세계적인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와 과학 방면의 출중한 베스트셀러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매트 리들리, 그리고 국내에서도 단단한 팬 층을 거느린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과 <다윗과 골리앗>, <아웃라이어> 같은 베스트셀러로 주목받아온 논픽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이다. 인류의 진보를 낙관하는 편에 선 핑커와 리들리는 계몽주의의 계승자이자 경험과학에 충실한 학자들이다. 반대편의 글래드웰과 드 보통은 평소에도 주류의 생각과 통념을 뒤집는 책을 많이 써왔다. 이른바 인문주의 전통의 계보를 잇는다. 결국 지구의 운명을 계속 진보한다는 낙관론과 인간은 불완전한 호두(인간의 뇌를 지칭)를 갖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비낙관론 간의 토론이었다. 결론은 낙관론이 비낙관론에 비해 우세하였다. (실제 토론을 관람한 청중에게 토론 전과 토론 후에 투표하였다) 컵에 물이 ‘반씩이나’와 ‘반밖에’와의 논쟁이었던 것이다.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 Fully Automated Luxury Communism)는 영국 정치경제학자인 아론 바스타니(Aron Bastani)가 지은 책이다. 책은 유투브(일당백)로부터 소개받아 읽었다. 소련의 붕괴로 이미 공산주의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21세기에 다시 공산주의가 부활했고 그것이 완전히 자동화되어 움직이며, 그 속의 삶은 매우 럭셔리하다는 이야기인 듯. 참 의아했다. 공산주의가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러시아, 중국, 북한 등 공산주의를 표방한 국가의 공업화가 덜 이루어 졌기 때문에 나누어 줄 물건이 없어서 결국 공산주의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공산주의가 부활할 수 있을까? 서두에 소개한 ‘사피엔스의 미래’ 중에 낙관론을 주장과 일맥 상통한다. 기술낙관주의자인 저자의 생각으로 가능하다니 한번 그의 논지로 들어가 보자. 

책은 미래를 찾는 사람들의 상황을 소개하면서 시작된다. 양(중국 허난성 정저우 공장 노동자, 로봇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까 걱정), 크리스(미국 우주 소행성 채굴 기업 투자자), 레이아(미국 태양에너지 등 제3차 산업의 혜택을 누리는 세대, 그러나 아버지의 직업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음), 피터(바이오기술로 활기찬 예순살 노인, AI기술로 미래의 변화를 생각), 페데리카(AI기술로 진화된 새로운 쇼핑 경험으로 깜박 잊었던 선물사기에 성공), 더그(죽은 애완견 DNA로 BI와 AI 기술로 모조 애완견을 만들고 길음)이 그들이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실은 근거로 하여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를 합리적으로 추측해 본 것이다. 그럼 과연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FALC)가 무엇인가?

1부는 현재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혼란을 거대한 무질서와 세 차례 대변혁으로 설명하면 FALC를 정의하고 있다. 자본주의 질서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신앙, 즉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며, 자본주의라는 신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위기라고 말한다. 자본주의의 신도들은 지금까지 자본주의가 거둔 성과를 내세우지만, 자본주의의 재생산성 자체를 위협할 만한 위기 다섯 가지를 피해갈 수 없으리라 말한다. 하늘 아래 벌어지는 혼란(위기)는 5가지인데, 첫째,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의 결과다. 둘째, 자원 부족이다. 특히 에너지와 광물, 신선한 물 부족이 큰 문제다. 셋째, 사회의 고령화다. 수명은 느는데 출생률은 떨어진다. 넷째, 세계적으로 갈수록 늘어나는 빈곤층이다. 이들은 '잉여 계층(unnecessarial-기계로 대체해도 별문제가 없는, 기업에 불필요한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뜻하는 신조어)’을 형성한다. 다섯째, 새로운 기계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로운 기계의 시대는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기술적 실업의 시대를 예고한다. 갈수록 인간보다 기계가 많은 육체노동과 인지 노동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이런 위기를 신자유주의에 유도되는 자본주의가 야기하고 있으며 이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FALC의 기반이라고 한다. 적어도 우리가 아는 자본주의는 곧 끝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다음에 무엇이 올지? 

인류는 현재까지 진화하면서 3차례 대변혁을 겪는다. 

1차 대변혁- 농업혁명, 1만 2000년 전에 일어났다. 정착해서 농사짓는 생활을 시작했다. 동물 사육과 식물 재배라는 혁신적인 방법을 도입하여, 잉여 식량과 에너지를 획득했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다른 동물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하고, 인간의 존재가 점점 더 복잡한 기술과 정교한 사회제도를 활용할 능력이 있다고 여기게 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이 모든 변화의 토대는 농업으로 전환이다. 그리고 농업이 1차 대변혁의 토대가 됐다.

2차 대변혁- 산업혁명, 약 250년 전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그전까지 상상도 할 수 없던 창조와 파괴의 위업을 이룩했다. 생산과 에너지의 변화다. 화석연료를 동력으로 하는 효율적인 기계장치가 사람과 동물의 노동, 신뢰할 수 없는 물과 바람 같은 재생에너지에 의존하던 경제 생산방식을 바꿨다. 다목적 과학기술의 토대는 증기력이다. 증기력과 화석연료가 결합하면서 공장 체계에 맞춰 생산방식이 바뀌었고, 철도망과 원양 증기선 덕분에 전례 없는 시간과 공간의 단축시켰다. 전 세계를 잇는 수송망 발전에 힘입어 국가 간 실시간 통신이 가능해졌다. 

3차 대변혁- 정보의 해방, 경쟁의 결과 나타난 끊임없이 혁신하려는 경향, 인간의 노동을 부단히 대체하고 생산성을 최대화하려는 경향은 3차 대변혁으로 이어졌다. 3차 대변혁의 특징은 점점 더 많아지는 정보의 풍요다. 탈(脫)희소성이라는 새로운 상황이 만드는 현상은 '무한 공급’이다. 정보뿐만 아니라 노동도 무한히 공급된다. 다양한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인간만 할 수 있던 일을 점점 더 기계가 대체한다는 의미다. 3차 대변혁 때는 탄화수소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으로 회귀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어느 때보다 똑똑한 기계와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가 결합한 이른바 새로운 기술과 에너지가 기반이 돼서 우리는 이 세계의 한도를 뛰어넘어 자원을 채굴할 것이고, 이는 원자재의 무한 공급으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채굴한 우라늄 등 재생이 안 되는 지구의 자원보다 2배나 많은 에너지를 1년 내 태양에서 얻는다. 그리고 지구 밖에서 필요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우주 과학으로부터 알고 있다. 기하급수적으로 진화하는 3차 대변혁은 지구를 혼돈에서 유토피아로 변화하게 한다. 

그러나 앞서의 5가지 위기는 자본주의가 자초한 것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바뀌어야 한다. 미래학자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s)는 1984년 ‘정보는 공짜가 되고 싶어 한다.’고 일갈했다. 21세기 중반에는 정보뿐만아니라 노동, 에너지, 자원에도 영향을 주어 일자리를 넘어선 세계, 이윤을 넘어선 세계, 더 나아가 희소성이 넘어선 세계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럼 완전히 자동화된 화려한 공산주의는 무엇인가? 기술혁신에 따라 희소성은 소멸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자본주의를 승리하게 한 핵심 요소인 보상 시스템, 곧 이윤이 존재하기 위해 필수적인 희소성이 사라진다면, 마침내 FALC가 나래를 펼칠 조건은 갖춰진 것이다.

2부는 새로운 여행자들의 미래 생활을 상상하면서 ‘화려한 공산주의’를 현실화할 수 있는 실제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를 어떻게 통제해야 하는지 문제 제기를 하고 있다.

완전한 자동화: 노동의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
무한한 동력: 에너지의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
우주에서 채굴하기: 자원의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
운명을 편집하다: 수명 그리고 건강의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
동물 없는 음식: 음식의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

자동화로 이뤄낸 높은 생산성의 결실은 노동의 희소성을 없애고, 태양에서 얻어낸 무한 동력은 에너지의 희소성을 줄여주고, 우주개발의 값진 결과물은 자원의 희소성을 해결해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고도의 유전자 치료 기술은 노화의 희소성을 감소시키며, 효율적이며 영양가 높은 배양육 기술은 식량의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1, 2차 대변혁과 이를 통해 희소성으로부터 만들어진 자본주의는 점점 더 설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며 FALC에 도달 가능한 조건이 갖추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를 일부 자본가들이 독점한다면 FALC는 불가능하며, 오늘날 자본주의는 맞닥뜨린 위기는 더욱 극대화시킬 것이다.
  
3부는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는가? 라는 결론을 통해 기술적으로 가능한 희소성이 사라진 미래를 실현할 수 있는 마지막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강조하는 것은 정치다.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한 정치적 실천이다. “가장 발전된 기계는 노동자를 원시인보다, 노동자 자신이 가장 조악하고 단순한 도구를 가지고 일할 때보다 오래 일하도록 강요한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빌려, 정치적 뒷받침 없는 기술의 한계를 설명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대중의 요구에 봉사하도록 기술을 이끌기 위한 포퓰리즘 정치다. 이때 포퓰리즘이란 “경제를 움직이는 주류의 사고방식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정치”이다.

포퓰리즘 정치가 단시일에 FALC를 실현할 수는 없다. 산업혁명 이후 2차 대변혁이 본격화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 것처럼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는 우선 신자유주의와 결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FALC를 목표하되 노동을 파괴하고 사영화/외주화를 확대하는 신자유주의를 돌려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당장 어려운 국가 차원의 개혁 추진에 앞서 지역 단위의 작은 변화를 꾀하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FALC로 가는 발판으로 경제의 지방분권화, 재정의 사회화와 지역 은행 간 네트워크, 보편적 기본 서비스 등 3가지 방안을 제시하는데, 특히 보편적 기본 서비스는 보편적 기본소득 제도에 따르는 과다한 재정 부담을 방지할 대안이다. 이미 일부 시행되고 있는 의료 외에 교육, 법률 서비스, 주거, 음식, 교통, 정보 공급에서 보편적 기본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2016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세계번영연구소의 보고서를 인용한다. 

이 책의 부제는 ‘21세기 공산주의 선언’이다. 문체는 강령처럼 담대한 확신에 차 있다. 자본주의의 위기상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적 논거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게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자 흥밋거리이다. 종말에 다다른 자본주의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체제에 대한 논의는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 정치적 상상력의 부재를 극복해낸 것은 확실히 의미가 크다. 다만 FALC라는 기발한 대안의 바탕을 이루는 기술이 ‘완전히 자동화되는’ 수준에 이르기에는, 변수가 적지 않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무리하게 예단한다는 것은 가장 큰 한계다. 그러나 기술 수준이 완전 자동화될 수 없으리라는 반박도 근거는 없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일하고, 생태적이면서 화려하고 건강한 삶이 보장된다면, 그곳은 유토피아일 것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바스타니의 맺음말은 과감한 실천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이제 용기 내서 주장하고, 설득하고, 행동할 때다. 쟁취해야 할 세계가 눈앞에 있다.” (3부의 내용은 https://www.hani.co.kr/를 참조함)

과연 FALC는 공상인가, 대안인가? 앞서 언급처럼 멍크 디베이트에서 미래에 대하여 낙관적이냐 아니면 불완전한 인간이므로 이를 통제할 수 있는 철학적 등 인문적 통찰이 필요하다라는 양쪽의 의견이 있었다. 저자는 낙관적인 미래(FALC)를 제시하지만 이에 필요한 정치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지금 이 순간 인간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고통 받고 있으며, 이를 과학적으로 해결하는 백신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코로나에 지면 FALC는 공상일 수도 있는 반면 과학과 기술이 만든 백신이 코로나를 이기면 FALC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이다. 그 한 발자국은 영국 억만장자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이 7월11일 민간 상업 우주여행 비즈니스를 시작하고,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뉴셰퍼드'를 타고 7월20일 인류 역사상 '첫 민간 상업 우주여행'으로 시작되는 듯하다.

한편 진화생태학자인 최재천 교수의 말(코로나 종식은 없다. 그러나 방법은 있다)을 인용하여 본다면, 바이러스는 끝없는 진화하며 인간과는 끊임없이 밀당하고 있다. 코로나로부터 기상변이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지구를 99%를 점령한 인간은 코로나 발병은 필연적이며 과학이 만든 백신과 자연을 보호하는 생태 백신(자연 친화적인 인간의 삶)으로 이 난국을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기술은 발전하고 진보하고 있다. 이런 진보는 방향성이 없다. 단지 현재는 신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가 희소성의 무기로 기술의 진보 방향을 결정하고 있다. 희소성은 격차를 만들어 내고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런 측면에서 FALC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지만 불완전한 호두 뇌를 갖고 있는 인간이 어떤 정치시스템을 갖느냐가 중요한 문제라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반대로 과학의 진보는 희소성의 가치를 인정하는 정치시스템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FALC에 도달하기 위해 점점 희소성의 가치를 줄여 간다면 코로나 같은 인류의 위기를 벗어 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작금의 코로나 상황이 말해 주 듯 과학은 양면(병주고 약주는)의 칼이라는 사실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겠다. 

김종일 (독성학 박사, 비앤에이치웍스(화장품 개발)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