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도시가 봉쇄되었다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우한 생존기>, 궈징 지음, 우디 옮김, 원더박스, 2020

“1월 23일, 우한이 봉쇄되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아는 사람이 없었다.”
- 프롤로그 중

봉쇄. 아직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상의 많은 것들이 변화했지만, 이제껏 내가 살던 서울에서는 봉쇄에 가까운 조치가 내려진 적이 없었고 비교적 자유로이 왕래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나는 한 달여 전쯤 라오스라는 나라에 오게 되면서 처음으로 지정된 호텔에서 자가격리를 했다. 무거운 위치추적기를 팔에 달아야 했고, 제공되는 식사만 할 수 있으며, 외부인과의 접촉이 금지된 격리자 신분이었지만, 나는 이 시간을 잘 보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14일만 잘 버티면 ‘자가격리 해제’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봉쇄는 그렇지 않다. 갑작스러운 도시 봉쇄는 외부 세계와의 급격한 단절을 가져왔다. 어느 누구도 이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알지 못하며,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질문해도 답해주는 곳이 없고, 얼마나 버티면 이 상황이 종료되고 봉쇄가 해제되는지 아는 사람은 더더욱 없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첫 도시 봉쇄를 경험하게 된 우한의 시민들은 손과 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지 않을 뿐, 내 신체의 이동이 타인의 결정에 의해 갑자기 통제되는 경험을 준비 없이 마주해야 했다. 

책의 저자인 궈징은 중국 광저우에서 거주하다가 2019년 11월 우한으로 이사했다. 우한에서 원인불명의 폐렴이 퍼지고 있다는 소식이 12월 말 즈음부터 한국 뉴스에도 나왔던 것 같다.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급격히 확산되었고 결국 2020년 1월 23일, 우한은 봉쇄된다. 저자는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는 사람도 없고 낯선 도시에 갇혀버린 셈이다. “‘내가 왜 이런 일을 겪고 있을까?’ 이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얼른 멈춰 버렸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별로 좋은 징조는 아니니까. 덮어놓고 의심의 눈초리로만 삶을 바라보면 무력감만 늘어날 뿐이다. 정말 어렵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더 중요한 건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1월 25일 일기 중)

그래서 저자는 자신이 마주하게 된 상황을 기록하기로 하고, 날마다의 기록을 개인 SNS에 올리기 시작한다. 그는 매일 성실하게 자신이 느끼는 감정, 어디선가 들려온 불확실한 정보, 오늘 먹은 음식과 바깥의 날씨, 봉쇄가 지속될수록 변해가는 도시의 풍경 등을 기록했다. 물리적 상황과 언론의 정보가 통제된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그의 일기를 보며 공감하고 댓글을 통해 소통하기도 했다. 개인 SNS에 올리는 일기의 조회수가 총 200만회에 달했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소통과 정보에 목말라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저자는 매일 밤 페미니스트 친구들과의 영상통화를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현 상황에서 가능한 활동을 조직해내기도 하며, 외출 불가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가능한 한 매일 집 밖에 나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것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타인과의 연결을 모색했다. “정보가 봉쇄된 상황에서 진짜 정보를 찾고, 격리된 와중에 타인과의 연결을 모색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어떤 확실성을 찾아가려는 것이다.”(2월 3일 일기 중)

이 책은 3월 1일자 일기로 끝을 맺지만 저자는 그 이후로도 계속 일기를 써 나갔다. 그 이후 저자 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모두 낯선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2020년을 살아온 모두가, 정도는 다르지만 타인과의 접촉을 금하는 봉쇄 상황과 그로 인한 고립을 마주하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편 사람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모두 다른 만큼, 팬데믹 시대에 각자가 처한 위험 상황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우한에 고립되어 있었던 우한 시민들을 대표하지 않으며, 그 중 한 사람이 경험한 아주 개인적인 기록이다. 그리고 이 일기에 덧붙여 많은 이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을 짧은 기록으로 남겼다. 집단으로 통제되는 것이 쉽게 용납되는 이런 상황일수록 개별적인 목소리의 기록은 중요하다. 각자의 공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기록되지 않는다면 재난 이후 시스템을 세운다고 했을 때 우리는 무엇을 기준삼을 것인가. 

2020년 중반에는 ‘코로나 이후’에 대한 논의들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는데 근래에는 그런 주제가 잘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타인과의 접촉이 터부시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신세계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를 논하기 전에, ‘지금’ 각자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지금 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타인과의 연결을 모색하고 그것을 통해 확실성을 찾아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기록한다는 것에 큰 책임을 느꼈다.’고 하면서 일기를 적어내려간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이 시기에 내가 느낀 바를 일기로 기록한 게 정말 다행이다 싶다. 모든 상황을 마주해야만 한다. 내 느낌을 말로 내뱉는 게 첫걸음이고, 그 다음으로 봉쇄 과정에서 경험한 일들을, 그 강렬한 느낌을 이해해보려고 한다.” (2월 21일 일기 중)

정유은 목사 (꿈이있는교회, 라오스평화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