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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사로잡는 편향적 기억
김화순  |  givy4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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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7월 11일 (일) 23:20:37 [조회수 : 3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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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이 되었다. 기억해 보면 아버지는 참 자상한 분이셨다. 생애 첫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딸에게 하나하나 목차를 적어주시면서 학교에 다니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생님께는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하는지, 책과 공책은 어떻게 쓰는지, 숙제는 어떻게 해가야 하는지, 선생님이 불러주시는 준비물은 꼼꼼히 적어와야 한다는 등 학교생활 전반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주셨다. 아버지는 달력의 하얀 뒷면으로 교과서를 한 권씩 정성스레 싸주셨다. 연필은 또 얼마나 예쁘게 깎아 주셨는지 자동 연필깎이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연필을 스스로 깎아 본 적이 없다.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것은 책을 많이 사주셨다는 것이다. 전래동화, 위인전, 명작 전집 등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었음에도 책 사주시는 것을 전혀 아끼지 않으셨다. 어릴 때 아버지가 사주셨던 책들은 나의 친한 친구가 되었고 삶의 자원이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한탄 섞인 말씀 때문이었다. 추도예배를 드리던 날, 아버지를 회상하시면서 ‘어찌나 마음이 약한 양반인지 사람들이 부탁하면 다 들어주셨지. 온 집안에 아버지가 사들인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책이며 살림이며 처분하기 바빴다’. 책을 많이 사주시던 아버지가 마음이 약해서, 책 장사의 권유를 마다하지 못해 책꽂이에 그렇게 많은 책이 꽂혀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적잖이 당황하였다. 내 기억 속의 아버지, 자상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이면을 보는 것 같아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두꺼운 백과사전부터 가득 꽂혀 있던 책들이 그런 연유에서였다니! 그렇지만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여전히 딸에게 다양한 분야의 책을 사주셨던 좋은 아버지로 기억된다. 아니 기억하기로 한다.

기억은 자기 편향적이고 지극히 선택적인 경우가 많다. 학창시절의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가 기억하는 내용과 친구들이 기억하는 내용이 다르다는 것을 자주 경험하게 된다. 기억의 조합이라는 것이 자기 본위적이기 때문이다. 기억은 감각기관의 정보를 통해 만들어진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는 등의 감각 정보가 뇌로 들어오고, 이 정보들이 서로 조합되어 하나의 기억이 만들어진다. 이후부터는 해마가 본격적으로 기억 활동을 맡게 되는데, 뇌로 들어온 감각 정보를 해마가 단기간 저장하고 있다가 이를 대뇌피질로 보내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거나 삭제한다. 

자신의 삶에 관한 기억은 개인마다 경험하는 고유한 사건들로 이루어진다. 기억은 자기개념을 형성하고 미래의 목표를 세우는 등 일상생활에서 다양하고 중요한 기능을 하는데, 특히 기분조절의 기능을 갖는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기분 상태와 일치하는 기억을 회상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런데 부정적인 기분 상태에서는 기분과 일치하지 않는 기억, 즉, 긍정적인 기억을 회상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는 부정적인 기분을 자발적으로 조절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부정적인 기분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기억을 회상하며, 이러한 회상이 기분을 개선시키는데 도움을 준다. 

감정은 경험과 함께 형성되고 기억의 형태로 저장된다. 어떤 감정은 의식의 수준에서 기억할 수도 있고 또 어떤 감정은 무의식의 깊은 심연에 저장되어 알아차릴 수 없기도 하다.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을 억압하고 부정하며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시간이 흐른 후에 우울, 분노, 공허함, 현실 부적응 등의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부정적인 감정 또한 삶의 일부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수용하고 여러 감정들과 통합한다면 오히려 긍정적인 에너지로 승화시킬 수 있다.

어머니 기억 속의 아버지와 내 기억 속의 아버지는 다르다. 아버지에 대해 각자 느꼈던 감각과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기억 어딘가에도 부정적인 아버지의 면모가 남아 있다. 보여주셨던 이면의 모습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두 측면의 모습을 가진 아버지를 기억 속에 고스란히 저장한다. 저장된 기억을 꺼내 이해하고 통합할 때, 마음과 정신에 깊은 감동이 스며들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화순∥중앙연회부설 심리상담센터 엔, 한국감리교선교사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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