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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성장은 필수이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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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7월 17일 (토) 18:01:05 [조회수 :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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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5장 11-14절

신앙성장은 필수이다

 

가. 신앙성장은 반드시 필요하다.

12절a,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 본문은 신앙의 연조가 깊어질수록 이에 걸맞은 신앙성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와 ‘마땅히’가 주는 의미를 새겨야 한다. 여기서 ‘마땅히 해야 한다’(오페일로)는 ‘빚지고 있다’라는 말이다. 즉 신앙성장이 오랫동안 받아온 은혜의 빚을 갚는 것이다.

* 바울도 신앙성장을 강조하였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니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4-16)라고 하였다.

* 신앙연조가 자랑이 아니다. 물론 오랫동안 지켜온 신앙생활은 중요하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성도의 신앙성장이다. 표면적 유대인은 참 유대인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면적 유대인을 원하신다. 신앙생활은 은혜를 받는 수단이고, 그 은혜 안에서 신앙성장을 이루는 것이 신앙생활의 목표다.

 

나. 어린아이 신앙으로는 안 된다.

12절b,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였는데도 어린아이의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단단한 음식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도 아기처럼 젖이나 먹고 있으면 문제다. 바울도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고전3:2)라고 하였다.

* 본문 11절에서 ‘멜기세덱에 관하여는’(페리 후)은 ‘그것에 관하여는’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 온전하게 되신 것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므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 되신 것을 가리킨다(앞 8-10절 참조). 본문은 믿는 자들이 이런 차원의 신앙생활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말씀이다.

* 현대의 어린아이 신앙은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칭의 중심의 신앙, 자신의 배를 섬기는 기복신앙,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신비주의 신앙 등이다. 이런 것들은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신앙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소홀하다. 그의 나라의 그의 의를 구하는 신앙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다. 의의 말씀이 몸에 익숙하게 하라.

13절,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 신앙성장은 의의 말씀에 얼마나 익숙해지는가에 달려 있다. 어린아이 신앙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라고 하였다. 여기서 ‘경험하지 못한’(아페이로스)은 ‘익숙하지 않은’이라는 말이다. 특별히 말씀을 몸에 익혀야 한다. 이론으로 아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의의 말씀을 의도적으로 실행하려고 하면 외식하기 쉽다. 하나님의 말씀 중에 의를 추구하는 말씀들을 집중하여 익혀야 한다.

* 그리고 의의 말씀에 익숙하려면 지각을 사용해야 한다.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14절)라고 하였다. 기존의 부흥운동이 보여준 감성을 자극하여 선동하는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판단능력(지각)을 키워나가야 한다.

* 여기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연단을 받아’(귐나조, 분사수동)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 안에서 맹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잘못하였을 경우에는 말씀으로 깨지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의의 말씀이 자신의 몸에서 자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훈련을 받아야 한다.

 

라. 성숙한 성도가 선악을 분별한다.

14절,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 선악을 분별할 수 있어야 성숙한 성도라고 할 수 있다. 이론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반응할 수 있는 단계여야 한다. 본문에서 ‘분별’(디아크리시스)은 ‘다툼’이라는 뜻도 갖고 있다. 이는 불의에 대하여 거룩한 분노를 갖는 것이다. 불의와 쉽게 타협하는 것은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다.

*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최고의 지혜다. 솔로몬은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다.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3:9)라고 하였고, 하나님은 솔로몬이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한 것을 기뻐하시며 복을 더하셨다(왕상3:11-13).

* 요즈음엔 가치판단과 선악의 분별에 혼란을 겪고 있다. 속칭 ‘내로남불’이 판을 치고 있다. “네편 유죄, 내편 무죄”를 서슴지 않고 적용한다. “꿩 잡는 것이 매”라는 생각으로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성숙한 성도가 되어야 선악을 분별하고 하나님나라를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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