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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으로 다시 서는 교회가 되려면” 스가랴4장 1절~14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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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5월 30일 (일) 15:37:42
최종편집 : 2021년 05월 30일 (일) 15:38:27 [조회수 :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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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으로 다시 서는 교회가 되려면” 스가랴4장 1절~14절

 

1. 순금등대와 두 감람나무의 묵시

 

① (1절) “내게 말하던 천사가 다시 와서 나를 깨우니 마치 자는 사람이 깨우임 같더라”

▶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다섯 번째 묵시를 거듭해서 보여주시고 ‘내게 말하던 천사’를 통해서 이 묵시가 전하는 메시지를 말씀하신다. 묵시를 보여주시는 목적은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을 볼 수 있도록 영적인 깊은 잠에서 깨우시기 위함이다. 눈앞에 벌어진 어두운 절망 가운데서 찬란한 희망의 빛을 바라볼 수 있도록 믿음의 눈을 열어주신다.

 

② (2절)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에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 (메시지성경) ‘윗부분에 그릇이 달린 순금 등잔대가 하나 보입니다. 그 그릇에 일곱 개의 등잔이 붙어 있는데, 각 등잔이 그릇과 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릇 양편으로 올리브나무가 한 그루씩 서있습니다’ 순금은 거룩함과 순전함을 의미한다. ‘등대(lampstand)’는 어둠에서 빛을 밝히는 ‘촛대’다. (계1:20)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등대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전, 곧 주님의 몸 된 교회를 가리킨다. (요2:21)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전재건은 단순히 종교건축물을 세우는 것을 넘어 하나님이 언약이 성취되는 구원을 나타내는 상징물(symbol)이다. 등대의 독특한 구조 속에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일곱 등잔’ 등대에서 등불을 밝히는 등잔이 총 일곱 개다. 일곱은 완전수로 ‘모든 성전과 모든 교회’를 가리킨다.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은 각 등잔에 공급하는 기름을 저장하는 그릇으로, 등대에 불을 밝히는 원천이다. ‘그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 주발에 채워진 기름을 일곱 개의 등잔으로 직접 공급해주는 연결통로다.

 

③ (3절)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감람나무’는 올리브 나무다. 감람나무에서 올리브기름이 나와서 등대에 기름을 공급해 준다. 여기에 이 묵시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가 있다. 등대 자체가 스스로 빛을 밝히는 게 아니라, 등대에 빛을 밝히기 위해서는 ‘감람나무에서 나온 기름’을 공급해 주어야만 한다. 성전이나 교회는 빛이 아니다. 다만 빛 되신 ‘하나님의 신(성령)의 임재’ 할 때 비로소 그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 전하고 있다. 감람나무가 하나가 아니라 등대의 좌우편에 두 개인 것은 하나님의 신(성령)의 두 가지 속성 곧 ‘지속성’과 ‘연속성’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신(성령)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권능’과 ‘지혜’를 의미한다.

 

 

2.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① (4절~5절)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게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 ‘이것들’이라는 지시대명사에 주목해야 한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가 전하는 의미를 살피며 각각의 요소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무엇이니이까’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자의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고 물어야 한다. 이것이 ‘의뢰’다. 하나님께 여쭤보기 위해서는 ‘알지 못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해야 한다. 기도는 ‘내 뜻대로’ 이루어지길 간구하는 요청을 넘어 내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길 추구하는 의뢰다.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하신 기도는 하나님께 의뢰하는 기도의 표본이다. (눅22:42)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높고 더 좋은 것을 알면 의뢰한다. 의뢰하지 않고 자기의 소견대로 멋대로 행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도의 본질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의뢰’다.

▶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성전재건의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두려워하고 낙심했던 진짜 이유는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총독 스룹바벨을 비롯한 남은 자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지 못하고 눈앞에 형편과 문제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영적인 무지’가 근본 원인이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죄의 본질이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몰라서 제 멋대로 행하는 것이 ‘죄’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것이 ‘의’다. (요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따라서 하나님을 알고 의를 좇아 행하는 것이 구원과 생명으로 나가는 길이다. 스가랴에게 이 묵시를 보여주시는 목적이 여기에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뚜렷하게 알게 하시기 위함이다.

 

② (6절)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 앞서 살펴본 네 번째 묵시가 ‘대제사장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이라면 다섯 번째 묵시는 ‘총독 스룹바벨’에게 주시는 말씀이다. 성전재건을 통한 언약의 성취와 구원의 역사(役事)는 스룹바벨이 하는 일이 아니라 그에게 기름 부어 세우신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일이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다. 문제는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고 있었다. (막8: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도다 하시고’ 이 묵시가 전하는 메시지는 두 감람나무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름부음에 의해 순금등대가 빛을 발하듯이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권능으로 이 모든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뚜렷하게 증거 하는 데 있다. 성전이나 교회는 자체 발광하는 빛이 아니다. 빛을 통과시켜 그 빛을 발하는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처럼 다만 빛을 전달하는 도구일 뿐이다. 초대교회가 성령의 임재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행1:8)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하나님의 일은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지 사람의 힘과 지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절망하고 낙심하는 까닭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무지’와 스스로 빛인 줄로 착각하는 ‘오만’ 탓이다.

 

③ (7절~9절)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찌어다 하리라 하셨고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 (메시지성경)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니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스룹바벨 옆에서 너는 모래성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성전의 머릿돌을 놓을 것이며 그날 크나큰 함성이 울리리라. 스룹바벨이 성전 건축을 시작했고 그가 그 일을 완성할 것이다. 그날 온 백성이 만군의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말씀을 주셨음을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미약한 출발이라고 이날을 경멸하는 자가 있느냐? 스룹바벨이 마지막 돌을 놓는 날에 감히 그를 비웃는 자가 없을 것이다. 전령 천사가 앞의 환상을 다시 보이며 말했다. 일곱 등잔은 탐조등처럼 세상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탐색하는 하나님의 눈이다’ 스가랴에게 이 묵시를 보여주신 목적을 다시금 분명하게 밝힌다.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에게 다림줄의 권세를 위임하셨고, 위임하신 분께서 반드시 성취하게 하실 것을 친히 보장(保障, guarantee)하신다.

 

 

3. 두 감람나무의 두 가지는 무슨 뜻인가?

 

① (11절~12절) “내가 그에게 물어 가로되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다시 그에게 물어 가로되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무슨 뜻이니이까”

▶ 스가랴의 거듭되는 질문을 통해 이 묵시가 전하는 본래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손가락이 가리키는 달을 바라봐야 하듯,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가 전하는 뜻(메시지)’을 물어야지 ‘감람나무’가 누구인지를 물으면 안 된다. 스가랴의 질문은 ‘등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를 넘어 ‘금 기름을 흘려내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에 면밀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감람나무 두 가지’에 이 묵시가 전하는 핵심이 있다. 스가랴가 본 난해한 묵시를 해석하는 열쇠가 요한복음 15장에 나오는 포도나무와 포도나무 가지의 비유에 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포도나무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우리는 원줄기에 붙어있는 ‘가지들’다. 가지가 열매를 맺으려면 나무에 연결되어 붙어있어야 한다. 열매 맺는 비결은 포도나무와 감람나무 모두 동일하다. 경외하면 청종하고 준행할 때 동행해 주신다. 두 감람나무는 ‘여호와의 사자(메시아, 그리스도)’와 ‘나의 신(성령)’을 가리킨다. 계속해서 ‘네게 말하는 천사’는 ‘두 감람나무 가지’가 누구인지 설명해준다.

 

② (13절) “그가 내게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대답하되 내 주여 알지 못하나이다”

▶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실지 아는 이가 없다. 하늘의 천사도 모르고 아들도 모른다.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행전1:7)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하나님께서 알려 주지 않으신 것이기에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우리가 관심을 쏟아야 할 일은 오직 ‘약속하신 성령의 기름부음’을 사모하며 기다릴 뿐이다.

 

③ (14절) “가로되 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니라 하더라”

▶ ‘이는’ 감람나무 가지를 가리킨다. ‘네게 전하는 천사’는 감람나무 가지를 ‘기름 발리운 자 둘’이라고 가르쳐준다. 곧 ‘온 땅의 주 앞에 모셔 섰는’ 특별한 역할을 위임받은 자들이다. 세상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께서 금등잔(성전, 교회)에 기름을 공급해 주기 위한 ‘관(연결통로)’으로 선택받은 지도자들이다. 본문에 나오는 ‘두 감람나무 가지’는 성전재건을 위해 기름부음을 받은 정치지도자 총독 스룹바벨과 종교지도자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가리킨다. (학개2:4) “그러나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찌어다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찌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학개의 예언을 통해 ‘두 감람나무 가지’, 곧 ‘기름 발리운 자 둘’은 단지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백성들’까지 포함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기름 발리운 자’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모시고 살아가는 포도나무 원줄기에 연결된 가지와 같은 ‘진정한 그리스도인’ 모두를 의미한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신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기름을 부으셔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신다. ‘기름 발리운 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청종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모든 하나님의 일꾼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함께 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이것이 ‘성전과 교회’의 실상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성전으로 세워진 이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로 부름 받고, 이 사명을 위해 특별한 선택을 받은 지도자들은 ‘감람나무에 연결된 감람나무 가지처럼’ 반드시 경외와 청종, 준행으로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이것이 한국교회가 ‘세상의 빛으로 다시 서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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