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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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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8월 07일 (토) 19:40:35 [조회수 : 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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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5장 13-15절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가. 성도는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다.

13절a,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나...”

* 본문은 하나님이 주신 참 자유를 통하여 이웃을 섬기는 사람이 되라는 권면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그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정치적 자유를 비롯하여 신앙의 자유,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등이 필요하다.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창조질서에 어긋난다.

* 바울은 신앙적 차원의 거룩한 자유가 없는 것에 대하여 탄식한 바 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롬7:19)라고 하였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라고 한 말씀을 참조하라.

* 사람이 누려야 할 가장 중요한 자유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와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다.

칼빈도 “참된 자유는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안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성도는 세속적인 차원의 자유를 위해서도 투쟁해야 하지만 신앙적인 차원에서 죄를 이기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하여 투쟁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성도의 경건운동이다.

 

나.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으면 안 된다.

13절b,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 그런데 성도의 자유를 죄책감을 줄이는 데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본문에서 ‘육체’(싸르크스)는 죄성에 젖어있는 약한 육체를 가리킨다. 대체로 사람은 육신의 소욕을 따라 사는 것을 즐긴다. 그리고 거룩한 자유를 통하여 단지 죄책감이나 가볍게 하려는 시도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 참된 자유는 죄에서의 해방이지 죄책에서의 해방이 아니다. 이는 율법의 완성이지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다. 예수님이 속죄제물이 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믿음으로 죽게 하기 위함이지 단순히 죄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은 것이며 평생의 죄를 모두 용서받았다고 주장하는 이단교회는 옳지 않다. 이런 자유는 육체에 죄의 기회를 줄뿐이다.

* 요한 웨슬리는 성도의 죄에 대하여 숙고하였다. 성도의 죄도 회개의 대상이다. 구원받은 성도도 중도에 탈락할 수 있으므로 방심하면 안 된다. 주님의 은혜가 죄책으로부터의 자유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이는 아주 위험하다.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으면 안 된다.

 

다.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3절c,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 참된 자유는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율법의 완성을 지향한다.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자유와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가 종의 믿음으로부터 자유하게 한다. 이런 자유를 가진 사람이 율법을 온전히 지킨다. 그리고 율법의 완성은 사랑이다. 이에 바울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권면하였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14절).

* 여기서 ‘종노릇하다’(둘류오)는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을 뜻한다. 자신보다 나은 이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자신보다 못한 이들도 낫게 여겨야 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라고 한 말씀을 참조하라.

* 예수님은 자신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본을 보이셨다. 예수님은 주와 선생이시면서도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3-14).

 

라. 사람이 서로 섬기는 것이 상생의 길이다.

15절,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 분쟁이 있는 곳은 황폐하여지고 서로 섬기는 곳에는 번영이 있다. 예수님은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마12:25)라고 하셨다. 그러나 서로 도우면 어떤 어려움이나 장벽도 극복할 수 있다. 전도서 기자는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12)라고 하였다.

* 남을 높이면 자신도 높임을 받는다. 이웃사랑은 결국 자신을 사랑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 남을 깎아내리면 그대로 돌아온다. 또한 남을 높이면 그것도 그대로 돌아온다. 남을 죽이려 하면 자신도 죽게 되고, 남을 살리려하면 자신에게도 사는 길이 열린다.

*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이 재현되고 있다. 남을 죽여야 내가 산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이러한 고질병은 나라가 망하는 길이다. 이런 것은 그리스도의 섬김의 정신만이 고칠 수 있다. 자기사랑이 이웃사랑이 아니라 이웃사랑이 자기사랑이다. 서로 섬기는 것이 상생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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