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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드림포럼2. "예수와 사마리아인들과의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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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7월 26일 (월) 21:46:26
최종편집 : 2021년 08월 10일 (화) 10:32:27 [조회수 :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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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사마리아인들과의 평화(눅 9:51-56)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기본적 고찰-

 

류호성 교수(서울장신대)


I. 들어가는 말


예수 그리스도는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의 육체로 헐어(엡 2:14) 만물을 화목하게 하신(골 1:20) 평화의 왕이시다(눅 19:38). 그렇기 때문에 예수를 주님이라고 고백하는 모든 자들에게, 특히 분단국가로 갈등의 위기 속에 살아가고 있는 한반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적극적으로 평화를 실천해야 할 제자도가 요청된다. 평화에 대한 정의는 삶의 일정한 질을 지칭한 ‘폭력이 없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인간은 선악과 이후로 폭력과 함께 일상의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폭력이 없는 상태’를 이 땅에서 만들겠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꿈이고, 우리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현실적으로 폭력을 줄여 나갈 수밖에 없다. 

폭력을 줄이기 위한 노력으로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불복종으로 저항하는 비폭력(non-violence)이 있다. 이 방법은 폭력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는데 효과가 있으나, 무엇보다 폭력에 대해 때로 무기력하게 저항이기에 폭력을 더욱 유발시킨다고 비판받고 있다. 둘째는 폭력에 대해 작은 폭력을 사용해서 큰 폭력을 막자는 감폭력(minus-violence)이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현실적으로 큰 폭력을 줄이는 효과는 있지만, 결국은 폭력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폭력을 줄이기에, 또 다른 폭력이 정당화 된다는 비판을 받는다. 셋째는 구조화된 폭력 속에서도 타자에게 배타적이지 않는 ‘시민다움’(civilité)을 추구하는 반폭력(anti-violence)이 있다. 이 방법은 서로를 존중하면서 폭력을 줄인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구조화된 폭력 속에서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이처럼 폭력을 줄이고자 하는 각각의 노력에는 장점과 더불어 한계성을 갖고 있다. 이것은 그만큼 폭력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폭력은 갈등 속에서 쉽게 일어나는데, 이러한 갈등이 쉽게 유발되는 네 영역이 있다. 첫째는 임금과 관련된 경제적 갈등이다. 춘투(春鬪)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로 노사가 봄이 되면 임금 문제를 두고 서로 협상을 하다가, 결렬되면 때로는 양측 모두 극단적인 폭력을 사용하여 문제 해결을 시도하고자 한다. 둘째는 혈통과 관련된 인종적 갈등이다. 혈통의 우의성을 강조해서 다른 민족을 억압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찌의 6백만의 유대인 학살과 1992년부터 1995년 보스니아 내전 당시 세르비아 민병대가 약 8만 3천명의 보스니아인들을 살해한 사건 그리고 1994년 르완다에서 후투족이 약 100여 일간 50만 명에 달하는 투치족을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셋째는 종교적 갈등이다. 대표적으로는 팔레스타인에서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갈등과 2001년 이슬람의 알카에다에 의해 자행된 미국의 9·11이다. 그리고 수많은 나라에서 종교가 다름으로 인해 자국 내에서 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우리나라도 기독교와 불교 사이에 잦은 충돌이 발생하고 있다. 넷째는 공산-사회주의와 자본-민주주의 사이의 이념적 갈등이다. 우리나라의 6.25 전쟁도 여기에 포함되며, 1975년 4월 30일에 종식된 베트남 전쟁 그리고 1975년에서 1979년 사이에 캄보디아에서 크메르 루즈에 의해 자행된 킬링필드가 있다. 이런 네 가지 갈등 요인들은 한 요인만 독립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서로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6.25 전쟁은 이념적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전쟁이 발발한지 벌써 71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남북 사이의 관계는 평화가 아닌 여전히 전쟁의 위협 속에 처해 있다. 그러나 2018년 2월 9일부터 시작된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서 남북이 단일팀을 만들고 또한 북한에서 280여명의 응원단을 보내, 남북이 하나되어 응원했을 때에 평화를 실감했다. 그리고 그해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정상 회담을 가졌을 때에, 남북 평화가 눈앞에서 이루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를 빌미로 2020년 6월 16일 개성공단에 위치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고, 계속되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함께 멈추지 않는 핵무기 개발로 인해 남북 갈등은 다시 고조되었다. 여기에 대외적으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대립이 현재 한반도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해야 남북이 평화 관계를 만들고 더 나아가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이를 위해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가 사마리아 지역을 지나가려다가 거절당한 사건을(눅 9:51-56) 통해, 필자는 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다. 물론 남북의 갈등은 오늘날의 이념적 갈등이고, 예수와 사마리아인들과의 갈등은 인종적-종교적 갈등이기에, 서로 동일한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갈등’이라는 그 자체는 동일하며 또한 그런 갈등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오늘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II. 유대인과 사마리아인과의 갈등 원인


예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로 결심하고 유대인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사마리아 지역의 길을 선택한다. 그래서 그는 일부 제자를 선택해서 여행을 위한 숙소나 대중설교를 ‘준비하고자’(e`toima,sai, 9:52) 먼저 보낸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 일행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누가는 그 이유를 설명하지 않지만, 예수가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하는 요한복음 4장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ouv ga.r sugcrw/ntai VIoudai/oi Samari,taij) ...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oi` pate,rej h`mw/n evn tw/| o;rei tou,tw| proseku,nhsan)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Messi,aj e;rcetai o` lego,menoj Cristo,j)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강조 – 글쓴이, 요 4:9-25)

예수 일행을 거절한 첫 번째 이유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에 대한 반감이 작용한 것이다. 말하자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인종적인 갈등이 있어 서로 교제하는 않는다. 이런 인종적 갈등에 대한 원인을 우리는 요세푸스 『유대고대사』 9:290-291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그[앗수르의 왕]는 몇몇 [정통 이스라엘 사람] 제사장들을 보냈다. 그리고 그들[사마리아에 이주 된 외국인들로 후에 사자의 재앙을 당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과 종교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후에, 대단한 열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했고, 즉시로 역병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이러한 동일한 의식이 오늘날까지 그들 사이에 계속해서 행해지고 있는데, 그들은 히브리어로 구다인(Cuthim), 헬라어로는 사마리아인(Samaritans)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황에 따라 그들의 태도를 바꿨다. 그들은 유대인들이 잘 나가는 것을 보면 자신들이 그들의 친족이라고 불렀고, 그 근거로 요셉의 계통을 잇고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기원을 요셉과 연관시켰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역경에 처해지면, 그들은 유대인과 어떤 공통점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하거나 종족의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을 다른 민족의 해외 체류자라고 선언하였다.”

요세푸스가 사마리아인의 기원을 ‘구다인’에게서 찾은 것은, 열왕기 기자가 “앗수르 왕이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두매 ... 그 여러 성읍에 거주하니라”(왕하 17:24)라는 보도에 근거를 둔 것이다. 말하자면 협소한 의미로 사마리아인은 바벨론의 구다 지역에서 이주되어 온 사람들이다. 그러나 광의의 의미로 사마리아인은 앗수르 왕에 의해 사마리아에 이주된 외국인들과 그곳에 거주한 유대인들 사이에 태어난 후손, 곧 혼혈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사마리아인은 자신들이 요셉의 후손(- 에브라임과 므낫세)이라고 말하나, 이점을 유대인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렇게 사마리아인이 순수 유대 혈통이 아니기에, 스룹바벨은 제 1차 포로지에서 귀환해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에 그들을 불경건하다고 생각해서 참여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갈등의 원인이 되어,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세력이 되었다(스 4:10).

그리고 요세푸스는 사마리아인들이 상황에 따라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꾼다고 언급한다. 곧 유대인들이 잘나가면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은 유대인이라고 말하고, 유대인이 역경에 처하면 다른 민족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마리아인들의 성향에 대해서 요세푸스는 알렉산더 왕 때에 일어난 사건을 보도한다. 

“그[사마리아인]들은 알렉산더에게 매 7년째에는 씨를 뿌리지 않음으로 조공을 면제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이에 알렉산더는 이러한 요구를 하는 자들은 도대체 누구냐고 물었다. 그들은 자기들이 히브리인들인데 세겜의 시돈인들이라고 불리운다고 말했다. 알렉산더는 그들이 유대인인가하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그들은 대답하기를 자기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고 하였다”(『유대고대사』 11:344).

알렉산더 왕이 페르시아의 두로를 점령할 때에 8천 명이나 되는 사마리아인들은 알렉산더를 지원한다(『유대고대사』 11:321). 이에 전쟁에서 승리한 알렉산더가 사마리아인들을 칭찬하고 그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 준다고 말하자, 그들은 유대인들처럼 7년째 되는 해에 세금 면제를 요청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유대인들과 같은 동족이라고 말하면, 알렉산더 왕으로부터 받고 있는 호의가 부각되지 않을 것 같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자신들은 유대인이 아니라 히브리인으로 시돈인이라고 말한다. 곧 자신들은 유대인 중에서 특별한 종족이라는 것인데, 결국 유대인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순수 혈통도 아닌 사마리아인들이 상황에 따라 이렇게 자신들의 정체성을 바꾸기에 유대인들은 그들을 불결하며 또한 기회주의자라고 생각해서 관계를 맺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사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무시당하고 있음을 느꼈기에, 유대인들을 상종하지 않았다. 이러한 인종적 편견은 1세기 예수 당시에도 계속 존속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 갈등한 두 번째 원인은 종교적 요인이다. 이것은 사마리아 여자가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라는 진술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심 산에 자신들의 성전을 갖고 예배를 드렸다는 의미이다. 바로 앞서 언급하였듯이 알렉산더 왕이 두로를 점령할 때에 지원한 결과로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에서 자신들만의 성전을 지을 수 있는 혜택을 받았다(『유대고대사』 11:322-325). 그 결과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서로 다른 성향의 종교적 관습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점들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 치하 때에 분명히 나타났다.   

“안티오쿠스 왕은 ... 예루살렘의 성전을 더럽히고 그 성전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에게 봉헌하게 하고 그리심 산의 성소는 그 지방 사람의 소원대로 나그네의 수호신인 제우스에게 봉헌 하게 하였다”(막카비 하 6:1-2).

이처럼 유대인들은 에피파네스 4세의 친헬라화 정책에 대해 저항을 했기에,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강제적으로 제우스를 위한 제사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사마리아인들은 그 정책에 동조해서 그들 스스로 제우스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 이러한 종교적 성향의 차이로 유대인들은 종교적 자유를 갈망하는 막카비 혁명을 일으켰지만, 사마리아인들이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이 혁명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의 갈등은 점차 커져갔다. 마침내 요한 힐카누스 1세(BC 135-104)는 사마리아가 수리아와 가까이 지내면서 유대 식민지의 백성들을 괴롭히자, 이것을 계기로 사마리아를 공격해서 1년 이상 포위한 끝에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하였다(『유대고대사』 13:275-281). 이때에 그리심 산의 성전도 완전히 파괴되었다. 비록 성전이 파괴되었지만, 사마리아인들에게 그리심 산은 여전히 중요한 종교적 제의 장소로 기억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 여자의 말처럼 그들의 의식 속에 전승되었다.  

사마리아인들도 사두개인들처럼 모세 5경만을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예루살렘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그리심 성전을 기반으로 하는 사마리아인들의 신앙은 유대교 내의 한 종파가 아니라, 단과 벧엘을 중심으로 하는 북이스라엘의 신앙처럼, 우상을 섬기는 자들에 불과했다. 이러한 차별에 분노를 느낀 일부 사마리아인들은 코포니우스(AD 6-9)가 유대 총독으로 있을 때에, 무교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성전 문을 자정이 넘어서도 열어두는 관례를 이용해서, 죽은 사람의 뼈를 성전 여러 곳에 갖다 놓았다(『유대고대사』 18:30). 예루살렘 성전을 부정한 공간으로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자는 자신들의 종교적 유산에 따라 ‘메시야’ 대망 사상을 갖고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신명기 18:15-18에 근거해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메시아”인 ‘타헵’(Taheb – ‘개종시키는 사람’이라는 의미)을 기다리고 있는데, 그는 진리를 드러내고 참된 믿음을 회복시키며 참된 예배를 새롭게 할 두 번째 모세이다. 그런데 사마리아인들의 메시야 대망 사상은 그리심 산과 밀접하게 연관 되었다. AD 36년경에 사마리아의 한 예언자는 모세가 그리심 산에 묻어둔 성전 기구들을 보여주겠다고 말하면서, 사마리아인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가려고 했다. 이때 이 자의 말을 듣고 사마리아인들은 무장을 하고 한 마을에 모였는데, 이 소식을 듣고 총독 빌라도는 병사들을 보내 그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다. 그러자 사마리아 의회는 빌라도를 수리아 총독에게 고소하였고, 수리아 총독은 빌라도로 하여금 이 사건을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해명하도록 하였다(『유대고대사』 18:85-89). 말하자면 이 사건을 계기로 빌라도는 총독에서 해임된 것이다.

한편 쿠마누스(AD 48-52)가 유대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에 큰 충돌이 있었다. 예수의 일행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기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가려고 했던 것과 동일한 사건이었다. 유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 갈릴리 유대인들이 사마리아를 통과하려다가, 사마리아 접경 지역에서 충돌이 있어 유대인들이 죽임을 당했다. 이에 갈릴리의 지도자들은 쿠마누스에게 가서 유대인 살해자들을 처형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쿠마누스는 사마리아인들에게 돈으로 매수당했기에, 유대인들의 요구 조건을 들어 주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의 세겜 마을을 약탈하였다. 그러자 쿠마누스는 군대를 이끌고 가서 폭동에 참여한 유대인들을 살해하고 생포하였다. 그리고 사마리아인들은 이 문제를 갖고 유대인들을 수리아 총독에게 고소했다. 그러자 수리아 총독은 진상 조사를 위해 쿠마누스를 비롯하여 유대인과 사마리아 대표자들을 클라우디우스 황제에게 보냈다. 재판 과정에서 처음에는 유대인들이 불리했지만, 아그립바 2세의 도움을 받아 유대인들이 승소하게 되었다. 황제는 사건을 주도적으로 일으킨 사마리아인 세 명을 처형하고, 쿠마누스를 추방시켰다(『유대고대사』 20:118-136; 비교, 『유대전쟁사』 2:232-246).

이렇듯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에는 인종적 그리고 종교적 갈등이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순혈은 아니지만 아브라함의 혈통을 계승하였고 또한 모세의 말씀인 모세 5경을 중요시 여겼으나, 유대인들은 그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러한 취급을 받자 사마리아인들도 자연스레 유대인들에게 반감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인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는 유대인들에게 반감내지는 심하면 적대적인 행동을 취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갈릴리-유대 그리고 사마리아 지역은 남북한처럼 갈등과 대결로 늘 긴장 관계에 있었다.


III. 누가복음 9:51-56의 역사성 및 주제


예수가 제자들과 예루살렘을 가기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가려다가 거절당한 이 이야기는 오직 누가복음에만 보도된다. 그래서 대부분은 누가의 특수 자료인 L자료라는 점에서는 인정한다. 그러나 자료의 역사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대표적으로 불트만은 “사마리아를 통하는 여행은 누가의 허구이므로 여기에는 옛 전승이 전혀 없다. 그러나 여기서 교회의 선교 경험에서 생긴 전승 자료가 그에게 전해졌을 수는 있다”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초기 교회가 사마리아에서 선교한 것을 근거(행 8:4-25)로 누가가 창작했다는 것이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자들은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마 10:5)라는 구절을 주요 근거로 제시한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사마리아에 들어가지 말라고 명하셨기에, 그의 생애에 사마리아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태의 이 구절은 복음이 먼저는 유대인, 그리고 나서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을 포함한 모든 민족에게 전해져야 한다는(마 28:19) 마태의 신학적 도식이 반영된 것이다. 예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라고 말씀하시지만, 정작 이방 지역인 두로와 시돈 지방에 들어가셨고 또한 그곳에서 귀신들린 가나안 여자의 딸을 치유하는 기적을 베푸셨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가지 않았다고 추측하는 것은 무리이다.

또한 만약 누가가 이 기사를 창작했다면, 오히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의 일행을 받아들이고 대접하는 것이 누가의 신학에 더 잘 어울린다. 왜냐하면 누가복음에 등장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은 모두 긍정적인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10:25-37; 17:11-19). 그렇기 때문에 창작이 아닌 예수의 전승을 누가가 보도한 것으로 평가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러한 역사성에 대해서는 앞서 살펴본 요한복음 4장의 이야기를 통해서도 지원받을 수 있다. 요한 기자도 없는 이야기를 보도한 것이 아니라, 전승된 예수의 이야기를 보도한 것이다. 

한편 누가는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긴 여행 이야기(9:51-19:27)를 전개하며, 예수가 사마리아인들로부터 거절당한 사건(9:51-56)을 맨 처음에 위치시켜 놓는다. 이것은 예수가 갈릴리(4:28-30)와 이방 땅 거라사(8:37)에서 배척을 받은 것처럼, 분명히 예루살렘에서도 배척받을 것을 의도한 누가의 신학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배척(=고난)받는 예수를 강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해석은 거절당한 바로 그 사마리아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다는 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참고, 행 8:4-25). 그러나 누가는 예수가 사마리아에서 배척 받았다는 사실에 초점을 둔 것보다는, 오히려 배척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더불어 ‘평화’를 추구하고자 노력했음을 강조한다. 말하자면 사마리아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평화를 보여주신 예수는, 배척과 고난의 절정인 예루살렘에서도 평화를 보여 주신다는 것이다. 곧 누가가 평화의 예수를 강조하고자, 예루살렘 여행의 첫머리에 9:51-56의 단락을 보도한 것이다. 

오직 누가만 예수의 탄생을 ‘평화’와 연관해서 해석한다(2:14). 그리고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 에서 배척을 받고 죽음의 위협을 당하지만(4:29), 예수는 그 배척에 맞서 폭력을 포기하고 “그들 가운데로 [당당히] 지나서 가셨다”(4:30). 그리고 거라사에서는 치유받은 사람에게 하나님이 그에게 행하신 큰 일을 전하라고 말한다(8:39). 그리고 예루살렘 입성 자체가 평화의 선포이며(19:38) 그리고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다가 귀에 상해를 입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고쳐주고(22:51) 또한 자신을 처형하는 자들을 위해 죄를 사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23:34). 물론 예수는 사마리아인들로부터 배척을 받았지만, 그들에게 평화를 보여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9:51-56의 형식 및 주제를 ‘평화에 관한 예수의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다. 


IV. 예수와 사마리아인들과의 평화


앞서 우리는 평화를 ‘폭력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하였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폭력 사용을 포기하면 된다. 무엇보다도 힘을 갖고 있지만 평화를 위해 수치나 불이익을 감수하는 용기가 있어야 평화가 유지된다. 바로 이러한 점을 예수가 사마리아인들에게 보여준다. 이러한 예수의 노력을 이야기 전개 과정에 따라 살펴보자.

첫째는 평화를 실천하려는 굳센 의지이다. 예수는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다”(51절). ‘승천’(avnalh,myewj)이란 단어는 신약성서에서 단 한 번 이곳에 사용된 명사로, 예수의 죽음과 장사 그리고 부활을 통해 하나님께로 승귀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하는 광의적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의 출발은 ‘죽음’이라는 통과의례에서 시작되기에, 협소한 의미로는 예수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약’을 뜻하는 ‘헤메라스’(h`me,raj, 날들)는 예수의 지상에서의 삶 또는 사역의 날들로, 이것이 ‘차가다’(sumplhrou/sqai)라는 것은, 예수가 활동할 시간이 그렇게 많이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sumplhrou/sqai’가 수동태가 사용된 것을 보면, 그 날들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심을 알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신다”(auvto.j to. pro,swpon evsth,risen tou/ poreu,esqai eivj VIerousalh,m).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예수 자신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가려고 (그의) 얼굴을 굳게 고정시켰다”이다. 예루살렘은 다름 아닌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13:34) 수난의 장소인데, 그곳을 가려고 예수는 자신의 얼굴을 고정시켰다. 곧 굳게 결심했다. 왜냐하면 십자가 고난이라는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예수는 이런 대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인종적-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는 사마리아인들과의 관계 회복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려는 굳은 결심을 한다.

둘째는 만남이 있어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안전을 우선시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갈릴리에서 요단강을 건너 베뢰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방법의 장점은 사마리아인들과 갈등을 겪지 않는다는 점이고, 단점은 시간이 많이 걸려 대략 1주일 정도 소요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시간을 단축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선택하면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해야 해서 바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수 있다. 장점은 시간이 단축되어 사흘 정도 밖에 걸리지 않지만(『자서전』 270), 단점은 앞서 요세푸스가 『유대고대사』 20권에 보도한 것처럼 사마리아인들과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특별하지 않으면 사마리아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는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위해 사마리아를 지나가는 험한 방법을 선택한다. 그것은 예수가 시간이 촉박해서가 아니다. 이점은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누가복음 9장부터 19장 사이에 일어난 수많은 사건 보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예수가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은 갈등을 겪고 있는 사마리아인들과 교제함으로서, 그들을 위로하고(참고, 10:25-37) 또한 병든자들을 치료하며(참고, 17:16-19) 복음을 선포함으로(참고, 4:25-27) 그들과 평화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이다. 말하자면 예수가 사마리아인들과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먼저 제자들을 선택해서 사절단으로 사마리아의 마을에 보낸다(52절). 그가 이렇게 사절단을 먼저 보낸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전제되어 있다. 하나는 일행의 안전을 위해서다. 갈등을 겪고 있는 사마리아인들과 최대 마찰을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의사타진이 중요하다. 요세푸스도 갈릴리의 유력인사 100명을 예루살렘으로 보낼 때에, 이들의 안전을 위해 먼저 사마리아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자서전』 269). 또 다른 하나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이다. 예수 일행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사마리아인들에게 자신들의 뜻에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과 견해를 듣고 또한 그들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그들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갈등하는 사마리아인들과 마찰을 줄여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이다. 갈등이 있을 경우는 일시적으로 만남을 피하는 방법도 중요하지만, 야곱과 에서가 서로 만났을 때 형제의 갈등 관계가 모두 사라진 것처럼(창 33장), 갈등의 해결은 결국 만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을 예수도 알고 있기에 사마리아 마을을 지나가려고 한 것이다. 

셋째는 모욕과 수치를 감수해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53a절). 곧 예수에게 통행금지 처분을 내린다. 그 이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이다”(o[ti to. pro,swpon auvtou/ h=n poreuo,menon eivj VIerousalh,m, 이 문장을 직역하면 “예수께서 그의 얼굴을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고 있었기 때문이다,” 53b절). 곧 사마리아인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그리심 산이 아닌, 예루살렘 성전에 예배드릴 것이란 사실을 알고 통과를 허락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자신들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마리아인들로부터 이러한 거절을 당하자 굉장한 모욕과 수치를 느꼈다. 그래서 제자들 중에 야고보와 요한은 그 모욕과 수치에 대해 앙갚음을 하는 것을 “원하느냐”(qe,leij)라고 예수께 묻는다. 이러한 물음에 예수는 그들을 “꾸짖으신다”(evpeti,mhsen). ‘꾸짖다’라는 단어는 강한 어조로, 주로 귀신을 꾸짖고 쫓아낼 때 사용한다. 이렇게 예수가 제자들을 꾸짖는 것은 모욕과 수치를 참아내는 것은 복음 사역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또한 평화의 관계를 맺거나 유지하는데 있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넷째는 폭력을 포기해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모욕과 수치를 당하면 분노하기 쉽고, 그 분노는 폭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런 동일한 감정의 연결고리가 제자들에게도 나타났다. 사마리아인들로부터 모욕과 수치를 경험하자 제자들을 대표해서 야고보와 요한은 우레의 아들답게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54절)라고 말한다. 이 구절은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할 때에 “여호와의 불을 내려서 번제물과 ... 도랑의 물을 핥은” 사건(왕상 18:38) 또한 아합이 그를 체포하려고 할 때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오십부장 둘과 그의 군사들을 불사른(왕하 1:10, 12)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다. 그래서 A, C, D, W 등등 여러 사본에는 54절 끝에 “wj kai Hliaj epoihsen”(엘리야가 행했던 것처럼)이라는 구절을 덧붙였다. 말하자면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서 사마리아 사람들을 태워 죽이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를 ‘주님’(Ku,rie)이라고 부른 것은, 예수에 대한 존칭과 함께 그가 하늘로부터 불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나타낸다. 제자들이 폭력적 도구인 ‘불’을 요청하자, 예수는 “돌아보시며 꾸짖으신다”(55절). 곧 폭력적 방법은 절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다른 길을 찾고자 제자들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신다”(56절). 그러면서 예수는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모욕과 수치를 감수 그리고 폭력적 방법은 절대 안된다는 것을 배운 제자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고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게 될 것을 꿈꾸었을 것이다. 결국 그의 꿈대로 하늘에서 불을 요청한 바로 그 요한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한다(행 8:14).


V. 남북한 평화통일을 위한 제언


남북한 평화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여러 정치적인 문제점들이 해결되어야 하지만, 필자는 예수께서 사마리아의 한 마을을 통과하려는 그 사건을 통해 대안을 찾고자 한다. 그 첫째는 남북한 모두 평화 통일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위해 남북한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가 책임감을 갖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둘째, 남북한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만나야 한다. 2018년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났을 때에, 감동의 눈물과 함께 곧 평화통일이 이루어 질 것을 기대했다. 이렇게 만남은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것이지만 아주 중요하다. 체육인들은 체육인들끼리, 문화인은 문화인들끼리, 정치-경제인은 정치-경제인끼리 그리고 종교인들은 종교인들끼리 서로 잦은 만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만남의 장을 더욱 넓히기 위해서 도라산 역에서 막혀있는 열차 운행이 가까운 개성이라도 연장되어야 한다. 

셋째, 모욕과 수치를 서로 참아내는 인내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가급적 감정적 자제가 필요하다. 2020년 6월 16일 북한의 김여정은 대북전단을 빌미로 개성공단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이러한 행위는 남북 사이의 관계 악화만 가지고 온다. 그리고 우리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2020년 12월 14일 국회를 통과해서 현재 실행되고 있다. 법을 지키는 것은 국민의 의무에 속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내에서 일어나는 여러 인권 유린에 대한 문제에 대해 침묵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세계가 주목하고 있으니, 관심을 갖고 합법적인 방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넷째, 폭력에 대한 포기이다. 말하자면 군사적 도발내지는 사이버 테러를 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은 2010년 천안함을 공격해서 우리 젊은 용사 46명을 희생시켰고 그리고 연평도에 170여발의 폭탄을 퍼부었다. 그리고 지금은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어, 북동 아시아는 물론 전세계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 정보 당국에서 주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의 정부내지는 금융 및 산업시설에 대한 사이버 테러를 멈추어야 한다. 

다섯째, 평화통일를 위한 기도이다. 우리 기독교인이 갖고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도’이다. 기도만이 평화통일을 방해하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엡 6:12)을 물리 칠 수 있다. 그러기에 기독교인들은 통일을 위한 기도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 ‘세계 평화의 날’(9월 21일)이 있듯이,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의 날’을 제정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6. 25 전쟁이 발발한 바로 그 날이 적격일 듯하다.

남북 평화통일은 신기루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다가 곧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남북한 모든 국민이 평화통일을 위해 굳센 의지를 갖고, 만나기를 힘쓰며, 때로 힘들고 어려워도 모욕과 수치를 견디어 내며, 폭력을 멈추고 그리고 이를 위해 기도하기를 힘쓰면, 그 신기루는 철갑을 두른 소나무로 변할 것이다. 


VI. 나가는 말


에덴동산을 쫓겨난 인간에게 최초로 일어난 비극적인 사건은 폭력을 통한 형제 살인이다(창 4장). 이렇듯 형제는 사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미움과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마치 남북한의 관계처럼 말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념 추구로 3년간 처절한 전쟁을 하였다. 정전협정을 맺었기에, 아직도 우리는 계속되는 전쟁의 위험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제 이 전쟁을 멈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남북이 평화협정을 반드시 맺어야한다. 

평화의 일반적인 개념은 ‘폭력이 없는 상태’이지만, 남북한 관계는 물론 우리 일상의 삶은 폭력의 위협 속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폭력을 줄이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현실적 방안으로 ‘비폭력’ 내지는 ‘감폭력’ 또는 ‘반폭력’의 방법을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애를 넘어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예수가 보여준 평화의 발자취를 따라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의 평화 추구 사상은 사마리아의 한 마을을 통과하려는 이야기에 잘 나타난다. 예수 당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은 거의 7백년 넘는 세월동안 서로 인종적 그리고 종교적 갈등 속에서 반목하며 좁은 유대 땅에 살았다. 예수는 이런 갈등을 뛰어넘어 사마리아인들과 평화를 추구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방법을, 다름 아닌 유대인들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는 사마리아인들이 살고 있는 지역을 통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서로 인종적-종교적 갈등이 있지만, 그곳에서 숙박하면서 치유도 하고 복음을 전하면 그 갈등이 해결되어 평화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 중에 일부를 사절단으로 먼저 그들에게 보냈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대인들로부터 멸시를 받아온 그들이기에 예수의 일행을 거절하는 모욕과 수치를 안긴다. 이에 화가 난 야고보와 요한은 우레의 아들답게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그들을 심판하고자 한다. 이런 폭력적인 방법을 생각하는 제자들을 예수는 엄중히 꾸짖는다. 그러면서 그들에게 모욕과 수치를 감내하라고 요구하며, 그리고 언젠가 그 지역에 평화와 사랑을 전하려는 자신의 마음이 전달될 것을 바라면서, 다른 길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예수가 바라던대로 사마리아는 후에 심판의 불을 요구한 제자가 성령의 불을 받아, 그곳에 예수의 평화 정신을 전파한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남북 평화통일을 위한 기본적인 방법들을 찾아 볼 수 있다. 곧 남북이 평화통일을 위한 굳센 의지를 갖고 서로 자주 만나고, 또한 서로에게 모욕과 수치감을 주지 말고 군사적으로나 사이버로도 폭력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계속하다보면 언젠가 우리는 평화통일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매일 매일 기도해야 할 것이다 . 

 

*원문의 각주는 위 글에서 생략했습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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