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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른후트 형제단 보물헤른후트형제단 신학교육 매뉴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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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7월 02일 (금) 00:21:25
최종편집 : 2021년 07월 02일 (금) 16:00:20 [조회수 : 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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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른후트형제단 보물

헤른후트 형제단 보물

 

한국에 헤른후트 형제단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아마도 필자가 번역 소개한 헤른후트 로중이라는 성경 묵상집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된다. 1731년부터 독일 헤른후트에서 매년 출간된 로중은 형제단의 영성이 배어있는 보고이다. 필자는 1994년부터 2003년까지 독일 체류 시 독일어 로중을 통해 고난의 행군을 잘 감내할 수 있었다. 10년 동안 공장과 도서관을 드나들면서 다행히 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힘은 돌이켜 보건데, 매일의 묵상집인 헤른후트 로중의 도움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한국에 돌아온 후 연구재단의 연구교수로 독일을 방문한 2006년 여름, 처음으로 헤른후트를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되어 독일어 로중을 한국어로 번역을 하게 되었다. 2009년도 판 헤른후트로중부터 번역하기 시작하여 2022년 로중을 번역하고 있으니 14년 차 로중번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던 중 필자는 헤른후트 형제단으로부터 형제 호칭을 받을 정도로 친근하고 신뢰를 나누는 관계가 되어 몇 번의 방문을 더하게 되었고 3년전 세계 헤른후트형제단 대표단도 한국을 방문하는 관계가 되었다. 그러던 차, 2021년 2월 15일, 한국 헤른후트형제단이 결성이 되어 세계헤른후트형제단과 연대하게 되었다. 이는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자 의미있는 일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개신교의 원뿌리인 헤른후트 형제단이 현재 전 세계 40여개국에 120만여명이 속하여 있는데 우리도 함께 연대하며 소통하는 지류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더욱 의미있는 일은 지난 600여년의 형제단의 역사와 신학을 신학교육 매뉴얼로 출간한 ”헤른후트형제단 보물(Our Moravian Treasures, A Manual of Topics for Theological Education of the Unitas Fratrum)“을 번역하여 한국의 독자들에게 소개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지침서는 세계 헤른후트형제단 신학교육위원회에서 지난 10년간 각고의 성찰을 통해 세상에 내놓은 역작이다.

   
▲ 얀 후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헤른후트 형제단에 관해 약술해 본다. 헤른후트 형제단은 개신교의 가장 오래된 교단 중 하나이다. 현재 헤른후트 형제단 구성원들은 서로 다른 나라들에 살고 있지만, 그들은 600년 전 얀 후스와 15세기 체코의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가 공통의 역사적 기원을 자랑스럽게 나눈다. 1727년 독일 헤른후트에서 친첸도르프 백작(1700-1760)의 지도 아래 오래 전의 체코 전통을 재생한 것은 현대 헤른후트 형제단이 확산되는 출발점이 되었다.

헤른후트 형제단 역사의 첫 시기는 이전의 연합 시대, 초기 형제단인 1457년으로 소급된다. 그 당시 초기 형제단은 그들 자신이 독립적인

   
▲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친첸도르프

그룹으로 구성되었다. 1620년대까지 가톨릭교회 지도부는 체코안의 형제단을 제도적으로 멸절하고자 했다. 초기 형제단은 보헤미아의 후스 혁명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재생을 모토로 태동되었다. 후스 혁명은 프라하 대학의 교수이자 유명한 설교가였던 얀 후스(대략 1373-1415)가 중세 후기 가톨릭 교회의 타락을 비판한 이유로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의 결정으로 순교를 당한 사건이었다. 그의 추종자들은 교회의 개혁을 위해 여러 사안을 요구하였다: 복음은 민중의 언어로 자유로이 선포되어야 한다. 거룩한 성만찬에서는 두 개의 종류(포도주와 빵이 모든 이에게)가 제공되어야 한다. 교회는 사도 시대의 순수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 1457년 체코의 쿤발트에서 시작된 형제단

1457년 초기 형제단은 그레고리 형제(1474년 사망)의 지도 아래 초기의 작은 그룹이 복음의 가르침에 따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다. 그들은 보헤미아 북동부의 작은 시골마을인 쿤발트에서 형제단을 세우고 자신들을 “그리스도 법의 형제단”(fratres legis Christi)으로 불렀다. 형제단은 산상수훈을 그들의 지도원칙으로 삼고 준수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평화로이 훈련하는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며 맹세와 같은 것을 거부하고 군 복무를 거부하였다. 그들은 기존의 법을 어기고 종종 박해를 받으면서 도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1464년, 형제단은 공식적으로 공동체 원칙인 “리크노프 산의 협정서”를 문서화하는데, 이것이 첫 교회 규정이 된다. 몇 년 후, 1467년 형제단은 제도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와 그들 자신의 성직자와 감독을 선출하였다. 그들은 형제단에 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지역에서 함께하고자 하는 이들을 모았다. 하지만 형제단은 항상 소수자로 남아 있었고 전 인구의 5%이상을 넘지 않았다.

헤른후트 형제단 역사의 두 번째 시기는 1722년 헤른후트의 건설과 함께 시작한다. 그해에 모라비아 지역에서 온 몇 가정은 옛 헤른후트 형제단 전통을 지니고 보헤미아지역의 박해를 피해 독일의 니콜라우스 루드비히 친첸도르프 백작의 사유지안에 보호처를 발견한다. 친첸도르프는 재생된 형제단 교회의 고안자로 여겨지고 18세기 종교적 각성운동의 지도자요 중요한 신학자중 하나로 간주된다. 1722년 6월 17일 목수였던 크리스티안 다비드의 도움으로 첫 나무를 베면서 작은 마을이 형성되었다. 그곳에 거주했던 이들은 사도시대의 교회를 본받아 깨어있는 신앙인 공동체를 함께 구축하길 원했다. 그 마을은 “헤른후트(Herrnhut)”라 명명되었는데, 이는 “주님의 지켜보심”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명칭은 공동체가 “주님을 위해 깨어있음”과 동시에 “주님의 보호아래” 이루어가는 신앙을 표현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친첸도르프의 보살핌아래 헤른후트는 모라비아 난민들에게 관심을 끌었고 많은 신앙인들과 종교적인 관심군들이 다른 지역으로부터 유입되었다. 공동체가 커나가면서 거류민간의 차이로 심각한 분쟁도 생기다가 1726년에는 심각한 위기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친첸도르프는 중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친첸도르프는 다니고 있던 직장을 그만두고 헤른후트 공동체의 지도적 역할을 더 하려고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727년 5월, 그는 “형제들의 합의”라는 공동체 규약을 소개하고 공동체로서 그리스도교의 사랑에 기반한 헤른후트 형제단 비전에 대한 윤곽을 밝힌다. 그는 헤른후트 거류민들에게 성서 학습을 고무시키고 중보기도를 권유하였다.

그러던 중 1727년 8월 13일, 베르텔스도르프 루터교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헤른후트 형제단은 깊은 영적인 회심과 화해를 경험한다. 성령의 뜨거운 임재를 통해 그들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배웠다”라고 천명하게 되었다. 이런 이유로 그 날은 새로 재생한 형제단의 영적인 “생일날”로 간주된다. 아무런 황홀하고 특별한 영적인 현시가 없었지만, 그 사건은 “모라비안 성령강림절”로 불리어 왔다. 이러한 새로운 형제단의 의식과 목적으로 헤른후트 형제단 공동체는 국제적인 범주의 복음화와 선교운동으로 확산되어 나갔다.

헤른후트에서의 삶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호혜속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열망으로 가득한 것으로 표현되어졌다. 공동체원들은 서로 “형제”와 “자매”로 명명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조(組)”라고 불리는 작은 단위(band) 안에서 상호간의 교화와 기도를 하기위해 만났다. 친첸도르프는 공동체를 나이와 성 그리고 결혼상태(choir, “단(團)”이라 불리움)에 따라서 목회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나뉘어졌다. 또한 누구나 공동체의 생활을 위하여 특별한 임무나 사업을 수행함으로 기여하도록 되어있었다. 연속기도가 이어졌다. 매일 경건모임이 거행되었는데, 새로운 형태의 예배가 사랑의 축제나 찬양 그리고 세족식의 형식으로 이어졌다. 1728년 친첸도르프는 매일을 위한 “슬로건(표어)”으로서 짧은 성구를 나누어주기 시작했고, 1731년부터 오늘날의 형태인 헤른후트 로중 인쇄본으로 출간되었다.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가 15세기에 시작할 때, 처음에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라는 지역에 국한된 운동이었다. 친첸도르프 백작의 지도로 새로워진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는 세계적인 비전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친첸도르프와 헤른후트 형제들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세상 끝까지 증언하기 위해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인식하였다(마가16:15). 헤른후트 형제단 선교사들이 서인도, 그린란드, 남아프리카 그리고 북미를 여행하면서 그들은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의 공고한 기반을 통해 진정한 국제적인 교단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의 행정부는 여전히 유럽에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지나간 60여 년을 지나오면서 이러한 상황은 분명하게 변했다: 이전의 많은 선교지역은 헤른후트 형제단 연합 지역과 아프리카와 카리브 지역에 사는 헤른후트 형제단 회중교회 관구로 변했다. 이러한 지역의 대표부는 형제단 안의 중요한 지도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현재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의 국제모임은 다양한 여러 지역과 인종적 배경, 문화 그리고 언어 출신의 다채로운 다양성이 존재한다. 탄자니아와 중앙아프리카 주위의 나라들은 열정적인 선교 활동과 성장의 중심부로 등장하였다. 결과적으로, 유럽과 북미의 특별한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의 성격은 다른 것으로 변형되었다.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의 역사는 보통 두 개의 주요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옛 헤른후트 교회와 새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 아마도 이제는 3기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에 대해 생각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즉 3기는 세계적인 발전의 시기로 1957년 시작되었고 여전히 오늘날 진행되고 있다. 21세기 국제적인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는 50개 국가 이상 선교지역과 지구와 함께하는 세계적인 공동체이다.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는 인종적으로, 문화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매우 다양해졌다. 한 지역에서 풍습과 전통은 헤른후트 형제단 정체성의 중요한 표식이다. 게다가, 남반구의 어떤 지역은 구성원 수가 상당히 늘어나고 있고 형제단 내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히 교회의 갱신이 아니라 문화적이고 교회론적인 도약이 ”세계적인 마을“의 현실로 부상하는 것이다.

헤른후트 형제단 교회의 갱신이 세계적인 공동체로 진전되었지만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새로운 종류의 세계화는 재정적인 분배나 조직적인 구조, 지도력과 권위의 주요한 주제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의 그리스도교와 현대 개신교 선교내의 유사한 변화와 상응한다. 그것은 교회안의 행동하는 실천사업과 행동하는 신학 그리고 헤른후트 형제단 교단의 정체성과 형제단 미래의 변화를 내포한다. 이러한 발전은 중요한 도전을 의미하며 형제단으로 하여금 형제단의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선교와 사회 목회 그리고 세계적 상황안에서 형제단 연합과 정의를 위한 그리스도교적 증언을 포함한다.

이 책은 지금 ”헤른후트 형제단“이 무엇을 의미하고 형제단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에 대해 새로운 대화를 찾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형제단 역시 헤른후트 형제단 전통안에서 다시 갱신할 관심사를 알고 있다. 형제단이 앞으로 나아가면서 확실한 사실은 형제단의 ”보물“을 아는 것과 그것들의 영적인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이 책은 명토박는다. 한국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지침서를 통해 그리스도로부터의 부르심에 신실하게 나갈 수 있고 방향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해본다.

 

헤른후트형제단 보물-헤른후트형제단 신학교육 주제별 지침서

번역: 김상기. 홍주민

출판사: 한국디아코니아연구소

구입처: 알라딘, 한국헤른후트형제단(010-6439-2497)

정가: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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