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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나가기만 하는목회의 길(개봉교회를 떠나면서)분쟁 중인 개봉교회에서 7개월을 설교를 했다. 그 동안 아무도 내게 불법을 행한다고 고소를 하지 않았다.
허종  |  paulhu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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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1월 24일 (금) 00:00:00 [조회수 : 7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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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종목사가 다시 프랑스로 떠난다. 오랫동안 약속을 기다리던 몽펠리에 교인들이 아예 항공권을 보내 온 것이다.  그가 여기 있으면서 그토록 바라고 기도한 것은 개봉교회의 하나됨이었다. 어제 개봉교회 담임목사가 성추행 건으로 200만원 약식재판 벌금형을 받았다(내용 확인 중)는 소식을 들었다.  암튼 슬픈 일이다. 허목사에 이어 봉사 기관을 섬기는 중견 이某목사가 계속해서 예배 인도를 맡기로 했단다.  프랑스는 멀어도 허종목사의 글쓰기[허종목사의 영성 바로 보기]는 계속되리라 믿는다. 출국일엔 [감사모 포럼]이 겹쳐 공항에 나가보지도 못하게 되었다.  생활비 보장도 없는 먼나라로 오직 십자가 하나 붙들고 떠나는 허종목사에게 도움과 나눔의 손길들이 함께 하기를 간곡히  바라는 바이다.(당당뉴스 운영자 글) 

빗나가기만 하는 나의 목회의 길 (개봉교회를 떠나면서 )

   
▲ 허종목사
27년 전에 장애인교회를 개척했다.
지방 감리사님이 오셔서 교회개척예배를 드렸는데
지방 실행위원회에서 교회로 인정해 주지 않았다.
감리사, 지방선교부 총무, 지방회서기, 지방실행위원들을 찾아다니며 사정을 알아보았으나 ‘지방실행위원회에서 교회개척인가를 부결시켰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 해 추운 겨울날이었다.
결국 장애인 교회는 인가를 받지 못했고 신학교를 졸업하고도 목회자 파송을 받지 못했다.
그 후부터 나의 목회의 길은 빗나가기만 했다.
장애인 오륙십 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면서 교회를 시작하였는데
교단은 장애인들이 모인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고 했다.

장애인 교회는 교회로 인가를 받지 못했고 나는 진급을 받기 위해
목회를 나갔다. 그리고 1년 늦게 서리 파송을 받았다. 농촌 목회였다.
지방회에 참석을 하면서 지방 목사들을 만나면서 서먹함을 느꼈다.
나이 많은 서리 전도사가 설 자리가 어색했고, 출신 학교에 대한 어색함이 있었다.
분명 그 것은 담이었다. 나의 주님이신 예수는 모든 담을 허무셨는데 목회자들이 담을 쌓고 있었다. 나는 담에 갇혀서 담 허물기를 시작해야 했다.
감리사 선거가 있었는데 분명 정치였다. 그 것도 타락한 부정 선거였다.
감독 선거가 있었다. 세상 정치보다 더 심한 타락상을 보았다.
나는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 외쳐야 했다.
외침은 메아리도 없이 허공에 퍼지기만 했다.

세 번이나 목회자 진급이 늦어졌고 나의 목회 길은 빗나가기만 했다.
27년의 세월 동안 나는 14번이나 옮겨 다녔다.
오라는 데가 있으면 어디든지 갔다.
꼭 2년 꼴로 교회를 옮겨 다녔다.
2번 장애인 교회(인천 미문 장애인 교회, 대전 미문 장애인교회)를 개척했고, 재활원 원목(동암 성린재활원), 보육원(인천 보육원) 원목을 했다.
농촌 교회를 세 번 목회했고(논산 이화감리교회, 동강감리교회, 벌교원동감리교회) 지하 개척교회(일산엘림감리교회)를 목회했다.
자립하는 도시교회(진남제일감리교회, 빈들감리교회) 목회도 두 번을 했다. 부 목사(대전 보문감리교회) 생활도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한인교회(뚤루즈사랑교회)에서 목회했다(필자요청으로 수정).

   
▲ 개봉교회
그리고 분쟁 중인 개봉교회에서 7개월을 설교를 했다.
다시 프랑스 몽펠리에한인교회에서 초빙을 받아 11월 28일에 출국을 한다.
초빙을 5월에 받았으나 6개월 동안이나 개봉교회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장애인교회를 인가 받지 못하면서 나는 교회개혁을 꿈꾸었다.
‘이것은 교회가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만난 예수는 낮고 천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고 빈민들과 함께 하셨던 예수였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믿고 따랐다.
처음 목회자로 부름 받았다고 확신하던 날 나는 ‘무소유의 삶’을 살기로 하나님께 서원했다.
나의 생각과 의지를 버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기로 다짐을 하면서 살아 왔다.
총각으로 시작한 목회생활이었는데 지금은 딸이 둘(24살, 20살)이나 생겼다.

오늘이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교회개혁을 꿈꾸며 목회를 했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목회를 했다.
오늘이 내 마지막 설교라는 각오로 설교를 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죄인일 뿐이었다.
빗나가기만 하는 나의 목회 생활이었다.

개봉교회가 분쟁 중인데 한 달만 설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교단의 파송을 받지 않고 담임목사를 반대하는 교인들에게 설교를 했다.
개봉교회에 올 때 나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하나는 상처받은 교인들이었다. 교회에 분쟁이 생기면 상처받는 교인들이 생기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생긴다.
그래서 분쟁으로 상처받은 교인들을 위해 설교를 하자는 생각이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파송을 받지도 않고 설교를 하면 지방 감리사나 담임목사나 또는 연회 감독이나 누구라도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나를 교단법으로 고소하리라는 생각을 했다.
누군가 나를 고소하면 나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는 교단’을 고소하리라 생각을 했다.
성직매매, 불법선거, 교회세습, 성직자의 타락, 교단의 횡포, 거짓으로 보고되고 있는 교회 보고서, 은급부담금등을 고발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7 개월 동안 개봉교회에서 설교하는 동안 나는 고소당하지 않았다.
아무도 ‘왜 당신 거기서 설교를 하느냐?’는 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내가 14번이나 옮겨 다녀도 누구 하나 나에게 조언을 해 주는 사람들이 없었다.
( 물론 친하게 지내는 목회자들 몇이 조언도 하고 기도도 해주었다.)
그러나 감리사나 감독등, 행정 책임자들은 단 한 마디의 조언도 없었다.
교단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었고 폼만 잡고 힘만 쓰는 걸림돌일 뿐이었다.

왜? 개봉교회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반대하는지 지방 목회자나
감리사나 연회 감독은 아는가?
왜? 개봉교회가 둘로 나뉘어 예배를 드리는지 아는가?
지방 목회자들은 ‘나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인가?
감리사나 감독은 허수아비인가?
목사가 교인들을 성추행했다면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목사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을 계속 행한다면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인들이 지방 감리사를 찾아가고 연회 감독을 찾아갔다.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도리어 낙심만 할 뿐이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리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목숨을 걸고 내가 해야 할 일이 교회개혁이다.
그런데 또 떠난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는데 할수록 앞일을 더 모르겠다.
세미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 한다.

먹고 사는 일이 걱정이다.
하나님께서 채워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다시 떠난다.
개봉교회 교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직 개봉교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는데 떠나는 발걸음이 무겁다.
개봉교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떠난다.
(퐁펠리에 한인교회에서 초빙을 취소했으면 해결될 때 까지 개봉교회에서 끝까지 가려 했지만...)
B교회, O교회, M교회등 분쟁 중인 교회들을 뒤로 하는 것도 마음이 아프다.
병들대로 병든 나의 영혼의 고향인 감리교회를 떠나는 것도...
하나님께서 다시 한국에 오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그 때에는 개혁의 불을 지르러 올 것이다.
( 개봉교회를 떠나면서 제도권 안에 있는 나의 동역자들에게 나의 무례에 용서를 구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교회가 자정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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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남 (211.205.19.71)
2006-11-24 12:34:26
도움의 손길이...
생계의 보장없이 프랑스로 떠나는 목사님 가정에
도움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소액의 후원들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리플달기
11 10
김봉구 (211.202.232.40)
2006-11-27 19:02:00
허목사님 부디 영육간에 강건하시길 기도합니다.
늘 진실을 놓치 않고 주님의 길을 걸어가시는 목사님의 모습 속에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부디 한국을 떠나 타국에 가셔도
주님의 인도하시고 도우심이 충만하시길 기도합니다.
리플달기
7 12
운영자 (124.5.202.89)
2006-11-27 08:47:35
몇 분의 요청으로 허종목사 돕기 송금 계좌를 알려드립니다.
농협 408-12-059335(예금주 이정희)
리플달기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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