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심방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오던 길이었습니다. 쭈욱 펼쳐진 중부 고속도로 위로 미세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이 펼쳐졌고 그 위로 뭉게구름이 피어올라 있습니다. 함께 한 누군가가 경탄하며 차창 너머의 구름을 가리켰고 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노래가 시작되었습니다. 운전을 하던 저도 살포시 미소 지으며 마음속으로 함께 따라 부릅니다. 어느새 차창 밖 세상은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명월리 승리교회의 예배당으로 바뀌었고 수많은 어린이들과 군인 선생님들 틈 속에서 한 새까만 소년이 목이 터져라 신나게 이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흰 구름 뭉게뭉게 피는 하늘에
아침 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
손에 손 마주잡은 우리어린이
발걸음 가벼웁게 찾아 가는 길
즐거운 여름학교 하나님의 집
아 아 진리의 성경말씀 배우러가자
노래를 마치고는 “까르르르~” 어린 아이들처럼 모두가 한바탕 웃더니 그 시절 여름성경학교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아마 그사이에 모두가 저처럼 그 옛날 고향교회를 다녀왔겠지요. 더위를 느낄 새도 없이 교회를 다니고 안 다니고를 떠나 온 동네 어린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노래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아직 살아 있었고 그 노래 한곡이 우리 모두를 시간을 거슬러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과 조우하게 해 주었습니다.
아쉽게도 이제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 노래를 잘 부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맘때만 되면 온 교회가 시끌벅적해졌던 여름성경학교도 코로나로 인해서 그 형식이 변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마다 교역자들과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해 준비하시겠지만 어린이들의 웃음소리와 찬송 소리가 사라진 교회의 여름은 너무나도 썰렁하고 적막하기만 합니다.
이토록 밝고 맑은 노래를 되뇌며 부르는데 왜 눈물이 고이는지 모르겠습니다. 자꾸만 어른거리는 새까만 강원도 시골 소년 때문인지, 지금 이 순간 제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교회의 적막 때문인지, 앞으로 그런 시절이 다시 오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부르면 부를수록 참 좋은 노래입니다. 노래 중에서는 이처럼 뭔가 특별한 힘이 있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런 노래들을 명곡이라고 부릅니다. 명곡은 작곡가의 능력 만으로만 탄생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진정 사랑하는 작곡가에게 신적인 영감이 함께 할 때 명곡이 탄생합니다. 이 노래는 한국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 선물을 우리에게 전해 주셨던 박재훈 목사님께서 지난 2일 99세의 나이로 소천 하셨습니다. 박 목사님은 평생토록 ‘산골짝의 다람쥐’ ‘시냇물은 졸졸졸’ ‘송이송이 눈꽃송이’ ‘펄펄 눈이 옵니다’ ‘어머님의 은혜’와 같은 동요와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지금까지 지내온 것’등의 주옥같은 찬송가와 성가곡을 합쳐 1500여 곡을 작곡하셨습니다. 한국 교회음악을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려는 마음으로 일맥(一麥)이라는 호를 쓰셨던 목사님께서는 실재로 그와 같은 삶을 사셨고 한국 교회음악의 아버지라 불리어 마땅한 분이셨습니다.
아쉽게도 저는 생전의 목사님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목사님께서 작곡하신 동요들을 연이어 불러 보면 얼마나 다정다감하시며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셨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목사님의 찬송가에는 하나님과 우리 민족과 한국 교회를 향한 뜨거운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자기 이름을 찬송가에 싣기 위함이 아니요 오로지 그 순전한 사랑이 있었기에 목사님은 어른들을 위한 찬송가에도 많은 명곡을 남기셨습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산마다 불이 탄다’와 같은 찬송가는 한국교회 역사에 길이 남을 명곡 중의 명곡입니다.
어린이였던 우리와 어느새 어른이 된 우리 모두는 박목사님이 지으신 명곡들을 통해 큰 빚을 졌습니다. 하나님과 민족과 교회와 음악을 사랑하셔서 한 알의 밀알이 되고자 하셨던 목사님은 그 누구보다 생명어린 삶을 살아내셨고 여전히 살아 있는 명곡들을 남겨 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목사님과 같이 각자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살려서 하나님과 민족과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생명을 맺어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