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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예뻐지는 수필
최태관  |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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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5월 15일 (토) 18:45:07
최종편집 : 2021년 05월 15일 (토) 20:20:21 [조회수 : 2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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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예뻐지는 수필
 
<마음이 예뻐지는 수필>, 정채봉 외 22명 씀, 나무생각, 2003년
 
얼마 전 강원도를 다녀오는데 참 울창한 숲의 나무들이 잘려 나가고 어린나무들이 심겨 있는 것을 보았다. 도대체 왜 저렇게 되어야 했고, 저래야만 하는가에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관련 정보를 검색해보니 산의 정화작업이라는 보도를 보았다. 죽은 고목이나 숲을 헤치는 것들은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의문이 생겼다. 언제부터 우리가 숲의 정화작업을 하였던가? 나무는, 숲은 그런 작업이 필요한가? 자연은 스스로 정화작업을 거치며 또 그 속에서 자연의 법칙대로 살아가지 않는가? 인간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가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이 자연 안에서 스스로 객이 되고 그를 존중하는 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마음이 예뻐지는 수필에서 나오는 곽재구씨의 글은 바로 그렇게 생각하도록 인도하는 좋은 글이다. 
“나는 산의 맨 끝까지 올라갑니다. 그곳에 바람이 살고 있습니다. 꽃과 꽃 사이를 나무와 나무 사이를 그리움과 그리운 생각 사이를 바람은 아무런 허물없이 불어 갑니다”(21-22). 
 
바람이 살고 있는 그곳이며, 그들의 삶의 자리에 그저 인간은 한 발로 겨우 디뎌 건너가는 것일 뿐임을 기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곳엔 동물이며 곤충이며 온갖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터전이기 때문이다. 물론 삶은 다채로워서 나의 생각만이 옳을 수도 없고, 다른 이의 생각이 틀릴 수만도 없다. 각자의 생각의 깊이 속에서 나오는 행동과 생각, 말들은 결국은 삶을 형성하고 ‘나’를 만들어 간다. 많은 사람들이 깊은 생각을 하고 숙고하며, 이웃과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인간관계의 상호관계에서 만들어지고 이루어지는 그 조화로움이 내 이웃이었으면 좋겠고, 내가 사는 마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 한가득 채웠던 말은 ‘기억’이었다. 문득 떠오는 기억이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가 되는 것 같다. 책장을 살펴보니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 예뻐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하는 책이었다. 여러 작가님들의 수필을 모은 조그마한 책이지만 다양한 삶의 흔적들이 각인되었다. 존재의 흔적들이 풍겨져 나온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사건들을 볼 때마다, 세상이 정말 살기 좋은 곳인가? 언제부터 이리되었나? 생각해 보면 가늠할 수도 없다. 항상 사건 사고는 있어 왔고, 단지 우리의 정서가 조금씩 더 잔혹해져 가는 사건들에 길들여지고 있었을 뿐이란 생각의 의식에 다다르자 내 마음 속 울림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상황에서, 작가님들이 기술하고 있는 세상은 아직은 세상은 살만한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은 그렇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들이 매일매일 일어나며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깨우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갑갑한 현실에서 찾게 되는 자연이라든가 바쁜 일상 속에 매몰되어버린 일상의 평범함 속의 감사함이든지 그 어떤 무언가를 회복해 가야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미처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의식의 흐름을 찾기에도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침묵으로 읽어가기에도 수필만한 글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들은 솔직함이 배어있다. 인간의 욕망에 의해 가려진 이면 세계에 대한 솔직함이다. 
 
정채봉의 글에서 욕망을 비운 마음이 생각난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 존재하는 송광사는 그동안 마음 속에 채워왔던 것들을 비워냄으로써 새로운 빛을 맞이하는 공간을 주는 듯 하다. 
 
함만복의 가족사진은 까치가 기나긴 세월의 흔적 뒤로 어머니와의 대화를 소환한다. 
“가족사진을 찍은 대부분의 순간은 행복하다. 사진관에 걸린 가족 사진을 보면 대개 예쁜 딸은 엄마를 닮았고 잘생긴 아들은 아버지를 닮았다. 내가 가족사진을 찍어보았다면 사진 속 사람들의 행복한 순간이 내게 번져올 수도 있으련만 늘 그렇지 못했다(18).”
그러나 마음 속에 찍힌 까치사진은 여전히 어머니와 한 순간을 담고 있음이 느껴진다. 
 
곽재구의 소풍이라는 글은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 산꼭대기에서 날린 종이비행기를 소환한다. 
“꿈도 덩어리가 진다면 욕망에 못지않은 무게를 지닌다는 것을 왜 이제야 깨닫게 되는지요(26)”
 
주자청/허세욱의 ‘뒷모습’은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발견하게 되는 세월의 무게와 자식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한다. 
 
최윤의 ‘가장 삶의 모습에 가까운 하루’는 동네의 한 분식집이 그에 대한 젊은 시절의 기억과 삶이 가끔씩 주는 활력을 느끼게 한다. “그래 참 살아볼 만한 세상이야....!”
 
서영은의 ‘진홍색 입술연지’는 누구나 학장시절 겪었을 법한 사춘기의 가슴앓이를 잘 보여준다.. 
“다쓰고 버린 것이었으므로 새끼 손가락으로 속을 후벼파야 햇다... 손가락 끝에 겨운 묻어 나온 진홍생 연지로 입술을 아프도록 문질로 보았지만 연모의 정으로 애타는 마음에는 흡족하지 않았다.(49)”
 
안도현은 ‘일포스티노’은 우체국을 통해 시의 본질을 깨닫고자 하는 시에 대한 열정을 느끼게 한다. “일 포스티노는 이탈리아어로 우체부라는 뜻이다.(60)”
 
김미라의 ‘내 삶의 출구’는 예술관에 대한 회상을 통해 삶의 막다름에서 벗어나 삶을 초월하는 힘을 보여준다.. 
“내 삶의 입구는 요란하고 갈수록 출구가 초라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을 저 아름다운 미술관처럼 .... 감동적인 추구를 찾아나가듯이 우리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65)” 
 
신대철의 “그를 보면 마음이 환해진다.”는 삶의 위기나 고통을 겪을 때마다 손을 내밀었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삶을 살아갈 만한 것으로 이해하게 하는 원동력임을 느끼게 하는 글이다. 
“어두움 충동을 다 가라앉힌 뒤에 뒷산에서 우연히 그와 마주칠 때의 황홀함이란! 사십리길을 달려가는 동안 내 어두운 마음은 다 풀려 그와 만날 때에는 언제나 밝은 이야기만 하게 되었고 점차 주위의 작은 변화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69)”
 
김재진의 ‘어머니’는 어린 아이와의 대화에서 발견하된 어머니의 근원적 사람을 내비친다.
“아이에겐 세상에 공짜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나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공짜로 누려왔지 않은가? 어머니는 지금 너무나 멀리 계시지 않는가? 자나깨나 자식 뒷바라지를 하다 늙어버린 어머니 허리가 아프다며 이제 걸음을 옮기는 것마저 힘들어 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자 가슴이 먼 산을 적시며 오는 가랑비처럼 촉촉이 젖어들기 시작했다.(75-76)”
 
유종원/송광성의 ‘나무심는 사람 곽타타이야기’는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내가 나무를 오래 살게 하고 무성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다만 나무로 하여금 자기본성을 다하게 할 따름입니다..(78)”
 
마르셀 푸르스트/김병욱의 ‘바다’는 현대인에게 자연이 줄 수 있는 생생한 위로를 담고 있다.
“언제나 바다는 삶에 대한 염증과 신비의 매력에 이끌려 현실이란 어차피 만족시킬 수 없는 것이라는 예감과도 같은 최초의 슬픔을 넘어선 자들을 황홀하게 한다.(83)”
 
황인숙의 “세상에 이런일이!”는 아직까지 한 번도 경품에 당첨되지 않는 나에게도 위로가 된 글이다. 
 
조지 기싱/김창배의 글은 돈을 잃고 절망하고 있는 한 소년에게 작가가 내보인 6펜스의 가치를 잘 표현한다. 
“자연이라는 대예술가는 평범한 꽃들을 누구의 눈에나 띨 수 있게 만든다. 우리가 가장 천한 잡초라고 부르는 것조차도 그 경이와 아름다움은 인간의 언어로는 표현할 길이 없다.(91)”
 
원재훈의 “그대는 지금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가?” 오랜 시간동안 차가워지고 냉정해진 자신의 손을 녹인 한 여자아이의 손에 담긴 소중한 마음을 느끼게 한다. 그 손이 위대한 것은 단지 손을 잡았기 때문이 아니라., 저자의 손을 내밀게 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가 잡은 것은 타인이 고통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비정한 현실의 손이었다...(107)”
 
최근에 뉴스를 통해 전달되는 사건은 너무나 우리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만들고 있다. 자신의 친누나를 해치고, 친구와 한강변에서 놀다 죽음으로 돌아온 의문의 학생사건, 사랑으로 키우겠다고 다짐하고 입양한 아기를 죽게 만든 사건, 말을 듣지 않는다며 어린 아이를 가방에 가둬 죽게 만든 사건, 외할머니가 친모가 되고 엄마가 언니였다가 결국은 버려지고 굶어죽은 아이의 사건... 등등. 도대체 우리 사회는 무엇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주변에 있는 소중한 이웃과 자연의 가치들이 아닐까? 신앙인들은 성경을 통해, 새벽 기도나 찬양 등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에 능숙했고, 또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그렇게 자숙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며 살아왔다. 남의 고통에 같이 아파하며 기쁜 일은 서로 나누고 슬픈 일은 함께 동감하고 위로하며 살아온 삶이 우리 민중의 삶이고 恨을 안고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참 많이도 변했다. 4.16 사건을 보며 온갖 조롱과 아픈 말들을 쏟아내던 정치인들을 비롯해 상식을 벗어나 아프고 슬픈 말들을 뱉어내던 사람들을 목도하며 참 많이도 슬펐던 기억이 다시 살아 움직인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을 작가들의 기억에 각인시켜두었다. 마지막으로 이 글에 가슴에 박힌다.
 
“조계산의 바람으로 다소나마 가슴을 헹구면 새 빛이 들 것 같았다”(p9. 정채봉).
 
가슴을 헹구어내는 일이 쉽지도 않거니와 또 금방 헹굴 일이 많아지는 이 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헹구고 싶은 욕구가 불같이 일었다. 가슴을 헹구고 나면 깊은 숨을 가슴 깊이 들이 쉴 수 있을까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건 어쩔 수 없는 듯하다.
 
이제 깊은 숨을 들이 쉬고 우리의 몫이 무엇인지 얼마나 남은 것인지... 이 책을 읽는 모든 이들이 마음이 예뻐지길 소망한다.
 
최태관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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