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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증한 에바의 비참한 최후” 스가랴5장 5절~11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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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6월 13일 (일) 21:04:17 [조회수 :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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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증한 에바의 비참한 최후” 스가랴5장 5절~11절

 

1. 에바 속에 한 여인

 

① (5절~6절) “내게 말하던 천사가 나아와서 내게 이르되 너는 눈을 들어 나오는 이것이 무엇인가 보라 하기로 내가 묻되 이것이 무엇이니이까 그가 가로되 나오는 이것이 에바니라 또 가로되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 여섯 번째 묵시인 ‘날아가는 두루마리’에 이어진 일곱 번째 묵시는 ‘에바 가운데 앉은 한 여인’이다. 매우 난해한 이 묵시가 전하는 본래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스가랴의 여덟 개의 묵시를 전체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첫 번째에서 다섯 번째의 묵시가 열매 맺는 나뭇가지들에 대한 축복이라면 여섯 번째에서 여덟 번째 까지는 열매 맺지 않는 나뭇가지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의 검처럼 축복과 저주가 임한다. (사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축복과 저주를 가르는 기준은 준행(순종) 여부에 달려 있다.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여기서 적시하고 있는 ‘그들은’ 성전재건의 명령을 준행하지 않고 거역한 이들을 가리킨다.

▶ ‘이것이 에바니라’ 성경에 나오는 ‘에바’는 곡식의 양을 측량하는 용기인데 약 22리터를 나타내는 도량형이다. ‘에바’는 영어로 ‘버킷(bucket)’인데 일명 ‘빠께스(buckets)’로 불리는 ‘양동이’다. 버킷은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기록한 ‘버킷리스트(bucket list)’라는 단어로 유명하다. 버킷은 죽음을 의미하는 ‘kick the bucket’에서 부정적인 속어에서 유래되었다. ‘에바’도 성경에서 (암8:5) ‘에바를 작게 세겔을 크게 거짓저울로 속이며’ (미6:10) ‘축소시킨 에바, 부정한 저울, 거짓 저울추’ 등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온 땅에서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라’ 온 땅에서 그들의 모습이 ‘가증한 에바’와 같다는 뜻이다. 함량미달로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신 까닭은 ‘도량형(기준, 모델)’을 삼으셨는데 그 사명(부르심, 택하심)을 잃어버린 것이다. ‘에바’는 ‘에바’인데 ‘불의한 에바’로 전락하고 말았다. ‘소금’은 ‘소금’인데 ‘맛을 잃은 소금’이 된 것이다.‘포도나무가지’인데 나무에 연결되지 않아서 아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버려진 나뭇가지가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인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지 않는 무늬만 그리스도인과 같다. 직분(목사, 장로, 집사, 권사, 집사)은 맡았는데 직분에 합당하지 못한 모습이다.

 

③ (7절~8절) “이 에바 가운데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하는 동시에 둥근 납 한 조각이 들리더라.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하고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납 조각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 ‘이 에바 가운데 한 여인이 앉았느니라’, ‘그가 가로되 이는 악이라’ 죄악을 여인으로 의인화한다. 이는 이스라엘이 저지른 죄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유비(類推, analogy)’다. ‘아날로지’는 생소한 개념이나 난해한 어떤 주제를 설명할 때, 그 개념이나 주제와 속성이 같은 대상을 비교해서 친숙하고 단순한 어떤 개념으로 묘사하는 수사법이다. 남편 호세아와 부정한 아내 고멜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의 관계를 비교해서 설명해 주는 대표적인 아날로지다. (호1:2)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라’, (호1: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곡식과 열매를 담아야할 에바 속에 행음한 여인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에바 속에 ‘악(惡)’이 가득 차 있다는 의미다. 이는 이스라엘의 행음 곧 가증한 우상숭배의 죄악을 나타내는 아날로지다.

▶ 곡식과 열매를 담아야할 ‘에바’ 속에 죄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은, 본래적인 역할을 망각하고 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한마디로 불의하고 부정확한 ‘에바’가 된 것이다. 맛을 잃은 소금이 된 것이다. 열매 없는 포도나무가지가 된 것이다. (롬7:10~21)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사도바울은 율법이 본래 선한 것이지만 죄가 기회를 타서 율법을 오염시켰다고 고발한다. 에바는 본래 정확하게 분량(分量)을 측정하는 도구인데 정량을 계측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성전은 본래 거룩한 것이지만 그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강도의 굴혈로 변질되어 거룩함을 상실한 것이다.

▶ ‘둥근 납 한 조각’은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가리킨다. ‘그 여인을 에바 속으로 던져 넣고’, ‘그 여인을 에바 아구리 위에 던져 덮더라’ 한 문장에 ‘던져’라는 단어를 두 번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던지다’(히브리어 솰라크)는 ‘버리다. 멸하다. 폐기처분하다’는 뜻이다. (왕상9:7)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하나님께서 타락한 솔로몬의 성전을 던져 버리셨다. (요15: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눅12:5)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닌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심판이 대상에 주목해야 한다. 에바는 에바인데, ‘불의한 에바’다. 소금은 소금인데, ‘맛을 잃은 소금’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본래적인 기능과 목적을 상실한 측량 도구를 밀폐해서 용도폐기하시고, 밀봉해서 폐기처분하신다. 계속 행할수록 죄를 더 짖게 되는 까닭이다. 개인의 삶에서도 동일하다. 본래적인 목적을 상실한 이들의 비극적인 운명이다.

 

 

2. 악인의 길, 의인의 길

 

① (9절) “내가 또 눈을 들어 본즉 두 여인이 나왔는데 학의 날개 같은 날개가 있고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그들이 그 에바를 천지 사이에 들었기로”

▶ ‘두 여인’은 또 다른 악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앗수르와 바벨론이나 헬라와 로마라는 해석에 일리는 있으나 충분하지 않다. ‘두 여인’은 타락을 부추기고 촉진시켜서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는 모든 대적을 가리킨다. ‘학의 날개 같은 날개’ 날개가 있다고 다 천사가 아니다. 십자가가 교회를 상징하지만 십자가가 달려있다고 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아니다.

(고전11:13~15)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 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두 여인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묵시가 전해진 시대적인 정황을 살펴야 한다. 성전재건이 16년 동안 지연되고 중단 되었다는 사실이다. 성전재건에 쓰임 받은 이들(스룹바벨, 여호수아, 학개, 스가랴, 에스라, 느헤미야)있는 반면에 성전재건을 방해한 이들이 있었다. ‘두 여인’은 느헤미야서에 등장하는 성전재건을 훼방했던 ‘산발랏과 도비아’와 같은 거짓 지도자들을 적시한다. (딤전1: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 (마23:13~15)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도다’

▶ 이 묵시에 기록된 ‘두 여인’의 정체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붓거나 부채질 하는 것처럼 죄악을 촉발시키는 촉매제와 같은 악한 대적들을 가리킨다. ‘그 날개에 바람이 있더라!’ 속이 꽉 찬 알곡인지 겉만 번듯한 쭉정이인지 바람을 불어보면 안다. 바람이 불면 쭉정이는 날라 가고 알곡은 남는다. 모래위에 지은 집인지 반석위에 지은 집인지 ‘비가오고 창수가 나는 날’에 숨은 진가가 드러난다. 솔로몬의 재판에서 진짜 어머니와 가짜 어머니가 판가름한 순간이, ‘아기의 배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드러난 것과 같다.

 

② (10절~11절) “내가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묻되 그들이 에바를 어디로 옮겨 가나이까 하매내게 이르되 그들이 시날 땅으로 가서 그를 위하여 집을 지으려함이니라 준공되면 그가 제 처소에 머물게 되리라 하더라”

▶ 불의한 에바의 최종목적지는 ‘시날 땅’이다. 창세기11장 바벨탑을 지은 장소다. (창11:2~4)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여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바벨탑은 특정한 지역이나 공간이 아니라 스스로 높은 탑을 쌓아 하나님 자리까지 닿게 하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의 죄악을 가리킨다. 죄악의 결과는 ‘흩어짐(디아스포라)’이었다. 말씀대로 준행하는 의의 열매는 생명이지만 욕심에 이끌려 사는 죄의 삯은 어김없이 사망으로 귀결된다. 의인들에게 예비 된 처소는 아버지의 품(천국)이지만 죄인들에게 예비 된 처소는 감옥(지옥)이다. 난해한 스가랴의 묵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시편1편 말씀을 통해 그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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