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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박경미  |  r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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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7월 20일 (화) 17:05:29
최종편집 : 2021년 07월 20일 (화) 17:06:44 [조회수 :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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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1)

 

박경미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1. 성소수자와 문자주의적 성서해석

 

우리 사회는 성소수자만이 아니라 장애인, 외국인노동자, 난민 등 다양한 소수자들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매우 서툴다. 그중에서도 성소수자는 성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양극단적인 태도 때문에 더더욱 괴로움을 겪고 있다. 우리 사회는 성문제와 관련해서 한편으로는 유교적 염결성을 요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단으로 치달은 자본주의 성상품화로 인해 어디서도 성적 자극을 피할 수 없는 섹스공화국이 되었다. 이런 이중적인 양 극단에 끼인 성소수자는 그 역시 다층적이고 복잡한 내면성을 지닌 한 사람의 전인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성적인 측면에서만 규정되고, 성적으로만 인식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 동성애자나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는 유교적 염결성에 근거해서 성적으로 부도덕한 사람, 성도착자처럼 취급되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적이고 속물적인 성적 호기심, 관음증의 대상이 된다.

만일 내가 타인에게 오로지 성적인 존재로만 인식된다면, 나는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성적인 층위는 한 인간의 삶에서 가장 본질적인 부분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 인간을 성적인 층위에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인간을 어느 한 층위에서만 규정할 때는 언제나 모종의 폭력성이 개입된다. 누군가를 대하면서 일차적으로 그가 성행위에서 어떤 체위를 할 것인가부터 떠올린다면, 그리고 그도 상대방이 으레 자신을 어떻게 인식할지 이미 의식하고 있다면, 자연스러운 인간적 관계가 가능할까? 복잡하고 다층적인, 하나의 신비일 수밖에 없는 살아 있는 인간을 오로지 성적인 원리로 환원하여 기계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 자체로 폭력이며, 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살아 있는 이웃을 물건으로 대하는 것이고, 관계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당한 상황에서 기독교인들은 희생자를 옹호하기는커녕 비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데 성서가 가장 중요한 근거로 내세워지고 있다. 최근 코로나 19사태와 관련해서 몇몇 개신교 교회가 보여준 태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성서는 반사회적이고 비인간적인 자기주장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늘 문제가 되는 것이 문자주의적 성서이해이다. 성서를 문자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은 얼핏 기괴하고 우스꽝스러워 보일 뿐이지만, 그 결과는 매우 파괴적이다. 자신과 타인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고 이웃과의 관계에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 그리고 성서해석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성서의 일부를 문자적으로 읽고 거기에 진리의 깃발을 세울 때 실은 반성서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 자체보다는 성서를 어떻게 읽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련의 질문이 제기된다. 성서는 원래 어떠한 문헌인지, 성서는 역사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고, 또 역사적으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보다 근본적으로 성서라는 문서를 우리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즉 오늘날 세계와 인간의 문제들에 대해 성서에서 답을 구할 때 어떠한 접근방법을 취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러한 질문들을 우리는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서 다시 한 번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들을 염두에 두면서 성소수자와 관련해서 문제가 되는 구체적인 본문들을 역사적으로, 비판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소수자와 관련한 주류 개신교계의 대응에는 죄와 구원에 대한 신학적 성찰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오래된 믿음의 전통을 지켜나가고자 할 때 제기되는 복잡한 해석학적 문제가 얽혀 있다. 오늘날 제기되는 윤리적 문제들과 관련하여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는지, 인간과 사회, 구체적으로는 인간의 성과 성행태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역시 문제가 된다. 물론 이런 질문들에 대해 정해진 답은 없고, 신학적 관점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한 견해를 인정한다 해도 토론을 하려면 상식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통의 기준점이 있어야 한다. 나는 그 최소한의 기준점이 성서에 대한 문자주의적 이해로부터의 탈피라고 생각한다.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에 매여 있는 한 실질적인 토론은 불가능하다.

성서는 인간과 인간의 구원에 관한 진리를 담은 책이지만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많은 오류가 있는 책이다. 하느님의 진리는 인간의 불완전한 생각과 지식을 통해 알려지고 표현되고 기록되었다. 성서는 그것이 기록된 당시의 삶의 자리에 기초하고 있으며, 하느님의 음성은 그 시대의 소리로 들려진다. 따라서 성서의 기술을 문자 그대로 사실, 내지는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볼 수 없다. 이것은 성소수자 문제와 관련해서만이 아니라 다른 어떤 문제와 관련해서든 모든 기독교적 인식과 토론의 출발점이며, 실제에 대한 단순 명료한 사실적 인식에 속한다.

따라서 오늘의 인간 경험에서 볼 때 비진리인 것을 일부 성서 본문을 문자적으로 내세워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부분적으로는 성서도 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으로 성서를 정당화하는 것은 성서가 전하는 진리를 신뢰하는 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오늘의 정의 관념에 억지로 성서 본문을 끼어맞추려 해서도 안 된다. 그것 역시 지적으로 정직하고 겸허한 태도가 아니다. 설사 오늘의 정의 관념과 일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서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가감 없이 정확하게 읽는 것이 무엇보다도 선행되어야 하며, 다음에는 오늘의 윤리적 도전과 현실 인식에 입각해서 성서를 비판적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이것은 성서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문자에 대한 우상숭배에서 벗어나 성서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하느님 경험에 대한 이야기로 읽기 위함이다.

이러한 인식은 오늘날 성서를 읽을 때 상식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전해진 지 150여 년이 지났고, 대학에서 신학교육이 시작된 지도 그에 버금가는 세월이 흘렀는데, 여전히 일반 신자는 물론이고 다수의 목회자, 전문적인 신학자들까지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에 매여 있다. 아직 한국 개신교가 이 상식에 이르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목회자와 신학 전문가를 양성하고 신학적 여론 지형을 형성하는 신학교육의 실패라고 생각되며, 이 실패에는 나 역시 책임이 있다.

극우 개신교의 반동성애 운동은 한국 개신교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런 상투적인 수사 뒤에 혐오와 배제 의도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은 말하는 본인들만 모른다. 퀴어 축제 때마다 깃발을 들고 나타나 입에 담을 수 없는 언사를 쏟아내는 극우 개신교인들은 차치하더라도, 주류 개신교 교단과 신학대학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선으로, 신앙의 실천으로 여기는 조처들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게는 무엇보다도 한국 신학과 신학교육의 실패로 여겨진다.

전문가와 일반 대중의 인식 차이는 모든 학문 분야에서 나타나지만, 신학 분야에서는 특히 그 격차가 심하다. 뿐만 아니라 신학적 관점의 차이 역시 극과 극이다. 아마도 그 차이는 해소되지 않겠지만, 비판과 성찰, 토론을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으로서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으로부터의 탈피는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것은 오늘날 한국 개신교의 존립의 문제이기도 하다. 게다가 지금 당장 개신교계가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오랜 시간 대학에서 성서와 신학을 가르쳐온 사람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그 피해를 성소수자가 입고 있어 그들에게 미안하다.

 

2. 나는 어떻게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

 

사실 성소수자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 신앙 안에서 성소수자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논증하는 것 자체가 우습고 가당찮을 수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을 받아들일지 말지 논쟁하는 것 자체가 인간에 대한 모독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성소수자 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다. 내 나름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사실상 그것이 한 인간을 근원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며, 때로는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폭력이라는 사실을 깊이 자각하지는 못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젊은 시절에는 성소수자문제, 동성애 문제를 신학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 1세계 신학자들의 한가한 소리라고 여겼다. 지금 이 땅에서 절박하게 제기되는 문제들, 가령 독재정권을 끌어내리고 정치적 민주화를 이루는 일,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빈곤, 통일문제 등이 교회와 신학이 일차적으로 다루어야 할 정말로 중요하고 근본적인 주제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주제들에 비하면 성소수자 문제는 부차적이고 사소한 문제로 여겨졌다.

내가 젊은 신학도로 한창 신학을 공부하던 시절은 군사독재 시절이었고, 광주민주화운동은 시대의 심장을 관통했다. 정치적 억압과 물리적 폭력이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해졌던 그 시절, 특별히 운동권이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명백한 불의 앞에서 자신이 느끼는 도덕적 분노를 정치적 저항의식으로 키워갈 수 있었다. 누구는 잡혀 들어가고 누구는 고문으로 정신줄을 놓았다는 이야기는 그저 풍문이 아니라 한 다리만 건너면 알 수 있는 주변 인물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일이었다. 우리 세대는 전태일에게서 이타적 삶의 고결함을 배웠고, 그것은 광주에 대한 도덕적 부채의식으로 이어졌다. 민중신학과 해방신학은 이러한 도덕 감정을 신학적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훌륭한 도구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군부정권과 민주진영이라는 양대 진영으로 사회가 나뉜 상황에서 민주주의와 정의감을 배워가다 보니 도처에 복잡하게 그물망처럼 얽힌 다양한 문제들을 정치적 문제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데는 둔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적 문제를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 나의 문제로 성찰하지도 못했다. 간단히 말해 나는 성소수자 문제를 민주주의와 정치의 문제로 자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그것이 신앙과 신학의 문제임을 깨닫지도 못했다. 그래서 나는 오랫동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못했다. 20대 때 내가 성소수자 문제나 생태문제는 1세계 여유로운 사람들의 한가한 문제라고 생각했던 데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오늘날 20-30대가 이해하기 힘든 우리 세대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러한 경험의 한계가 인식의 한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그러다 내가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기 시작한 것은 성소수자 인권문제가 사회문제화 된 이후였다.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 제정이 개신교 집단에 몰고 온 광풍과 퀴어 축제 때마다 벌이는 일부 개신교인들의 행태를 보면서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런 행동으로 인해 상처받고 또 한 번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몹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동안 나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게 되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내가 성소수자들의 고통에 둔감했던 것은 그들의 고통의 크기가 작다거나 성소수자 문제가 사소해서가 아니라, 실은 구체적인 삶에 발 딛지 않은 채 추상적인 수준에서 이념적으로만 사물을 재단하던 나 자신의 습관, 그리고 거기 더해 성문제를 공적 주제로 다루기를 꺼려하는 유교적 관념의 영향 때문이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한편으로는 2000년대 이후 성소수자들 자신이 눈에 띠는 사회적 집단으로 부각되면서 그들의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려오기 시작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성소수자들의 목소리에 대한 개신교 집단의 테러에 가까운 행동을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 것이다.

일차적인 감정은 부끄러움이었다. 성서를 공부하고 신학교육을 담당하는 사람으로서 이 문제에 무관심했던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자 예전에 별다른 마음의 흔들림 없이 대했던 일들, 가령 이화여대 성소수자 동아리 “변태소녀 하늘을 날다”의 대자보를 기독교인 학생들이 훼손해서 이에 항의하는 대자보를 학생관에서 읽으면서 기막혀했던 기억, 내가 가르치던 교양과목을 수강하던 학생이 자신의 성적 지향 문제로 내게 찾아와 어렵게 말문을 열던 기억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성소수자 차별에 반대한다는 원론적인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했겠지만, 당시 나는 그들이 당하는 괴로움에 진심으로 마음 아파할 줄 몰랐고, 일상화된 그들에 대한 차별에 분노하지도 않았다. 가슴으로가 아니라 머리로만 그들을 대했던 것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이제 인간에 대해 좀 더 솔직해지고 사물을 구체적으로 보게 되면서 한 인간의 삶에서 성적 층위가 지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성적인 문제가 단순히 분리된 부차적 문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존재 전체와 결부된 문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성소수자 문제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권리, 즉 민주주의의 근본과 연결된 정의의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리고 신학이, 성서가 한 인간이 그 자신인 것을 부정하는 데 사용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할 의무가 신학자인 내게 있다고 느꼈다.

부끄러움에 더해서 의무감을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된 계기가 있었다. 2016년 나는 이화여대 신학대학원 원장직을 맡고 있었고, 당시 잠시 국내 체류 중이던 재미 성서신학자 이재원 교수에게 “성서와 여성”이라는 과목을 맡아달라고 하면서 한 학기 동안 “성소수자와 성서”라는 주제를 다루어달라고 부탁했다. 나로서는 신학대학원 학생들만이 아니라 이화여대 학부와 대학원의 많은 학생이 이 문제에 관심 갖기를 바랐기 때문에, 특별 예산을 편성해서 이 수업을 진행하는 중 다섯 차례 성소수자 인권운동가들을 초대하여 공개강연을 계획했고, 그 첫 번째 강연자가 임보라 목사였다. 학교 곳곳에 공개강연을 알리는 포스터를 붙였고, 아마도 그것이 반동성애 그룹에게까지 알려진 모양이었다. 이로 인해 신학대학원과 내가 소장을 맡고 있던 이화여성신학연구소, 그리고 총장실에까지 지속적인 항의 전화가 빗발쳤고, 그것은 거의 전화테러에 가까웠다. 실제로 강연이 있기까지 약 일주일 동안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시달렸고, 당시 총장은 내게 직접 전화해서 강연을 취소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학생들과, 그리고 강연자와 했던 약속은 지켜야 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그러한 폭력적 행동은 부당하고 비열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나는 그 요청을 거부했고, 다섯 차례의 공개강연을 강행했다. 이 사건은 내게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민감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특히 교단 소속 신학대학이 아닌 이화여대에서 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의무감 같은 것을 갖게 했다.

2016년의 그 경험으로 인해 나는 그동안 성소수자들이 당했던 억압과 폭력에 주목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개신교의 동성애혐오로 인해 괴로움을 당했던 구체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접하게 되었다. 그것은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고, 미력하나마 내가 가진 전문지식을 그들을 위해 사용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때 한티재 출판사로부터 성소수자와 성서라는 주제로 간략한 입문서를 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게 되었고, 작년 가을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말로든 글로든 내가 선 자리에서 기회 닿을 때마다 성소수자에 관한 진실과 복음의 의미를 전하기로 마음먹었다.

 

* 이 글은 필자의 졸저 『성서 퀴어를 옹호하다』(한티재, 2020)의 1장 “나는 어떻게 성소수자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가”를 발췌 수정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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