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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를 따라 짓는 농사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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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5월 20일 (목) 01:35:47 [조회수 : 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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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학교 다닐 때 학교 선생님이 늘 말씀하셨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를 기억하라고. 그때는 잘 몰랐는데 오십 줄에 들어서니 옛 성인들, 부모님, 선생님 등 인생 경험이 먼저인 분들의 말씀이 가슴에 콕콕 박힌다. 전도서에도 나온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 

그렇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마다 알맞은 때가 있다는 진리는 농사를 지으면서 더더욱 가슴에 와닿는 부분이다. 농사는 기본적으로 철마다 때를 기억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 계절마다 있는 24개의 절기는 농사를 짓는 이들에게 유용한 안내서이자 가르침이다. 달력이 없었던 시절에도 이 절기를 기억하여 따르는 것으로 일년의 농사는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준다. 그래서 매년 연말이면 24절기가 큼직하게 쓰여있는 농협 달력을 얻어 제일 잘 보이는 벽에 걸어놓는 것은 하나의 일례가 되었다. 

어느새 입하도 지났다. 입춘대길을 외쳤던 날이 엊그제 같았는데 말이다. 봄의 향연은 비바람과 함께 물러가고 지금은 신록이 온 세상을 덮은 여름으로 들어왔다. 해가 갈수록 변덕스런 기후로 인해 계절의 변화는 더 빨리 찾아오는거 같다. 게다가 지난주 여름비처럼 쏟아지기 전날은 거의 30도를 육박하는 기온에 벌써 한여름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찔레꽃이 봉오리였었는데 한여름으로 달려가는 시간 앞에 찔레꽃은 그 이튿날 화들짝 놀라 만개해 버렸다. 찔레꽃 향기가 진동을 하였지만 예사롭지 않은 기후 변화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찔레꽃만이 아니다. 오월의 상징 아카시아도 소리소문없이 만개해 버렸다. 꽃이 피는 것은 몰라도 그 향기로 아는 것이 아카시아 꽃이요, 마을의 숲을 하얗게 물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웬일인지 향기가 날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틀 내내 내린 비에 찔레꽃과 아카시아꽃은 나의 눈에서 멀어져 갔다. 봄가뭄을 해결하는 비라 하지만 내려도 너무 내리는 비에 또한번 가슴을 쓸어내린다. 설마 작년과 같으랴!

이틀 내내 내린다는 비소식에 지난 토요일 친구에게 얻은 참깨를 심으려고 오전에는 바쁘게 움직였다. 두 번째 심는 것이다. 이미 한 달 전 비닐을 심기 전에 1개의 두둑에는 쪼로록 줄을 지어 심었고, 2개의 두둑에는 15센티 사이를 두고 한 구멍에 4~5알씩 심었다. 비닐 안에서 두 개의 잎이 올라오면 비닐을 일일이 찢어 숨을 터주어야 한다. 만약 비닐을 늦게라도 찢게되면 여린 참깨는 비닐 안에서 타죽게 된다. 그러니 수시로 살펴봐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그런데 벌써 한달이 지났건만 그때 심었던 참깨는 하나도 올라오지 않았다. 이태를 묵힌 깨였기에 긴가민가 걱정을 했는데 역시나 걱정한대로 참깨는 발아되지 않았다. 수고는 수고대로 하였는데 말이다. 그래서 지난 토요일에 다시 심은 것이다. 

이번에는 구멍을 일일이 내가며 씨를 뿌렸다. 2센티 정도의 구멍에 4~5알씩, 어떤 구멍에는 10알씩 넣기도 했다. 이또한 번거로운 일이다. 왜냐하면 참깨가 잘 발아되어 올라오면 한 구멍에 오밀조밀,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빼곡이 붙어 나오기 때문에 이때는 가장 실한 한 녀석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뽑아내야 한다. 굵고 많은 참깨를 얻기 위해 열 개 중에 하나만 남기고 아홉은 과감하게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작물을 키워내는 기본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이것이 잘 안되어 노심초사하며 몇 개 남겼다가 대가 얇아 장맛비에 쉬이 쓰러지고, 거둘때도 쭉정이가 많았다. 그때 깨달은 것이 농사는 과감한 결단과 때를 잘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순을 칠 때는 과감하지 못하여 서당개가 풍월을 읊는 년수가 3번이 지났어도 알곡과 쭉정이가 난무하는 농사법을 이어오고 있다. 

긴 이랑에 뚫은 구멍을 세어보니 얼추 3백 개 정도다. 이랑 3개에 심었으니 잘 나와 잘 자라면 한말 정도 거둘 수 있을까? 그렇게라도 수확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방앗간에서 기름을 짜주는 기본양이 한말이니 그 기본이라도 거둔다면 참깨 농사는 잘했다 칭찬할 수 있으리라. 참깨를 심고 난 뒤 이틀 동안 연신 비가 내렸다. 작물을 심고 나서 내리는 비는 호재다. 수고로이 물을 주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군다나 사람이 주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자연비의 효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사람이 아무리 애쓴다고 해서 그 애씀에 충분한 보상이 따른다는 이치는 농사에는 먹히지 않는다. 그래서 농부는 때를 잘 아는 것과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농사를 짓는 지혜가 필요하며, 하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를 수 밖에 없다. 그런면에서 나는 아직 멀었다. 그렇기에 오랜 세월 농사를 지어온 마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우직한 농사법에 귀를 기울이며 메모를 한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새겨놓아야 그 이듬해에 때를 따라 농사를 짓는 습관을 들이게 된다. 이제는 그런 분들이 마을에서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으니, 앞으로 심고 거두는 때를 알려주는 스승은 어디에서 만날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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