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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찍어서 던지시리라!” 스가랴5장 1절~4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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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6월 06일 (일) 20:45:22
최종편집 : 2021년 06월 06일 (일) 20:46:50 [조회수 : 1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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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찍어서 던지시리라!” 스가랴5장 1절~4절

 

1. 날아가는 두루마리

 

(1절) “내가 다시 눈을 든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

 

① 3장의 네 번째 묵시(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와 4장의 다섯 번째 묵시(순금등대와 두 감람나무)는, 묵시의 모양은 다르지만 결론이 '나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묵시들이 동일하게 전하는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성전’이다. 성전재건은 단순히 종교건축물을 짖는 재건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의 척도(尺度)다. 말씀대로 ‘준행’할 때 ‘동행’하심을 나타내는 표적(標的,sign)이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삶의 열매(결과물)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청종하고, 말씀대로 준행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과 공동체를 의미한다. 이것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본질이다.

 

② 둘째는 ‘열매 맺는 방법’이다. 등대가 스스로 빛을 발하지 못하듯 나무 가지도 열매를 맺으려면 반드시 줄기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한다. 열매 맺는 비결은 ‘연결되어 붙어있어야’한다. 연결되어 붙어있다는 것은 ‘청종과 준행’을 뜻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이유는 원줄기에 연결되지 않은 가지와 같은 처지인 탓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떨어진 나뭇가지들’이 모여서 스스로 열매를 맺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이다. 삶에서 풍성한 열매 맺지 못하는 이유도 동일하다.

 

③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 5장의 여섯 번째 묵시인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한 가지 더 중요한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다. ‘두루마리’가 무엇인지 2절에서 분명하게 밝힌다.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다. 두루마리의 정체를 요한계시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계5: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이 책과 일곱 인을 떼시더라’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한 책이다. 봉인을 떼는 권세를 부여받은 어린 양에 의해 일곱 재앙이 세상에 임한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한마디로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들’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다. ‘말씀대로 준행하는 삶의 척도’인 성전재건을 훼방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저주다. 원줄기에 붙어있지 않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 가지를 아낌없이 찍어서 던지실 것을 예고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아서 성령 충만을 누리지 못하는 모든 교회(성도)의 피할 수 없는 슬픈 운명이다. 솔로몬 성전의 멸망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해서 하나님의 임재(동행)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스룹바벨 성전을 다시 재건하게 하시는 까닭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해서 하나님의 임재(동행)를 회복하게 하시기 위함이다.

 

 

2. 양날의 검과 같은 축복과 저주의 말씀

 

(2절~3절)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 무릇 도적질 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 ”

 

① ‘네가 무엇을 보느냐’ 스가랴는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보고 있다. 3장과 4장의 묵시가 위로와 격려, 회복과 구원, 준행과 축복이라면 5장과 6장은 준행하지 않고 거역하는 자들에게 임하는 심판과 저주다.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은유(metaphor, 隱喩)다. 하나님의 말씀은 양날의 검처럼 준행하면 축복이지만 거역하면 저주다. (사1:19)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축복만 주시지 않고 저주도 내리시는 분이다. (신28: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신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회복과 구원만 아니라 징계와 심판도 내리신다.

 

② 두루마리가 ‘날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속히 임하실 것을 가맄킨다. 길이가 9m, 너비가 4.5m에 달하는 거대한 대형 두루마리에 ‘이 편과 저 편에’ 앞뒤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크게 기록되었다는 것은 누구도 핑계치 못할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분명하다. 누누이 반복해서 강조하셨기에 누구나 명료하게 알 수 있다. 준행하지 않는 이유는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준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③ (삼하7:14~15)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저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폐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 같이 그에게서는 빼앗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도 은혜와 사랑이다. 하나님이 매를 드실 때 피하지 말고 매를 달게 맞아야 한다. 회개할 기회를 주실 때 빨리 회개하는 것이 지혜다. 징계를 받고 돌이킬 수 있다면 고난도 유익이 된다. 매를 맞고서라도 깨달으면 다행인데 완고함과 완악함으로 돌이키지 않는다. 최후의 심판으로 멸망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회개치 않기 때문이다.

 

 

3. 무릇 도적질 하는 자, 무릇 맹세하는 자의 정체

 

(4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셨느니라”

 

① ‘내가 이것을 발하였나니’ 심판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재앙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다.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 하시느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방법은 두 가지다. 축복의 본보기와 저주의 본보기다. (신28:45~46)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고 네게 명하신 그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너를 따르고 네게 미쳐서 필경 너를 멸하리니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적과 감계가 되리라’

 

② 심판의 대상자를 둘로 적시한다. ‘무릇 도적질 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 말씀을 ‘도적질’은 이웃과의 관계에서 저지른 죄를 가리키고,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저지른 죄를 가리킨다고 간단하게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더 깊은 메시지가 있다. 스가랴의 묵시는 ‘성전재건’이라는 상황에서 선포된 예언이다. 따라서 이는 ‘말씀대로 준행하지 않는 삶’에 대한 심판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 두루마리의 규격이 솔로몬 성전의 낭실(왕상6:2~3)과 그 크기가 일치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두루마리의 묵시가 성전과 관련된 말씀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무릇 도적질 하는 자’는 단순히 이웃의 것을 훔치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 곧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벌어진 도적질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행위에 대해서 이어지는 말라기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말2:8~9)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십일조의 정신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 모든 삶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고백에 있다. 이 사실을 망각하는 것이 ‘도적질’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잊어버리는 것이 도적질이다. 성전재건이 중단된 이유는 ‘하나님의 소유와 은혜를 망각한 도적질’ 때문이다. 포로에서 구속하시고 물질과 재능, 은사와 직분을 맡기신 목적을 상실한 것이다.

 

③ ‘무릇 맹세하는 자’는 누구인가? 원어를 살피면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다. 망령된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오만불손한 말이다. (말2:13)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 도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말은 ‘신성모독’이다.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판단하고 단언하는 헛된 말이다. ‘성전재건은 절대 불가능하다!’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 앞에서 멋대로 호언장담하는 맹세(판단)는 삶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모독하는 죄다.

④ 또한 망령된 맹세는 하나님 앞에서 맹세(서원)한 것을 갚지 않는 죄다.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19:12)’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민30:2)’,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 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신23:21)’,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5:33~37)’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말씀으로 기적을 베푸시듯 하나님의 역사는 ‘말씀으로’ 성취하신다. 사단은 ‘말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일을 훼방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마12:36~37)’ 난해한 이 묵시의 결론은 의외로 단순하고 명료하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할 때 동행하시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할 때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함을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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