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의 시간

<조국의 시간: 아픔과 진실 말하지 못한 생각>, 조국 지음, 한길사. 2021

출간되자마자 이 책을 사놓고 꽤 오랫동안 펼쳐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자기변명을 늘어놓을 것이 뻔한데, 괜한 시간 낭비는 아닐까? 너무 일방적인 주장에 휩쓸리지는 않을까? 너무나 중요하지만 그만큼 민감한 문제를 경망히 보게 되지는 않을까? 등등 책을 펼치기까지 이렇게 생각이 많았던 적이 있었나 싶다. 30여 년 전 유시민의 ｢항소이유서｣가 주었던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은근히 기대하면서 󰡔조국의 시간󰡕을 마주했다.

저자는 2019년 8월 9일 법무부 장관으로 지명된 이후 벌어진 일들을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면서,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이에 대한 검찰, 언론, 야당의 행태와 문제점을 비판하는 한편, 이른바 ‘강남 좌파’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언행 불일치에 대한 개인적 반성을 술회하고 있다. 저자는 지난 2년 동안 전개된 사건들을 언론 기사, 관련 부처의 문건, 관련자들의 증언과 진술 등 구체적인 근거 자료를 토대로 서술하고 있지만, 자신과 가족이 겪은 고통에 대해서 개인적인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는다. 서론 ‘촛불 시민들께 드리는 말씀’은 “가족의 피에 펜을 찍어 써 내려가는 심정입니다.”로(5쪽) 시작한다. 시인 김주대의 표현을 빌리면, “온 가족이 발가벗겨 정육점 고기처럼” 걸려(275쪽) 있는 상황에 어찌 분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지 않겠는가?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가장(家長)으로서 저자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법학자이자 참여지식인으로서, 그리고 법무부 장관(Minister of Justice)으로서 저자의 입장은 검찰 개혁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 말고는 잘 수긍이 가지 않는다. 사실 저자 스스로 밝혔듯이, 검찰 업무 이외에도 인권, 범죄 예방 및 교정 개혁, 외국인 정책 등 법무부가 관장하는 다른 업무들도 중요한데, 감정에 치우쳐 자기 생각을 제대로 다 보여주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저자도 검찰 개혁 문제에 매몰되어 편협한 진영 논리에 갇혀 버렸기 때문일까? 어쨌든 저자는 “검찰 개혁을 위한 ‘영웅’이 아니라 ‘도구’로서” 봉사하고 살아 돌아왔지만, 그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만신창이가 되었고, 대통령의 꿈은 산산조각 났고, 개혁 대상이 되었던 조직의 수장은 대권 도전을 선언했다. 아무튼 율사(律士)의 세상이다.

사법(司法), 재판(裁判)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justice’는 정의(正義), 공정(公正)으로도 번역된다.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주는 것이 공정한 재판이다. 이미 함무라비 법전에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그 이상(理想)이 선언된 바 있다. 죄의 크기를 보여 주는 막대그래프가 있다고 가정하면, 그 죄에 대한 처벌은 정확하게 그 높이만큼 되어야 공정(just)한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이 재판(justice)이고 정의다. 그런데 이 두 막대그래프를 죄와 벌의 관점이 아니라, 그냥 어떤 잣대로 본다면, 두 번째 막대는 ‘겨우’, ‘간신히’ 첫 번째 막대의 높이에 도달한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C’est juste!”, 영어로는 “It’s just!”라고 할 때, 부사로서 just는 ‘정확하게 딱 맞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앞서 말한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인다. 예를 들어 어떤 지원자가 커트라인에 걸려 간신히 합격했다면, 운이 좋았다고 하지 공정하다고 하지는 않는다.

우리말에 ‘안성맞춤’이 있다. 안성 장인들의 솜씨를 칭찬하는 말에서 유래했는데, 물건의 쓰임새와 모양새를 고려해서 주문받은 물건을 적당한 크기로 만들어낸다. 장인들에게도 나름의 규격이 있고, 원칙이 있었겠지만, 주문자의 요구에 맞춰 물건을 제작했기에 ‘안성맞춤’ 아니었겠나? 법(法)은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최소한의 약속일 뿐이다. 따라서 앞서 말한 공정의 개념을 법의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 될 터! 

그러나 저자는 사건이 벌어지던 당시에도, 이 책에서도 ‘위법하지 않다’,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점을 내세우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별건 수사를 통해서 저자의 자녀를 법정에 세운 검찰은 스스로가 개혁 대상임을 만천하에 보여준 꼴이지만, 실정법 조항에 근거해서 진술을 거부하며 무혐의를 주장하는 형법학자가 부르짖는 검찰 개혁도 설득력이 약해 보인다. 

박윤덕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