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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양식, 오늘의 양식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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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7월 10일 (토) 21:18:10
최종편집 : 2021년 07월 10일 (토) 21:23:45 [조회수 : 2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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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래 오순절 혹은 칠칠절로 불렸던 성령강림절기는 당시 팔레스타인의 여름 추수기이다. 이 즈음 농부들은 본격적으로 밀을 타작하여, 누룩을 넣은 신선한 빵을 만들어 먹었다.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이 무교절의 아픔을 뜻한다면, 누룩으로 부풀린 빵은 오순절의 기쁨을 의미한다. 유월-무교절이 ‘노예의 고난’을 기억하듯, 오순절은 ‘자유인의 감사’를 기념하고 있다. 

  어느 민족이든 먹거리에는 민족의 아픔과 기쁨이 담겨있게 마련이다. 프랑스빵으로 알려진 ‘쿠어쌍’(Croissant)에는 흥미로운 유래가 있다. 한 때 세상에서 가장 용맹을 떨치던 터키 군대는 유럽 세계를 불안에 떨게 했던 큰 위협이었다. 비록 유럽을 침략할 때마다 번번이 서방의 최전선 교두보라고 할 수 있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막히고 말았지만, 강력한 이방군대의 침략은 유럽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는 불안의 원인이었다. 초승달 모양의 쿠어쌍은 터키 군대에 대한 조롱을 품고 있다. 유럽인들은 식탁에서부터 “너는 내 밥”이라며 배짱을 키웠을 것이다. 

  빵에는 환대의 의미가 담겨 있다. 독일 복흠으로 이사했을 때, 아래 집과 윗집 사이가 된 슈타인-뷔테 목사는 참깨가 잔뜩 붙어있는 큰 빵과 소금 한통을 선물하였다. 독일 사람들은 새 이웃에게 환영의 의미로 빵과 소금을 선물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러시아 우주인들이 새로 우주정거장에 오는 손님우주인에게 빵을 선물하는 배경과 통한다.

  빵을 선물하는 전통은 성경적이다. 오순절에 제사장은 갓 수확한 밀로 누룩을 넣어 만든 빵을 새 소제(곡식예물)로 하나님께 바친다.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레 23:17). ‘두 개의 떡’에는 중요한 고백이 담겨있다. 두 개인 까닭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예표한다. 계속되는 말씀은 율법의 정신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레 23:22). 빵을 나누는 일은 가족은 물론 친구와 손님과 더불어 한 식구임을 확인하는 일이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에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간청이 담겨있다. 일용할 양식은 가난한 자의 음식으로 오늘 꼭 필요한 음식이며, 아침과 저녁의 끼니이다. 신학자 로마이어는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라는 주기도문의 네 번째 청원은 주기도문의 중심이고 핵심이다”라고 강조하였다. 

  일용할 양식은 그 해석이 분분하다. ‘일용할’로 번역된 ‘에피우시오스’는 전치사 ‘에피’에 대한 이해에 따라 의미가 다양하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오늘의, 이 날을 위한’(for today), ‘다음날, 내일을 위한’(for tomorrow) 또는 ‘장차, 미래를 위한’ 으로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어 불가타 성경을 번역한 제롬은 ‘위, 너머, 초월의’란 뜻으로 이해하여 초월적인 빵으로 번역하였다. 

  마틴 루터는 ‘소교리문답집’에서 주기도문의 모든 간구에 대답을 주려고 한다. “일용할 양식은 먹을 것, 마실 것, 옷, 신발, 집, 정원, 경작지, 가축, 돈, 재산, 순수하고 선한 배우자, 순박한 아이들, 착한 고용인, 신뢰할만한 통치자, 선한 정부, 좋은 날씨, 평화, 건강, 명예, 좋은 친구들, 의리 있는 이웃과 같은 우리의 몸에 양분을 주는 것, 필수품에 속하는 모든 것을 말한다.” 일용할 양식은 모든 인생의 요청을 구체적이고,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

  성경은 ‘빵’의 물질적 측면과 함께 영적,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먹는 것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한 사람들이다. 신명기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고 묻고 나서 ‘사람은 빵으로만 사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존재’(신 8:3)라고 대답한다. 히브리 노예들의 출애굽 정신은 궁극적으로 빵의 노예를 거부한 것이었다. 예수님은 ‘모든 날들’(뜨레주르)의 빵이 아닌 바로 오늘의 빵을 구하라고 하신다. 아무리 많은 재산도 두 평생을 쓸 수 없듯이, 우리가 먹는 밥은 단 한 끼 음식일 뿐, 평생의 양식을 한꺼번에 갈무리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교회는 밥을 나누는 공동체(共同體)이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행 2:42). 함께 밥을 나눔으로써 식구임을 확인하고, 새로운 손님까지 식구로 맞아들이는 것이다. 공동체는 필요한 양식과 오늘의 양식을 나누려고 결심함으로써, 이미 자매와 형제가 되기로 작정하였다. 심지어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떡”(요 6:35)으로 오시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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