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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도 예쁘게 피어나는 꽃은 막지 못했습니다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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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6월 01일 (화) 13:49:32
최종편집 : 2021년 08월 16일 (월) 16:49:56 [조회수 : 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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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온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의 입에 마스크를 씌우고 발에는 차꼬까지 채워 놓았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의 활동은 현저하게 둔화되고 경제상태는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 두렵기까지 한 바이러스에 비교적 잘 대처하고 있다고 하는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피로감이 쌓여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이라고나 할까, 쌓인 눈 위에 서리까지 내리(雪上加霜)지는 않고 백신의 개발로 숨통이 조금은 트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다 대자연은 역시 위대하여 바이러스 따위엔 눈 하나 깜박 않고 봄이 되자 신록이 그 싱그러움으로 사람들을 위무하더니 이제 여름의 길목에서 수국이 아름답게 꽃을 피워 가슴에까지 씌워진 마스크를 벗게 하고 있습니다. 

이제 지금 제가 만발한 수국의 화원을 통째로 여러분의 눈앞에 옮겨다 놓아 드릴 테니 마음껏 즐기시며 잠시나마 한시름 잊으시기 바랍니다. (제주도 서귀포시 소재 ‘휴애리 자연생활공원’입니다)

 

   
 

수국(水菊)은 수많은 작은 꽃들이 모여 한 송이의 꽃을 이루는데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물을 아주 좋아한답니다. 그런데 수국은 참으로 희한한 꽃이에요. 보통 옅은 노란색을 띤 흰색으로 피었다가 파란색이 되고, 이게 다시 보라색으로 변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처럼 변하기를 일곱 번이나 한다 하여 칠변화(七變花)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습니다. 팔선화(八仙花)라는 또 다른 이름도 있는데, 같은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요, 이 꽃은요, 토양의 성분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나타난다는 거예요. 산성토양에서는 파란색, 알칼리성토양에서는 빨간색이 되고, 중성토양에서는 흰색이 된다는 겁니다. 그러나 같은 토양에 뿌리를 박은 같은 나무의 같은 꽃이 왜 날수가 더해갈수록 색깔이 변하는지에 대해선 저도 아는 것이 없네요. 같은 나무에서도 뿌리의 길이나 수분 흡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색으로 변한다고는 하지만 저로서는 역시 이해가 가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어떻든 같은 나무라 할지라도 다른 곳으로 옮겨 심으면 당연히 다른 색깔의 꽃을 볼 수 있고, 뿌리 내린 흙에 토양의 성질을 바꿀 수 있는 뭔가를 넣어 주면 좋아하는 색의 꽃을 얻을 수 있답니다. 

그리고 이 꽃 수국은 그 색깔만큼이나 이름도 다양하여 칠변화, 팔선화 외에도 수구화(繡毬花), 자양화(紫陽花), 분단화(粉團花) 등 많은데요, 수구란 비단으로 수를 놓은 공이라는 뜻이고, 자양은 보랏빛 태양이라는 뜻이지요. 어떤가요. 그럴듯하지요.

 

   
 

그런데요, 인간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자연만이 아니지요. 사람도 사람에게 자연 못지않은 기쁨을 줍니다. 물론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것도 같은 사람이지만, 반면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것도 사람입니다. 그 예를 들려들면 한이 없을 테니 예능부문에서만 그 사례를 두셋 들어볼까요.

작년 봄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상의 4관왕을 차지하자 어땠습니까. 굉장했지요. 국민들은 마치 자기가 상을 받기라도 한 것처럼 한껏 기뻐했지 않습니까. 고단함에 녹슬어 삐걱거리는 인간이라는 기계에 윤활유가 되었지요. 그런가했더니 올 4월에는 <미나리>의 윤여정이 같은 상의 여우조연상을 받자 우리 국민들은 마냥 행복해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스트레스가 그 일거에 달아나 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니까요. 지난달(5월)에는 BTS가 일을 내도 크게 내고 말았지 뭡니까. 빌보드 뮤직 어워즈 4개 부문 수상이라는 쾌거를 이뤘다는 게 어디 보통일인가요. 신곡 Butter가 공개되자마자 인데, 상은 Dynamaite로였지요. 누군가는 BTS가 전 세계인에게 Butter처럼 녹아들었다고 재미있는 말을 하더라고요.

 

   
 

그런데 하필이면 이때 필연 같은 우연한 일이 있었는데, 뭔지 아세요. 국가지 대사(國家之大事)였지요.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방문 아니냐고요. 왜 아니겠어요. 맞습니다. 국가지 쾌거라 할 만한 일이었습니다. 과장이 심한 거 아니냐고요. 인정하지요. 정부에 대한 평가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 생리의 야당조차도 절반의 성공이라 한 것만 봐도 대성공이었다 한들 크게 틀리진 않을 것 같아서 해 본 표현이니 너무 탓만을 하시진 마시기 바랍니다. 

 

   
 

어떻든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방문 3박5일에 우리가 얻은 성과는 작다할 순 없는 일이지요. 기존의 군사적 한미동맹을 백신과 반도체 등의 협력에 의해 포괄적 경제동맹으로 확대 시킨 일, 한미 미사일 지침 해제로 인한 군사주권 강화, 2018년 판문점 선언과 싱가포르 공동성명 등을 바탕으로 하여 북한과 대화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표명케 함으로 미국의 한국 대북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지지를 끌어낸 일 등을 어찌 작은 성과라 할 수 있겠습니까. 

특히 미국의 백신기술과 한국의 생산역량을 결합하여, 우리 한국이 백신생산 허브 국가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 반도체뿐 아니라, 전기차 배터리, 바이오의약품, 차세대이동통신(6G) 등의 첨단 제조업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키로 했다는 점은 가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남의 좋은 일에 괜히 배가 아파하는 경우도 있지요. 왜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그런 속담 있잖아요, 바로 그런 경우로 우리를 보는 일본이 꼭 그렇지요. 

<햄버거와 크랩 케이크> <마스크와 노 마스크> <20분과 37분> 이게 뭣을 의미하는지 아시겠어요? 그래요. 일본 스가 총리―미국 바이든 대통령, 한국 문재인 대통령―미국 바이든 대통령간의 정상회담 때 식사와 마스크 착용상태, 소요시간이지요. 

한미 정상회담 때 미측 관계자들이 몇 번이나 회담장에 들어와 시간이 다 됐다 알려주는데도 이야기는 이어졌다 하지요. 그만큼 즐겁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는 거였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K-팝, 기생충의 오스카 4개 부분 수상, 윤여정의 수상 같은 이야기까지 하여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함으로 친밀감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하지 않습니까. 

그런가 하면 문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전 전쟁영웅 명예훈장 수여식에 참석하기도 했는데요, 이 같은 행사에 외국 정상을 미국 정부가 초청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네요. 그런데다가 또 공식 석상에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없는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까지 이 자리에 나왔다 하잖아요. 그러니 일본으로선 자기네 스가 총리가 방미했을 때의 냉랭했던 예우와 비교가 되어 배가 아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니 한국기업이 미국에 44조원 규모나 가져다 받쳤다는 등의 말로 위로를 받으려 했지만, 자기들은 안 그랬나요. 사실을 말하면 44조는 기업의 투자지요. 우리 기업이 좀 더 적극적으로 미국진출을 원해서였습니다. 자기네의 이익이 된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게 기업의 생리인데, 그런 그들이 스스로 손해 볼 일을 할 리가 없는 거지요. 일본의 일부 언론과 누리꾼들의 댓글을 보면 기도 안 차지만, 더 이상 말하는 것은 자제하려 합니다. 

 

   
 

그런데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일본만이 아닙니다. 아니 그런 일본이야 어찌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지요. 섬나라 근성이라잖아요.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들 일본인보다 더 일본에 편향된 사람들이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 있느냐고요? 있다니까요. 있어요. 소위 친일파의 후손이고, 아니면 신생(?) 친일파들이지요. 제가 아는 제법 지명도가 있는 어떤 사람은요, 일본과 친한 것이 친일파인데, 그게 뭐가 나쁘냐고 하더군요. 꽤 이름이 있는 대학교수인 그가 그 의미를 정말 몰라서겠어요. 

 

   
 

<대한매일신보>는 친일파를 가리켜 ‘토왜(土倭)라 하고는 그 뜻을 풀이하여 ‘얼굴은 한국인이나 창자는 왜놈인 도깨비 같은 자,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이라 했는데, 그런 자들이 지금도 이 땅에 많이들 섞여 살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요. 

그리고 또 이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계의 지도층에 있는 어떤 분은 위선자라는 최상급의 모욕적 언사로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고, 또 어떤 사람은 전두환을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 중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좋은 대통령이었다고 칭찬을 합니다. 그야 뭐 주관적인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문재인과 전두환이라면 글쎄요, 그리 말해도 좋은 것일까요.

 

   
 

어떻든 그런 사람들이야 어느 나라, 어디에라도 있는 것이니 크게 개의할 일은 못되지만 그런 의견에 부화뇌동(附和雷同)하는 것은 안 될 일이지요. 수국이 아름답다하여 그 색깔이 토양에 따라 쉬이 변하는 것처럼 인심(人心)도 조석변(朝夕變)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고금동(古今同)한 산색(山色)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그런 말입니다.† 그 악착스런 코로나19조차도 예쁘게 피어나는 꽃들을 어찌하지 못하는 것처럼 저들이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도약하는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가는 길을 저해하진 못하는 것이지요.

† 山色古今同 人心朝夕變 <산 빛은 예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어도, 사람의 마음은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누나!> ― 五言詩 <推句集>에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떠오르는 태양입니다. 그러니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저들 일본이 배가 아프다 못해 안달을 하는 것이지요. 우리 한국을 향해 수출규제에 나섰던 저들 일본을 보십시오. 발길질을 한 발목의 상처에 붕대만 동이지 않았습니까. 이번 한미정상회담 뒤의 저들의 반응을 보라니까요. 확인이 필요하시다면 저들의 언론과 누리꾼들의 댓글을 한번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끝으로 친일파가 됐건 토왜가 됐건 일본편향의 양반들에게 한 마디만 충고를 하려합니다. 

“막는다 해서 떠오르는 태양이 추락할 리 없고, 추앙을 한다 해서 지는 해가 솟아오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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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1-06-01 19:24:18
'균형감각 不在'가 낳은 '反日 정신병' (퍼온글 : 펀드빌더)
일제(日帝)시대는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이다. 오늘날 韓國人들은 이 35년을 주로 암흑기로만 기억한다. 韓國의 病的 反日을 안타까워하던 한 日帝시대 경험자는 이렇게 한탄했다.
  
"내가 세상 떠날 날이 얼마 안 남았는데, 이제라도 진실을 말하고 싶다. 일제 때는 오늘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은 암흑기가 결코 아니었다. 당시 일반인들에게 있어 일제시대는 평화롭고 조용한 시대였다."
  
오늘날 韓國人들 머리 속에 있는 日帝시대 이미지는, 日帝末期 한반도에 징용이 적용된 1944년 3월부터 1945년 8월까지의 혼란기에 朝鮮人들이 겪은 ‘고통’과 ‘슬픔’으로만 점철되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朝鮮人들의 이러한 고통과 슬픔이 日帝시대 35년 전체를 지배했을 것으로 오늘날 韓國人들은 확신하는 듯하다. 하지만, 1년 6개월에 불과했던 日帝末期 전쟁혼란기가 日帝시대 전체를 대변한다고 볼 수는 없다. 35년 中 1년 6개월이면, 비중으로 따져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짧은 기간이다. 5%도 안되는 것이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는 법이다. 5%라면 전체를 대변하기는커녕 오히려 예외(例外) 쪽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日帝 35년과 동일한 기간으로서 그 以後 35년을 살펴보자. 日帝 以後 35년이라면, 1946년부터 1980년까지의 기간이다. 6·25, 4·19, 5·16, 5·18 등의 혼란기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韓國人들은 1946년부터 1980년까지의 35년간을 묘사할 때, ‘동족상잔 6·25로 인해, 죽고 죽이는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찬 35년’이라는 式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정상적 韓國人이라면 ‘6·25 등이 있었지만, 한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발전을 이룬 도약기’라는 式으로 대부분 묘사할 것이다.
  
팩트를 말하자면, 한반도에 人權이 들어오고, 法治가 도입되며, 의무교육과 산업화, 남녀평등, 위생관념, 금융시스템 등 모든 분야에서의 近代化가 시작된 것은 日帝 때부터다. 심지어, 홀대받던 '한글'이 체계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것도 日帝 때부터다. 학교 등 공식장소에서 일본어만 써야 한다는 정책이 1938년에 도입되기 前까지 한글을 널리 보급하고 교육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日帝 덕분이었다.
  
日帝 이후 35년간 6·25, 4·19, 5·16, 5·18 등의 혼란이 있었던 것에 비해, 日帝 35년 中 있었던 혼란은 3·1운동과 징용 정도다. 무장독립운동의 경우 그 활동이 과장된 측면이 많으며, 당시 일반인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고 볼 수 있다. 한 마디로, 일반인 입장에서는, 日帝시대 35년이, 그 以後 한국의 35년에 비해 오히려 평온한 시대였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태평양전쟁 당시 朝鮮人들은 오히려 본토의 日本人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지냈다는 것도 팩트다. 본토 日本人의 경우, 태평양 전쟁 초기부터 웬만한 젊은 남자들 대부분은 전쟁터로 동원되어 죽거나 다쳤다. 반면, 한반도 朝鮮人들은 전쟁 말기에 징용으로 동원되어 주로 후방에 위치한 군수공장이나 탄광 등에서 근무했다. 징용은 그 자체가 합법(合法)이다. 당시 日本을 상대로 전쟁을 치른 美國의 경우도 자국 女性들 대부분을 징용하여 군수공장 등에서 일하게 했다. 징용은 지구상 모든 나라가 시행하는 合法的 제도다. 당시 한반도 朝鮮人은 전부 日本國籍을 보유하고 있었다. 日本國籍을 가진 국민이 정부의 合法的 조치인 징용에 응해야 함은 마땅한 것이며 만약 거부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징용은 合法이며, 거부하면 不法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정부의 징집제도가 合法이고 이를 거부하면 不法(병역기피)이 되는 이치와 똑같다. 태평양 전쟁 때는 朝鮮人, 日本人 모두 똑같이 고생했다. 당시는 美國국민, 英國국민, 프랑스국민, 호주국민, 독일국민, 이탈리아국민, 러시아국민 등 지구상 웬만한 나라의 국민들은 男子라면 징병되어 전쟁터에서 죽거나 다치고, 女子라면 징용되어 군수공장 등에서 일하던 그런 시대였다.
  
以上과 같은 팩트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韓國人들은 특정 세력에 의해 '날조된'('만들어진') 日帝시대 이미지만 머리 속에 입력되어 무기력하게 선동당하고 있다. 기본적 균형감각을 갖고 日帝시대를 바라보면, 결코 오늘날 같은 病的 反日에는 빠질 수 없다. 日本 정부를 향한 비난이나 선전선동에 있어서는, 日本 內 좌파세력, 中國정권, 北韓정권이 보통 한통속이 되어 움직이는데, 언제부터인가 여기에 韓國人들이 가세하는 기(奇)현상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붉은 세력의 反日활동에 韓國人들이 힘을 보태주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①日本 內 反정부 세력(韓國언론이 ‘양심세력’으로 치켜세워주는 세력) - ②中國정권 - ③北韓정권’이라는 '反日 삼각 컨넥션'에 엉뚱하게도 자유대한민국 국민들이 행동대장 역할을 자처하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사실상 주구(走狗) 역할에 더도덜도 아니다. 세계10大 경제대국이며 인당GDP 3만 달러 이상의 국민들이, 中國과 北韓, 日本 內 反정부 세력 등 지구촌 공산당 모임의 走狗 역할을 자처하며, 같은 자유민주 진영의 日本을 향해 反日에 열을 올리는 모습은 차라리 코미디에 가깝다.
  
病的인 韓國人들의 이런 모습에, 日本정부와 日本국민들은 결국, 인내의 한계에 도달하게 되었고, 韓國人들을 사실상 투명인간 취급하게 된 정황이 요즘 확연하다. 어쩌다 韓國人들은, 美國에 이은 자유민주진영 최강국 이웃 日本으로부터 이런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일까? 한 마디로 自業自得이라고 할 수 있다. 입장을 바꿔, 만약 韓國의 이웃나라가, 약속 뒤집기를 밥먹듯 하고, 세계 도처에서 韓國을 모함하고 헐뜯는 데 열심이며, 하는 일마다 사사건건 시비걸고 물고늘어지기를 좋아한다면, 이 경우 韓國人이라면 그 이웃나라를 좋아할 수 있을까?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韓國人에게 ‘균형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日帝말기 잠시의 혼란기를 마치 日帝시대의 전체의 모습인 것처럼 받아들이고, 불순세력이 불어넣어주는 날조된 日帝 이미지에 갇혀 살아가는 것은, ‘균형감각’이 부재하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韓國人들이 유독 선동에 약한 것은 '균형감각'의 不在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균형감각이 없으므로, 야산에서 발견되는 쇠말뚝을 日帝가 민족정기 끊기 위해 박은 것이라고 해도 의심없이 그냥 믿는 것이며, 길 가던 처녀가 일본순사에게 끌려 갔다는 소리도 의심없이 그냥 믿어버리는 것이다. ‘균형감각 부재’가 계속되는 限, 韓國人들은 안타깝지만 붉은 무리들의 走狗 역할에서 벗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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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11.54.116.232)
2021-06-01 19:26:35
'욱일기(旭日旗)' 향한 소아병적(小兒病的) 히스테리 (퍼온글 : 펀드빌더)
韓國의 소아병적 反日 이벤트로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욱일기(旭日旗) 히스테리'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前쯤부터 갑자기 유행하기 시작한 이 이벤트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조금이라도 욱일기(旭日旗)가 연상되는 듯한 디자인만 눈에 띄어도 많은 韓國人들은 ‘전범기!’라며 난리를 친다. 이성적으로 봤을 때 이같은 韓國人의 행태는 히스테리를 부리는 모습에 더도덜도 아니다.
  
욱일기(旭日旗)를 전범기(戰犯旗)로 규정하고 거국적 차원에서 거부감을 보이는 곳은 전세계에서 韓國이 유일하다. 욱일기(旭日旗)가 전범기(戰犯旗)라는 객관적 근거는 全無하다. 자의적(恣意的)이며 일방적 韓國側 주장만 있을 뿐이다.
  
많은 韓國人들은, ‘태평양전쟁 당시 일제(日帝)가 아시아 각국을 침략할 때 사용했으므로 전범기’라는 주장을 편다. 그런데 이런 式으로 따지면, 오늘날의 영국국기, 프랑스국기, 독일국기, 스페인국기, 네덜란드국기 등 웬만한 자유진영 주요국 국기(國旗)는 전부 전범기(戰犯旗)가 되고만다. 심지어 美國의 성조기(星條旗)조차 전범기(戰犯旗)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된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의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을 향한 침략 행태는 日本의 뺨을 치는 수준이었다.
  
욱일기(旭日旗)에 집착하는 韓國人들 형태가 앞뒤 안 맞는 상태라는 점은, 과거 日本軍이 전투할 때 주로 앞세운 것이 욱일기(旭日旗)가 아니라 일장기(日章旗)였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다시 말해, 굳이 日本을 향해 전범기(戰犯旗) 시비를 걸고자 한다면, 욱일기(旭日旗)가 아니라 일장기(日章旗)를 갖고 물고늘어져야 그나마 앞뒤라도 맞게 된다는 이야기다.
  
욱일기(旭日旗)를 나치깃발(하켄크로이츠)과 동일시(同一視)하면서 나치깃발을 오늘날 法으로 금지시킨 것과 똑같이 욱일기(旭日旗)도 法으로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韓國人들도 꽤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 같은 주장은 한마디로 無知의 소치다. 나치깃발이 오늘날 금지된 것은, 나치가 유대인 학살이라는 희대의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욱일기(旭日旗)는 그같은 인종학살 범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더구나 나치깃발은 국가 차원이 아닌 일개 정당(나치당)의 깃발이었다. 나치깃발과 욱일기(旭日旗)는 애초 서로 비교 대상이 아니다.
  
다 떠나, 오늘날 韓國이 과연 日本을 향해 전범기(戰犯旗) 시비를 걸 만한 최소한의 자격조차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과거에 日本을 상대로 전쟁을 치른 당사자인 美國이나 영국, 호주, 심지어 中國도 가만히 있는데, 日本을 상대로 전쟁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한몸통이었던 韓國이 오늘날에 와서, 아무도 문제 삼지않는 욱일기(旭日旗)를 전범기(戰犯旗)로 단정하고 트집잡는 것은 누가 봐도 주제넘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욱일기(旭日旗)가 전범기(戰犯旗)라는 韓國人들의 주장은 근거가 全無한 억측(臆測)에 불과한 것이며, 오늘날 韓國人들이 보여주는 욱일기(旭日旗)를 향한 소아병적 히스테리는 따라서 反日 차원의 헐뜯기에 더도덜도 아니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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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211.54.116.232)
2021-06-01 19:17:50
'균형감각 不在'가 낳은 '反日 정신병' (퍼온글 :펀더빌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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