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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된 나무, 나무가 된 시
이혁  |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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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5월 25일 (화) 22:34:57
최종편집 : 2021년 05월 25일 (화) 22:37:07 [조회수 :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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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된 나무, 나무가 된 시

<나무가 말하였네>, 고규홍, 마음산책, 2014

어느 인생이든 사연이 없는 인생이 있을까? 평생 한 자리에 무심히 서 있는 나무에겐 사연이 없을까? 모든 존재는 이유가 있는 법. 시간에 머물다 가는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한 나무 안에는 그를 심은 이의 손길, 가꾼 이의 손길, 그를 만져 본 이름 없는 손길들, 그를 바라본 수많은 눈길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나무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마을 어귀에 있으면 마을의 역사를, 개인의 마당 안에 있으면 한 가족의 역사를 나무는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존재는 시의 이유가 되고, 사연은 수많은 시어들을 낳는다. 고로 나무는 시다. 인류보다 세상의 빛을 먼저 본 나무는 시인에게 수많은 영감을 선물해주었다. 많은 시인들이 나무에 기대 깊은 위로를 얻고, 삶의 지혜를 얻었다. 시인들은 이를 아름답고 깊은 시어들도 풀어내었다. 

시인과 나무가 만나면 어떤 울림이 있을까? <나무가 말하였네>는 그 울림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차분히 알려준다. 저자인 국문학을 전공한 고규홍 교수는 나무를 평생 찾아다니며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의 숨겨진 사연과 서 있는 땅과 연관된 절절한 이야기들을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풀어낸다. 그렇게 나무와 함께 한 세월이 올해로 26년째... 그동안 그는 나무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 여러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은 바 있다. 

그 중 <나무가 말하였네>는 그의 주관심사인 시(詩)와 나무를 함께 담아낸 아름다운 책이다. 그는 그의 책에서 ‘시는 나무, 나무는 시’라고 말한다. 저자는 불혹에 나이에 답답한 삶에 지쳐 일상을 훌훌 털고 떠나 수목원에 머무르며 챙겨간 시집을 읽다가 시에 나오는 나무들을 하나씩 찾아보면서 비로소 나무를 만났다 한다. 그를 나무에게 인도해준 것이 바로 시였다. 그러니 시는 나무, 나무는 시라고 말할 수밖에... 저자에게 있어 나무는 친구이자 스승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나무를 찾아다니며 교감을 나누고, 그러는 사이 인생에 대한 가르침을 배운다. “나무들 사이에는 그리움의 거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던가, 너무 바짝 붙어 있는 나무들은 서로의 자람을 방해하고, 더 크고 힘센 나무가 홀로 동무들을 물리치고 웃자란다. 그런 나무들을 뽑거나 베어버려야 동무 나무들이 모두 잘 자랄 수 있다는 건 사람살이에서도 마찬가지겠지”(19-20).. 시인 칼릴 지브란도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그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 삼나무와 참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서 자라고 있다’고 노래한 바 있다. 너무 가까워 서로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나무도 인생도 매한가지이다. 나무를 통해 인생을 배우니, 나무는 단순히 인간을 위한 조경수가 아니라 인생의 동반자이다. 

<나무가 말하였네>에 등장하는 시들은 모두 나무에 관한 시들이다. 시인들은 나무를 통해 인생이 무언지 넌지시 일러주고 있다. 저자는 단순히 나무에 관한 시를 소개만 하는 것은 아니다. 시에 소개된 나무를 자신이 알고 있는 나무의 사연과 접목하여 구구절절한 나무의 이야기를 나무의 입장에서 전해준다. 가령 이렇다. 정호승 시인의 ‘나무에 대하여’에는 굽은 나무가 등장한다. 그러면 그가 만난 굽은 나무의 사진을 지면에 싣고 굽은 나무에 대한 단상을 풀어낸다. 우리의 우여곡절 많은 삶을 빼어 닮은 굽은 나무에게서 인생의 교훈을 얻는다. 아무리 구부러져도 허허롭게 살아가는 나무처럼 우리도 그리 아웅다웅 하며 살지 말자고... 

이 책에 수록된 70개의 시를 만나는 것도 황홀한 일이지만, 저자가 풀어낸 나무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며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나무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 수많은 말을 한다. 단 나무의 이야기는 그에게 마음을 한없이 열어둔 자에게만 들린다. 나무는 주위의 아름다운 배경이 되어주는 하늘이며 꽃이며 강이며 나비며 새들과 깊은 교감을 하고 있다. 자연은 그렇게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오직 한 종족, 인간만이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외로워하고 있다. 나무가 손짓하고 있다. 수많은 잎들을 내밀어 손을 맞잡자고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에게 말을 걸어볼 일이다. 그는 무심한 듯 서 있어도 우리가 건네는 말을 귀담아 듣고 있다. 그를 꼬옥 안아볼 일이다. 나무의 심장박동 소리를 들어볼 일이다. 그의 체온을 느껴볼 일이다. 한 세월 함께 하고 있는 나무는 아마도 숱한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전해줄 것이다. 우린 그 속에서 위로와 용기, 도전과 희망을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무와 우리가 무척이나 닮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소란스러운 세상의 한 복판에서 말 없는 말로 고요히 우리 곁에 있는 나무.. 그의 무언의 말 속에는 인생의 길이 있을 것이다. 가뜩이나 넘쳐나는 소음공해에 소리 하나 보태기보다 조용히 나무에게 다가서보면 어떨까?
 
우린 언제쯤 나무가 건네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그 마음 간절한 이 있다면 이 책 <나무가 말하였네>를 펼쳐보라 권하고 싶다. 그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 보라. 지금 눈앞에는 살랑이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그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이 혁 목사(의성서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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