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로 가득 차 있는 공백 

<모든 것은 빛난다>, 휴버트 드레이퍼스, 숀 켈리, 사월의책, 2013

“근대 계몽주의자는 신을 버리려다 신이 현상하는 자리인 성스러움마저 버렸다. … 성스러움마저 버리고 난 뒤에 찾아든 것은 새로운 미신이고 야만이다. 황량한 무의미의 사막만 남는다. 그것이 바로 현대판 허무주의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고 빛을 잃어간다.”(411. 옮긴이의 말 중)

‘냉소주의(cynicism)’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것은 2009년이었다. 강원도 양양에 위치한 라브리(L'Abri)에서 여름 한 철을 보낸 적이 있다. 거기서 들은 강연주제 중 하나가 ‘냉소주의’였다. ‘냉소’라는 한자말도 어색했는데, 거기에 ‘주의’가 접미어로 붙으니 더 생경했다. 세상의 풍조나 관습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견유학파와도 무관하지 않은 용어인데, 이 지점은 논외로 하고, ‘냉소’, 쌀쌀한 비웃음, 여기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

오늘날 유행하는 것 중 하나는 무신론이다. 무신론자는 곧 지성인이라는 도식이 성립되곤 한다. ‘오늘의 책’ 독자층의 절대 다수가 기독교인인 까닭에, 이 말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신앙인이면서도 지성인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증명해내려 분투하고 있을 터. 정치혐오보다 종교를 냉소하는 것이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 말이다. 필자도 그 중 한명이다.

수년 전에 휴버드 드레이퍼스와 숀 켈리가 합작한 <모든 것은 빛난다>라는 제목의 책을 인상 깊게 읽었다. 기독교에서 ‘빛’이라는 은유는 친숙하기에, ‘빛난다’는 어절이 퍽 반가웠다. 종교서적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내 주관적인 기준으로는 신학서적에 부합했다. “신학과 과학 간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이 세상을 선물로 보느냐 아니냐 하는 데에 있다”는 테리 이글턴의 말을 즐겨 인용하곤 하는데, 이 지점에서 <모든 것은 빛난다>는 신학책으로 읽힐 수 있다. ‘모든 것’이 빛난다고, 이 세상을 선물로 바라보자고 제언하는 까닭이다.

<모든 것은 빛난다>는 호메로스와 허먼 멜빌 등의 작품들, 서양 고전을 인용하며 ‘다신주의’와 ‘메타 포이에시스’를 노래한다. 여러 신들이 존재한다고 인정하거나 그들을 숭배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신교 배경 아래 살았던 선조들의 열린 태도를 배우자는 것이다. 희생 제사를 드리며, 성스러움에 대한 감각을 기르는 데에 몰두했던. 

“우리는 뭔가가 단일한 의미가 있다고 여긴 나머지 궁극적 의미가 무엇인지 찾으려 하지만, 곧 그것을 찾는 일에 미쳐버리게 될 것이다. 보편성이란 귀머거리와 다름없는 것이요, 혼돈을 뜻하기 때문이다.”(304)

인간은 의미를 희구하며 산다. 어떤 이들은 교리를 따라 살면 된다는 처방을 붙잡고, 또 다른 이들은 스스로 의미를 할당하는 자가 되기로 선택한다. 전자는 전체주의에 물들어 광신이나 맹신 혹은 회의감에 빠질 수 있다. 파시즘의 전사로, 폭력으로 기울기도 한다. 후자는 그렇지 않다. 답안지를 내던지고, 세상 속에서 의미를 발견해내는 힘을 길러온 까닭이다. ‘메타 포이에시스’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이 빛난다> 서두에 저자들은 영화 매치포인트를 인용하며, ‘선량한 사람보다는 행운아가 되고 싶다’는 말은, 인생의 깊이를 체험한 사람만이 발화할 수 있다고 한다. 운칠기삼과 같은 뜻일 게다. 선량한 사람과 달리 행운아는 노력한다고 될 수 없다는. 책 말미에 가면 전복되는 듯하다. 놀라워하고 고마워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탁월함이라는 역설에 의해.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