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즈 데케루) 프랑수아 모리악 지음, 조은경 옮김, 펭귄콜래식코리아(웅진), 2011

프랑수아 모리악 (François Mauriac)의 대표작이며 노벨 문학상 수상작인1927년 출판된 <테레즈 데케루>(Thérèse Desqueyroux)는 인간 내면의 존재론적 갈등을 보여주는 소설 작품이다. 주인공인 테레즈는 남편 베르나드에게 비소가 함유된 약을 과량 투여하여 독살하려 했다. 강력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기각되고, 그녀의 아버지는 스캔들을 방지하려 하고 남편도 거짓 증언을 하게 된다. 집으로 가는 길에 테레즈는 남편을 독살하게 된 원인을 스스로 이해하기 위해 자신의 어린 시절, 베르나드와의 결혼, 딸 마리의 탄생과 그녀의 친구인 엔과의 우정을 회상하는 것이 소설의 줄거리다.

어떤 비평가들은 모리악의 테레즈 데케루를 여성 인권을 신장하는 소설로 읽는가 하면, 신의 은혜를 찾는 소설로 읽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흑과 백 또는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인간 실존의 고민을 다룬 심리소설이다. 이는 테레즈 데케루라는 소설의 제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서평가 이현우는 이 소설에서 가문의 정신보다 중요한 것은 모리악이 소설의 제목을 처음에 고려했던 ‘가문의 정신’ 대신 테레즈 데케루로 바꾸면서, 테레즈의 진정한 자아와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점을 강조한다. 소설의 결말에서 테레즈는 남편과 별거하며 가문의 이름이 아닌 자신만의 이름을 갖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

모리악이 소설 테레즈 데케루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남편을 독살하려고 했던 동기에서 잘 드러난다. 독살의 동기가 남편의 불륜이나 실제로 불륜을 저지르는 사건이 부재한 상황에서 테레즈의 애매한 살해 동기는 그녀의 혼란스러운 실존적 고뇌를 보여준다. 줄 담배를 피우고 있는 테레즈의 모습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그녀의 세계를 가장 잘 표현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남편 베르나르는 선과 악의 구분이 명료한 사람으로 모든 감정을 분류하며 복잡하게 연결된 감정선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결혼을 통한 행복이란 절대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테레즈는 뼛속 깊이 실감한다. 끝없는 권태와 관습 밖에 없다는 인생의 허무함은 테레즈 자신의 결혼식에서 아주 잘 묘사되고 있다. “여인들의 수다가 오르간 소리를 뒤엎고” (le caquetage des dames couvrait l'harmonium à bout de souffl) “그들의 몸 냄새가 제단의 향내를 압도할 때” (leurs odeurs triomphaient de l'encens)라는 표현은 권태의 의미를 아주 잘 전달한다. 결혼을 통해 이루어지는 가정은 개인의 삶을 육성하는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억압적이고 악의적인 사회적 장치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테레즈는 심지어 가족의 의미를 새장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녀는 마치 몽유병 환자처럼 가족이라는 새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 Elle était entrée somnambule dans la cage). 

모리악은 19세기 프랑스 브르둑의 엄격한 카톨릭 집안에서 성장하며 전통적인 카톨릭 신앙에 대한 역겨움과 실증, 그리고 그것에 대한 권태를 보여준다. 클라라 이모는 소설에서 테레스를 유일하게 조건없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이지만 그리스도의(교회의)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는 인물이다. 그녀야말로 매주 성당 미사를 참석하는 테케르 집안의 그 어떤 사람보다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인 것이다. 테레즈는 절망의 순간에 자살을 결심하게 되지만, 이모 클라라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뒤로 물러선다.

혼동과 권태에서 신을 발견하고자 몸부림친 테레즈는 구약성서의 지혜서, 욥기, 전도서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잠언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토라의 가르침에 기초한 삶의 지혜, māšāl들을 담고 있어 선과 악, 옳고 그름의 비교를 통해 인생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반면, 욥기는 māšāl에 기초한 세 친구의 전통적인 지혜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옳고 그름의 기준이 파괴된 혼동의 세상을 말하고 있다. 전도서는 부귀와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의 허무함을 권태로 표현하고 있는 것과 견주어 볼 수 있다. 모리악의 테레즈 데케루는 교권과 제도에 갇혀 삶의 진정한 의미를 상실한 모든 이들이 찾아야 할 이름인 것이다.

김진양 목사(연합감리교회 세계선교사, 세계교회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