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우리에게 필수적이다. 공간적으로 나를 이어주고 내가 가고자 하는 곳을 연결하는 통로며 출구다. 길은 홀로 있을 때나 여럿이 조직을 이루어 살 때도 필요하다. 아예 갇혀 살거나 면벽 수도하는 수도자에게 일시적으로 길이 필요 없을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길과 이어져 있다. 길은 인간이 두 사람 사이의 관계이듯이 사람간의 소통과 연계의 상징이며 이마주다. 길은 물리적으로 육상, 해상, 항공의 길이 있고 오늘날에는 지하와 우주의 길이 관심을 끌고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 체험 가능한 실제(off line)의 길과 가상(virtual reality/on line)의 길이 존재한다. 가상의 길도 그 특성에 따라 증강현실(AR), 혼합현실(MR) 등 다양하게 확장된다.

이런 공간적인 길과 더불어 우리의 어린 시절인 유아와 유년의 길과 소년과 청장년의 길과 노년의 길이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길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 속에 존재하는 길과 꿈과 상상의 길이 있다. 상상 저 너머의 무변광대한 길도 있으리라. 그리고 모든 만상이 가야 하는 길이 있다. 자연의 이법에 따라 생겨나고 성장하고 꽃피고, 꽃지고, 열매 맺고 그리고 흙으로 돌아가는 생사의 길이 있다. 별과 해와 달의 길이 있고, 그 긴 생성과 변화와 생멸의 길이 있다.

우리가 체험한 현상의 길도 다양하며, 많은 사람들이 길을 찾고 길 위를 걷고 있다, 오늘날 산과 들에, 바닷가에 길은 걷는 많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평탄한 길이 있고 가파른 길이 있고, 광야와 사막의 길이 있는가 하면, 맑은 시내가 같이 달리는 길과 푸른 들판이 넓게 펼쳐진 초원의 길도 있다. 육지의 길이 있고 바닷길과 하늘의 길도 있다.

길은 우리에게 일과 삶을 영위하는 기초로서 의미를 갖는다. 출퇴근 하는 길은 우리 삶의 기본을 창출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기능을 갖는다. 우리는 길에서 또는 길과 연계하여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다양한 사람과 일을 만나고 해결한다.

오늘 날 우리 삶의 주변 도처에서 지역 특성을 살린 다양한 둘레 길을 소개하고 걷고 있다. 시골 들길이나 야트막한 산을 돌아오는 둘레 길은 우리의 지친 삶을 쉬게 하고, 가까운 자연과 만나게 하며 계절과 들의 꽃과 풀과 나무들을 보고 마음의 위안을 찾게 한다. 이 때 길은 나무와 꽃과 풀과 그리고 숲을 만나게 되며 우리는 편안한 마음과 쉼을 갖게 된다. 자연이 주는 깊은 호흡과 산소나 피톤치트 등 생물학적 요소들을 제공받게 된다. 숲에는 작은 오솔길이 있고 시냇물이 흐르고 때론 소담한 호수와 웅덩이를 이루기도 한다.

길은 길로만 이어 질 때 힘들고 피곤해 지게 된다. 긴 사막의 길이나 거친 황야의 들길은 사람을 지치고 힘들고 때론 쓰러지게 한다. 나무에 기대거나 나무 그늘에 쉬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여러 나무들이 모여 군락을 이루고 숲을 이루면 더욱 좋을 것이다. 나무와 숲에는 쉼이 있다. 자연과의 느낌이 있고 시간과 계절과의 교감이 있다. 길이 걷고 달리는 것이 주요 기능이라면 숲은 쉼과 머무름이 주요 기능이다. 길이 행동하고 결정하는 것이라면 숲은 묵상하고 침잠하는 것이리라.

‘길’이라 하면 우리는 먼저 영화 두 편을 떠오르게 된다. 이탈리아의 '길(La Strada)'과 미국영화 '마이웨이(My Way)'다. 길(La Strada)은 페데리코 펠리니가 감독한 1954년의 오랜 영화로 청순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젤소미나란 소녀와 우직하고 무심한 차력사 잠파노가 길 위에서 펼치는 방랑과 사랑의 이야기이다. 고독한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정작 서로의 중요성을 모르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젤소미나가 사라진 후에야 그녀의 중요성을 깨닫고 슬퍼하는 잠파노의 연기가 오래 살아있다. ‘마이웨이’도 오래된 영화이나 당대를 풍미했던 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자기방식대로 끝까지 달리기를 완주한 사람의 이야기로 프랭크 시나트라의 "나는 그것을 내 방식으로 해냈어!(I did it my way!)" 라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귓가에 쟁쟁하던 기억이 있다. 이들 영화는 길을 걷는 자와 동행자에 대한 깊은 성찰과 함축성을 제시한다.

숲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숲은 주제로 한 많은 영화, 문학 작품이 있고 동시에 숲을 배경으로 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다. 숲은 안식과 쉼의 상징이다. 숲은 동시에 깊은 무의식과 같이 기피, 두려움, 어두움과 같은 이마주가 상존한다. 따라서 숲은 길과 이어지고 서로 소통하고 연계되어야 한다. 길과 숲이 홀로 독주(獨走)하는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길과 숲은 우리의 삶에서 상호 보완적이며 공존하고 서로 보듬어주고 부족한 부분이나 넘치는 부분을 균형과 조화로 이끌어야 한다. 길과 숲은 우리의 중요한 삶의 기반이고 핵심 요인이며 우리의 삶의 균형의 상징이다.

산정에 이르는 길은 많을 수 있다. 길은 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다. 길은 우리가 걷는 공간 자체이며 목표에 이르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길에는 반드시 나무와 숲의 공간이 필요하며, 동시에 숲에도 작은 오솔길과 그것과 이어진 다양한 길이 있어야 한다.

오늘도 우리는 길은 간다. 도시길, 시골길을 그리고 바닷길과 하늘 길과 우주 길을 간다. 가상의 길과 상상의 길을 열심히 달려간다. 길 옆에서 또는 길 위에서 우리는 나무와 숲을 만난다. 시내와 호수길, 바다 길을 걸으며 일하고, 나무와 숲에서 쉬며, 꿈꾸며 사랑하며 우리는 또 오늘 하루를 살아간다. 길과 숲은 상호 필수적이며 보완적이다.

성경에도 일하며 쉼은 갖는 것이 창조의 기본 원리임을 말씀하신다. “...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출 31:17)

김홍섭 장로(인천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