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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직 목회, 희망을 말한다.
양재성  |  hfmc1004@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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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7월 31일 (토) 10:43:51
최종편집 : 2021년 08월 06일 (금) 07:50:46 [조회수 :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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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은 1년 반이 넘도록 기세를 떨치며 세간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대면예배를 비대면 예배로 전환하였고 대부분의 소모임들이 중단되면서 교회는 활력을 잃고 있다. 지금으로썬 코로나 19가 지나가도 예전으로 다시 회복되는 건 불가능해 보이며 교회의 신뢰와 지위를 다시 얻는 것도 힘든 상황이다. 심방과 봉사, 설교와 성경공부, 기도회와 철야예배, 장례 및 결혼식 등 전반적인 영역에서 기존 교회의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다. 이제 교회의 기존 시스템으로 미래를 견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목회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목회적 케어나 상담도 점점 힘을 잃고 있으며 전문가들에게 이전되고 있다. 디아코니아와 코이노니아 차원의 새로운 선교 전략이 요청되지만 그 또한 녹록치 않다. 코로나 19 이후 중대형교회에 비하여 소형교회와 비전교회는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요청되며 목회론도 재정립해야한다. 

 ‘이중직 목회’란 목회를 직업으로 분류한데서 파생한 말로 적합한 표현이 아니다. 흔히 목회 외에 다른 직업을 더 가지면 이중직이 된다. 하지만 굳이 생각해보면 ‘이중직 목회’는 성서적이며 기독교전통적인 목회이다. 예수는 목수이며 복음 전파자였고 바울은 천막 짓는 건설업자였으며 전도자였다. 전통적인 직업개념이 몰락하고 다중직, 다중역활 사회로 변화하는 것에 발맞추어 ‘이중직 목회’를 시대와 소통하는 선교, 목회적 대안으로 생각해 볼 수는 없을까? 그간 우리는 이중직 목회를 협소하게 논의한 것이 사실이다. 이중직 목회를 반대해 온 기존의 교회 구조는 목회자가 다른 직업을 가질 경우 기존 목회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비전교회 목회자 생계 문제와 연동하여 이해되어 왔다. 목회를 걱정하는 관점은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이중직 목회는 다양성의 문제이고 선교의 관점에서 생각해야할 과제이다. 

 ‘이중직 목회’란 말은 그 자체로 문제가 있다. 목회를 광의의 의미로 담으면 목회자가 하는 모든 일을 목회로 보아야한다. 지금 이중직이란 잣대로 보면 실재 감리회 초기 선교사는 모두 이중직이었다. 선교사들은 의사이며 교사이며 혹은 복지사와 사회선교사, 기자로 교회를 섬겼으며 사회를 선도했다. 스크랜턴 선교사는 의사였고 목회자였으며, 아펜젤러 선교사도 목회자이며 교육자였다. 지금 목회하면서 다른 일을 하는 이들은 비전교회 목회자만이 아니다. 이중직 불가를 장정에 명시한 것부터가 잘못이다. 이중직은 단순 잣대로 재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코로나19 정국에서 이중직 목회자들은 정부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기도 하다. 교단보다도 오히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안전장치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중직 목회에 속한 목회자들의 직업군도 참 다양하다. 카페 운영자, 도서관 사서, 목수, 교회 리모델링 사업 지원, 대리 운전, 학원 강사, 편의점 알바, 농사꾼도 있다. 택배기사, 건설 노동자나 청소부로 일하는 목회자들도 있다. 시간 강사, 시민사회활동가, 사회선교사 등 많은 목회자들은 그런 식으로 선교 사역에 참여하고 생계를 유지하는 등 자립적 기반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정국을 지나면서 교회의 위상은 크게 추락했다. 신뢰도는 낮아졌고 교회에 대한 호감도 또한 크게 실추됐다. 결국 교회는 미래 대안에서 밀려나고 있다. 

 한국 초대교회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국 초대교회는 주로 의료선교사와 학교 교육 선교사들이 대거 들어왔다. 이들은 병원과 학교를 지었고 오히려 교회가 부차적이었다. 그렇다고 교회 목회를 등한시 하지 않았다. 교회는 영성적 토대가 되었고 깨우침을 얻는 교육의 장이었으며 기도의 산실이었고 사귐의 장이었다.
 
 다시 말하거니와 목회자는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목회이어야 한다. 목회자가 교회를 보살피고 교육하는 일은 당연하지만 목회를 교회 안에만 국한시켜서는 안 된다. 목회자가 교회 밖에서 행하는 모든 일도 목회이다. 그러니 목회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목회라는 새로운 목회관이 필요하다. 교회도 이제 교회 건물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선교적 한계는 분명하다. 우리가 증인으로 살아야 할 곳은 교회만이 아니고 오히려 세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중직 목회는 일탈이 아니고 새로운 대안이며 코로나 19 팬데믹 이후 희망이다. 

  이번 10월 입법의회에서 비전교회 목회자에게만 허락된 이중직 문제를 다뤄 그 제한을 풀어야 한다. 이웃 교단들도 9월 총회에서 이중직 제한 규정을 상정하여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정개정위원회는 이를 유념해야한다. 

 

양재성 목사 / 가재울녹색교회 (새물결 전국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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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쟁이 (222.114.70.236)
2021-08-04 10:32:23
부익부 빈익빈
이중직?
무엇을 어디까지를 이중직으로 보느냐 하는것입니다.
미션스쿨의 재단이사장?
신학대학 이사장?
이런류는 이중직에 해당되지 않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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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1-07-31 19:49:38
무한폐렴이 가져온 효과 - 가라지는 가고 알곡만 남았다!
1. 무한폐렴이 교회에 가져온 부정적 효과

질병에 따른 죽음이라는 막연한 공포심에 가위눌린 민중은 귀가 얇다. 귀가 얇은 민중에 기대어 한몫 잡고자 하는 돌팔이 약장수가 큰소리치는 세상이다. 돌팔이 약장수의 사탕발림에 넘어간 군중은 인간로봇과 다를 바 없다.

무한폐렴이 확산되자 정부의 실정을 감추기 위해 노심초사하던 차에 하필이면 이만희와 전광훈이 걸려들었다. 돌팔이 선동가가 네로 흉내를 내어 기독교에 무한폐렴 확산의 책임을 떠넘기자 개나 소나 민중이 우르르 몰려들어 기독교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별로 없는 그렇고 그런 교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唾罵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좀 세게 부니 알곡은 남고 가라지는 날아가 버린 격이다. 여기에 쫄아서 겁을 먹은 일부 종교인이 非대면예배어천가를 부르며 대면예배를 갑자기 唾罵하기 시작했다.

정리하면, 위기가 오자 믿음이 별로 없는 교인은 가라지 마냥 날아 가버리고, 여기에 겁을 먹은 일부 종교인은 非대면예배어천가를 부르며 자기들은 민중들과 함께 하려고 하는 데 완전 꼴통들이 대면예배를 고수하여 기독교를 망치고 있다고 민중에게 아부하기 시작했다. 가라지에게 이런 아부를 한다고 가라지가 다시 교회로 돌아올까? 제 살 뜯어먹기에 다름 아니다. 非대면예배를 보면서 서서히 非대면예배의 장점을 알도록 하는 대신에 무엇이 그렇게 급하다고 非대면예배아천가를 불렀는지? 교회가 사회에 협조하지 않는 꼴통이 극실 거린다는 광고한 것밖에 안 된다. 자기들은 非대면예배를 보기 때문에 꼴통이 아니라고 우긴다고 해서 사회에서 “아이쿠, 꼴통을 상대로 애쓴다!”고 칭찬할까? 택도 없는 소리다. 이만희, 전광훈, 대면예배추종자, 非대면예배추종자 전부 다 한통속으로 볼뿐 구별하지 않는다.

돌팔이 악장수 선동가의 선동 바람에 믿음이 약한 가라지는 휙 하고 날아가 버리고, 대면예배알곡과 非대면예배알곡이 서로 티격태격하니 사회에서는 쯧쯧쯧... 하며 혀를 차고 있다.

2. 무한폐렴이 교회에 가져온 긍정적 효과

믿음이 별로 없이 머리 숫자나 채우고 천국 간보기 하는 가라지는 교회를 떠났다. 핵심 정예만 남았다. 옛날의 노아의 방주와 비교할 수 있겠다. 필요한 사람만 현재의 방주에 남았다고 보면 된다. 군대로 치면 하사관과 병장만 있으면 分隊는 금방 복구된다. 1차세계대전에 승전한 연합군에 의해 독일군의 숫자가 획기적으로 감축되자 독일군은 하사관, 병장 같은 핵심인력은 그대로 두게 해달라고 연합군에 읍소했고, 이들 베테랑들이 가르친 신입병사들이 막강한 독일군으로 다시 태어나 프랑스 파리를 점령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가라지는 이쪽으로 바람이 불면 또 다시 이쪽으로 오게 되어 있다. 가라지가 없다고 해서 기 죽을 필요는 없다. 교회의 핵심인력인 목사와 장로가 건재하면 금방 복구된다. 무한폐렴으로 교회가 잃어버린 건 없다.

이중직 목사를 해서라도 살아남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非대면예배다! 대면예배다! 하는 건 동네방네 떠들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조용하게 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본다는 생생한 교훈을 얻었다.

핵심세력이 건재할 뿐만 아니라 학습효과까지 얻은 이상 앞으로 하기 나름이다. 가라지가 날아가도 알곡만 건재하면 된다! 지금보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전도한 선배들의 족적을 보면 지금의 위기는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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