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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 육식공포를 뚫고 탄생한 일본식 절충요리 돈가스
임석한  |  skygrac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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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6월 29일 (화) 22:31:50
최종편집 : 2021년 06월 29일 (화) 22:43:33 [조회수 : 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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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유투버에 의해서 남산돈가스 원조논란이 일어났다. 논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92년부터 2011년까지 돈가스를 남산의 대표음식으로까지 키운 원조 남산돈가스집 사장을 건물주가 내보냈다. 2012년부터 건물주는 곧장 돈가스장사를 시작했는데 자신이 내보낸 기존에 원조돈가스집의 간판과 동일한 간판을 사용하면서 2012년이 아닌 1992년부터 영업한 원조인 양 행세하였다. 그래서 진짜 원조가 오랜 시간 피땀 흘려 일군 성과를 빼앗고 수많은 손님들을 속이고 기만해왔다는 것이다. 그 결과 코로나 시기에도 손님들이 줄을 서서 먹는 장사이익은 물론 전국에만 수십 개의 체인점이 있는 프랜차이즈업체로 이득을 보았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 소송을 걸며 거짓말을 지속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타인의 상호를 그대로 가져다가 쓰는 이런 행위는 ‘부정경쟁방지법’상 금지행위로 영업을 취소시킬 수 있지만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원조 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참 속상한 일이다. 오늘은 돈가스 이야기를 해보자.

돈가스는 돼지 돈(豚)자에 커틀릿(cutlet)의 일본식 발음인 ‘가쓰레스“를 ’가스‘로 줄여 탄생한 단어이다. 커틀릿은 송아지나 양의 갈비살에 소금과 후추를 뿌린 후 밀가루, 계란노른자, 빵가루를 입혀 프라이펜에서 버터로 구운 요리를 말한다. 즉 ‘돈가스’는 유럽의 ‘커틀릿’이 일본으로 들어와 변형되어 탄생한 음식이다.

그렇다면 커틀릿이란 요리가 어떻게 일본에서 돈가스라는 음식으로 변화된 것일까? 이 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은 메이지 천황(1852-1912)이다. 메이지 천황은 1868년부터 메이지유신을 통해 막부체제를 해체하고 왕정복고를 통한 중앙 통일 권력 확립에 이르는 광범위한 변혁과정을 시작했다. 일본의 경제 발전을 위해 개국 정책을 펼쳐 나라의 문을 열었고 서구의 여러 나라들을 따라잡기 위해 근대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천황을 비롯한 지도자들에게 가장 큰 고민거리가 있었는데 그것은 서양인에 비해 현저하게 왜소한 일본인의 체격과 그로 인해 파생되는 서양인에 대한 열등감이었다. 그래서 일본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논의해야만 했고 그 결과로 1872년 1월에 과거 7세기 후반 일본의 덴무천황 때부터 1200년동안 이어져 오던 육식금지를 공식적으로 해제하기로 결정하고 서양요리를 온 나라에 장려한다. 일본인들은 무려 1200년 만에 육류섭취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정부의 바람과는 다르게 일본국민들은 육고기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내비쳤다. 그도 그럴 것이 유태인들이 돼지고기를 율법에서 부정한 음식으로 여겨 경멸했던 것처럼 일본은 모든 육고기를 1200년 동안이나 불결하고 부정하다고 기피해왔기에 하루아침에 고기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이다. 1200년 동안 일본인들은 공개적으로 고기를 먹지 못하였으며 오랫동안 고기를 먹으면 몸도 마음도 옷도 집도 부정을 타게 되며 또한 다른 사람 앞에 나설 수도 없게 되고 엄벌에 처해지기까지 한다고 철저히 교육 받아 왔기에 일본인들의 전반적인 식문화는 ‘해산물’과 ‘채소’를 중심으로 발달된 상태였다.  

하지만 계속된 정부와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육식 장려 정책과 함께 결정적으로 여러 가지 재료와 양념에 소고기를 추가해 만드는 일본 특유의 소고기전골의 조리법이 탄생하면서 비로소 일반 국민들도 조심스럽게 육식을 접하기 시작했다. 한편 소고기 전골의 유행으로 사람들이 점차 고기 맛을 알게 되면서 일본 내 육식에 대한 저항감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러던 중 1929년 드디어 서양의 “커틀릿‘을 흡수해 일본만의 독특한 스타일로 재창조한 음식이 등장하기에 이르는데 그 음식이 바로 ”돈가스“였다. 돈가스의 등장은 곧 ”돈가스의 시대“로 이어졌다. 육식금지가 해제되고 장장 60년의 노력 끝에 완성된 이 ”결과물“은 마침내 이제 모든 일본인들이 거부감 없이 육식을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육식금지가 해제된 지 60년 만에 탄생한 돈가스는 서양의 커틀릿과 무엇이 다를까? 첫째, 주로 소고기나 양고기를 사용하는 커틀릿과는 다르게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둘째 그 돼지고기는 두꺼운 돼지고기를 사용하는 점이다. 지금의 일본식 돈가스는 1929년 도쿄 우에노(上野) 오카치마치(御徒町)에에 있는 폰치켄(ぽんち軒)에서 시마다 신지로(島田信二郞)가 처음 팔기 시작했는데 그는 고기를 속까지 잘 익히기 위해 독특한 가열조리법을 고안해 내었기에 돼지고기의 두께가 2.5-3cm로 두꺼워질 수 있었다. 셋째 고기요리에는 익힌 채소를 내는 커틀릿과는 달리 생양배추채를 사용하는 것이다. 넷째 서양의 식사법인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먹기 위해 미리 썰어져 나온다는 것이다. 다섯째, 유럽식의 고운 빵가루가 아닌 일본식의 입자가 큰 빵가루를 사용하는 것이다. 여섯째 기름을 두르고 부치는 것이 아니라 기름 속에 넣고 튀기는 방식이다. 일곱째 밥과 같이 먹을 수 있는 일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여덟째 간장을 활용한 일본식 우스터소스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일본인들은 60년이라는 시간동안 커틀릿이라는 서양음식을 자신들의 입맛에 맞도록, 그리고 먹기 편하도록 변화시키고 또 변화시켜 현재는 대표적인 일본 음식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식 돈가스전문점이 많이 생겼지만 대부분은 소위 경양식 돈가스를 자주 접하게 된다. 그 이유가 있다. 돈가스는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 들어왔는데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에서도 돈가스라는 음식이 과도기에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20세기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일본의 돈가스는 완전한 일식이 아닌 서양식을 간소화한 경양식의 돈가스가 아직 남아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고기의 두께가 얇고 젓가락이 아닌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했던 그 시기의 경양식 돈가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훗날 일본에서의 돈가스는 완전한 일식으로 변하게 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해방직후에 ‘돈가스는 서양음식이다’라는 인식으로 인해 특별한 일이 있을 때에 먹을 수 있는 고급음식으로 인식된 것이다. 물론 지금은 냉동식품의 발달로 인해 분식집에서도 돈가스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혹시 남산에 갈 일이 있으면 진짜 원조 남산돈가스집은 소파로 101번지가 아닌 23번지에 있다고 하니 진짜 원조 집을 방문해 보길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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