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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이야기 속으로
김기석  |  vorblick@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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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6월 25일 (금) 00:03:57 [조회수 : 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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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감한 질문 앞에 설 때가 많다. 그런 질문은 학교 시험과는 달리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했던 햄릿의 질문 같은 것이 그러하다. 시간 속에서 바장이는 인간의 삶은 모호하기 이를 데 없다. 지름길이라 여기며 걷던 길이 느닷없이 뚝 끊기기도 한다. 길이 막혔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예기치 않은 길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선한 뜻으로 행했던 일이 나쁜 결과를 낳기도 하고, 불행의 전조인 줄 알았던 일이 행운의 서막이 되기도 한다. 새옹지마 이야기는 삶의 그러한 모호성을 오롯이 반영하고 있다. 

모호함을 견딜 수 없는 이들일수록 확고하고 단정적인 답을 제시하는 이들에게 매력을 느낀다. 회의의 여지조차 남기지 않고 단호하게 답을 제시하는 사람을 카리스마적 지도자로 상찬하며 추종하는 이들이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이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특정한 사람을 숭배에 가까운 감정으로 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모든 사람은 오류의 가능성을 품고 산다. 무오류에 대한 신념은 교조주의를 낳을 뿐이다. 세상에는 다름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차이를 무질서와 혼돈으로 보기에, 차이가 해소되지 않으면 불편해한다. 과도한 자기 확신에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폭력적이다. 정신의 무르익음은 차이를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시인 김승희는 ‘신의 연습장 위에’라는 시에서 삶의 모호함을 아프게 고백한다. “신이 쓰다버린 모호한 문장처럼/영원히 결론에 이르지/못하는/나는 하나의 물음표“. 답하기 어렵지만 삶은 결국 선택이다. 그 갈림길 앞에서 느끼는 혼란스러움 때문에 시인은 자신을 “더디 지워지는…울음표“로 소개한다. 물음표와 울음표 사이에 인생이 있다. 머뭇거리면서도 어차피 하나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 인생이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 앞에 설 때마다 꽤 긴 세월을 살았으면서도 삶에 대한 이해의 깊이에 이르지 못한 나의 부족함을 절감한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상대방을 골탕 먹이거나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삶의 과정 중에 비롯된 진실한 질문이라면 굳이 정답을 찾아 제시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대답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일단 질문자가 느끼는 당혹스러움에 깊이 공감하고, 그런 동일한 질문 앞에서 ‘나는 이런 선택을 했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청년들이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촘촘하게 직조된 사회의 그물망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사람보다는 그 속에서 포획된 것처럼 옴쭉달싹 못하는 이들이 더 많다. 그 그물망을 찢을 엄두를 내지는 못하기에 비애감은 더욱 깊어간다. 기성 세대가 만들어 놓은 문법 구조 속에 갇혀 살지 말고, 새로운 문법을 만들라는 말은 옳은 말처럼 들리지만 그들이 처한 질곡을 반영하지 못한다. 이런 현실 속에서 신앙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그저 상처를 다독거리고,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격려하면 그만인가? 성경은 인간의 죄와 욕망 위에 세워진 주류 질서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이 빚어낸 대안적 흐름을 일관되게 보여준다. 출애굽 사건은 계층의 사다리 맨 아랫단을 형성하는 사람들을 소모품처럼 취급하는 제국의 질서를 전복하며 시작되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지중해를 내해로 거느린 군사대국 로마제국에 맞서는 하나님 나라 운동과 연결시킬 때만 그 의미가 오롯이 드러난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길들이려 한다. 그 체제 안에 머물 때 우리 영혼은 납작해진다. 비루한 일상 속에 허덕이는 동안 우리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은 가뭇없이 사라지고, 살아 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남는다. 분주함 속에서 바스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잃어버린 높이와 깊이의 차원을 되찾아야 한다. 세상의 평가와 무관하게 우리 삶이 무한히 소중하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삶의 저자이지만, 우리가 써가는 삶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은결든 마음에 하늘빛이 스며든다. 모호함을 받아들이는 용기와 더불어 그분의 역사가 시작된다.

(2021/06/09, 국민일보 '김기석의 빛 속으로'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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