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선포의 다양성과 포괄성

<복음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두란노, 2003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무엇을 논할 때, 정의(定義, definition)하는 방식은 가장 밑바탕이 되기에 이 물음은 피할 수 없다. 이에 나름의 대답을 찾고 이해하고 넘어가려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단순하고 사소한 것이라 해도 쉽게 정의하고 넘어가기에는 석연찮은 것이 남기 때문이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개념을 미처 다 정의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인생이 무엇이고, 사랑이 다 무엇인가? 정의하기도, 증명하기도 쉽지 않은 인생, 사랑이지만 오늘도 우리는 살고 사랑을 하며 노래하고 있다. 그 어느 것도 쉽게 정의할 수도, 그것을 충분히 증명할 수도 없는 말들이다. 멀리서 볼 때 산의 능선은 뚜렷하고 거뜬히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산기슭에 도달해 울창한 나무와 수풀 앞에 서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올라가야 할지 모르겠다. 복음을 듣고 믿었고, 복음을 살았고, 복음을 전하면서 지내온 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데 정작 ‘복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 앞에 서 있는 내가 그렇다.

복음과 그 복된 소식에 대한 바른 이해는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복음을 알지 못하면 복음이 가져다주는 구원의 소망과 실제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며, 올바른 기독교 세계관과 가치관 및 윤리를 정립하지 못하며, 올바른 제자도를 살아가지 못한다. 

신약학자인 저자가 처음 제기하는 문제는 예수가 전한 복음과 사도전승의 복음을 놓고 볼 때 느껴지는 ‘다른 결’이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했는데, 그의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복음을 선포했다. 사도전승의 복음은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별개의 복음인가? 아니다. 어떻게 하나님 나라 선포자가 종말의 구원자가 될 수 있나? 믿음의 주체인가 믿음의 대상인가? 김세윤은 예수의 하나님나라 복음과 사도들의 예수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의 복음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규명하는 형식을 취해 복음이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했다. 먼저 예수가 선포했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고, 그것이 어떻게 사도들이 선포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연결 되는가를 연구하면서 바른 가르침에 대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성경이 말해주는 복음

구약에서 메시야(그리스도)의 복음은 해방의 복음이다. 주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낭독하셨던 해방의 복음(사 61:1-3; 눅 4:18-19)은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은혜의 해를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는 지금 이곳에서 실현 될 비전(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이었다. 

마가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은 무엇인가? 마가가 요약한 예수의 복음(마가복음 1:14-15)은 ‘하나님의 복음으로서 하나님의 구원통치가 임박했다는 기쁜 소식’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온 세상을 다스리심(통치)으로써 이루어 낼 구원의 좋은 소식’이다. 공관복음서들은 이 내용을 공통적으로 강조해왔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무엇인가? 예수의 생애와 선포와 무관하지 않지만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앞선 하나님 구원통치에 강조점을 두기 보다는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의 복음’이었다. 고린도전서 15:1-11에 드러난 바울의 입장을 주목해 볼 때, 사도들이 선포하는 복음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이다. 바울은 이 복음이 자기보다 먼저 사도된 자들로부터 신실하게 받아서 고린도인들에게 그대로 전달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 중에서 고린도전서 15:3하-5의 네 구절은 기독교 최초의 에큐메니칼 신앙고백(신경)이라 말할 수 있다.
 
a.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서 성경대로 죽었다는 것(3절 하)
b.그리고 그가 장사되었다는 것(4절 상)
c.그리고 그가 사흘 만에 성경대로 일으켜졌다는 것(4절 하)
d.그리고 그가 게바에게 나타났다(보였다)는 것(5절)

a와 c구절이 중심이 되고, b와 d구절은 앞선 두 구절의 내용을 확인하는 종속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가 땅에 묻힘으로 확인되고, 그의 부활은 게바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남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그의 부활(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심)에 있다. 여기에 ‘성경대로’라는 말을 덧붙여 이 사건들이 구약 성경의 예언을 성취한 하나님의 구원 사건임을 밝히는 것이다.

특히 죽음과 부활 중에서 죽음이 더 핵심적인 사건이다. 그것이 우리와 연결되어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구원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활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가?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구원한 사건임을 확인하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다. 생명이 없는 상태에서 생명을 일으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1:18-25에서 바울은 복음을 “십자가의 말씀”이라고 정의하고 그것은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지혜요 능력임을 역설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이 복음을 선포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선포하지 않기로 결단했던 것이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에서 복음의 선포자였던 예수는 복음의 주체가 된다.
1) 예수는 우리(죄)를 위해서 죽은 메시아(그리스도)다. - 구약의 성취, 속죄 제사, 새 언약을 세우는 제사
2) 의인이라 선언함(칭의) - 성경에서 바울만 사용하는 구원론의 범주, 법정의 그림 언어. 신분과 수준.
3) 화해시킴 –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 회복을 위해 예수는 십자가에서 화목제사로 드리심
4) 하나님의 아들의 사역 – 권능을 행사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등극, 전권대사
5) 하나님의 통치를 계속 대행 하는 “주” 예수 그리스도 – 의의 최후승리, 하나님의 주권을 행사.
 
요한복음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달려 들어 올려짐은 우리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로서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예수 그리스도가 아들로서 영광 받은 사건으로 설명함으로써(요 17:1-5),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에 그의 부활과 높임 받음을 흡수시킨다.

누가복음은 복음서 중 유일하게 예수의 부활 후 승천하심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가 부활되어 승천하심은 시편 110:1의 예언에 따라 하나님 우편에 높임 받아 하나님의 대권자가 되셨다는 것, 그리스도가 지금 하나님의 구원 통치를 대행하시고 있다는 점에 그의 복음 선포의 초점을 맞춘다. 누가는 사도행전에서 승천하신 주께서 어떻게 그의 교회에 성령을 보내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며, 교회를 통하여, 특히 자신의 땅 위에서의 전권대사들인 사도들을 통하여, 자신이 생전에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했던 치유와 해방의 사역을 계속하는가를 되풀이하여 보여주었다.

히브리서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높임 받음(부활-승천)을 함께 강조하는데,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씻고 우리를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게 한 새 언약의 제사로 자신을 바치신 대제사장 역할을 하셨으며 지금도 하나님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는 대제사장 노릇을 하고 계심을 강조한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 승천 이전과 이후의 복음은 ‘사건’과 이것을 표현한 ‘문자’로 볼 때 다르게 느껴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구원 사건이라는 큰 틀에서 연결된다. 유앙겔리온(euangelion)은 로마인들에게 황제의 등극이나 승전보를 일컫던 용어다. 때문에 이것은 대부분 복수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 어휘를 빌려 쓰되 그 속에 새로운 내용,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사건을 담아 단수로 사용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서 일어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사건, 하나님이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켜 확인한 그 구원의 사건이 진정한 복음이라는 것이다.
 
다양하게 포괄적으로 선포하기

신약 성경에서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산 예수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어떻게 우리로 하여금 아담의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로 회복되게 하고, 그리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한 부요함을 덕입어 살게 하는 하나님의 종말의 구원이 발생했는가를 우리는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라 선포와 그의 대속과 새언약의 제사로서의 죽음과 하나님이 그를 부활시키심을 통하여 우리 피조물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생명(영생)을 얻게 하는 구원이 우리에게 발생하였다. 이것이 복음, 기쁘고 좋은 소식이다.

한국교회는 맘몬, 우상 숭배로 비인간화의 굴레를 벗지 못하는 인류를 향해 세계 선교의 사명을 부여 받은 것이다. 먼저 분단의 현실에서 민족 화해와 통일을 이루고 자유, 정의, 평화를 실현하는 사명이 민족 복음화를 통해 나타나야 한다. 동서와 남북 간의 화해가 이루어지고 모든 사람들의 인권이 존중되며, 사회 경제적 정의가 꽃피는 나라를 실현하는 것이다. 반상의 차별을 철폐하고 남녀평등을 구현해 가고, 시민의 자유와 정의를 드높이는 민주주의를 지향하게 한 역사의 궤적에서 기독교의 역할은 지대하다. 

한국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단순히 내세에서 우리 영혼의 안녕을 보장하는 것 정도로 이해하거나 부유함과 번창의 약속처럼 믿어왔다. 복음을 잘못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폐해는 심각하다. 자유와 생명과 평화로 나타나는 복음이 도리어 억압과 분열, 갈등을 조장하는 집단이기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전히 기복신앙에 빠져 맘몬을 숭배하고 있으며 세상에서의 성공과 권력에 편승하여 도리어 사회적 약자들로부터 등을 돌리기도 한다. 그럴수록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선포가 절실하다.

복음은 결코 1차원적인 것이 아니다. 홑겹이 아니다. 오늘날 교회는 신약성경의 모범을 따라 이 복음을 다양하게 그리고 포괄적으로 선포해야한다. 신약성경의 복음 선포 유형들과 범주들을 편식하지 말고 모두 사용하여 선포할 때, 복음은 건전하고 균형 있는 신앙생활을 유발한다. 삶의 구체성과 적합성을 외면한 채 단순한 투입-산출의 원리로 선포하는 태도는 살아있는 복음을 박제화 시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 성경의 언어로 복음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요한복음 3장 16절을 인용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의 독종자(獨種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저자의 사역)

신현희 목사 (안산나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