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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읽다
강옥지  |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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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5월 14일 (금) 23:24:10
최종편집 : 2021년 05월 14일 (금) 23:27:02 [조회수 : 27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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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를 읽다

<광야를 읽다>, 이진희 지음, 두란노

이 책은 광야 전문가로 불리는 저자가 직접 광야를 경험하고 답사하며 얻은 지식과 지혜를 지금도 힘겹게 인생의 광야를 지나고 있는 독자들에게 조곤조곤 전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감동하여 밑줄 그었던 문장들로 짧게 글을 하나 만들어 보았다.
  
인생이 산을 오르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별로 이룬 것이 없는 우리는 실패자이다. 그러나 광야를 무사히 지나는 것이 성공이라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다. 우리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보다는 광야를 지나는 것과 더 닮아있기 때문이다. 
  
결혼하는 것이 산에 오르는 것이라면, 결혼생활은 광야를 통과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이 산에 오르는 것이라면, 아이를 키우는 것은 광야를 통과하는 것이다.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산에 오르는 것이라면, 직장생활은 광야를 통과하는 것이다.
 
인생에서 광야가 더 많이 펼쳐져 있음을 안다면, 사람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오르려고 발버둥 치지 않을 것이다. 더 빨리 올라가려고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광야인 줄 모르고 산을 오르는 것처럼 살고 있기에 힘들고 지치고 낙심하는 것이다. 

산을 오를 때는 지도가 필요하지만, 광야에서는 나침판이 필요하다. 산은 올라갈수록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만, 광야는 전체를 가늠할 수 없다. 산은 쉽게 변하지 않으나 광야는 하루가 다르게 변화한다. 오늘 있던 언덕이 내일이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광야를 지날 때는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광야에서는 성공이 목표가 아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이다. 살아남는 것이 목표이다. 광야에서는 살아남기만 해도 성공하는 것이다.
 
광야에서 필요한 것은 번쩍거리는 황금이 아니라 목마름을 해갈시켜줄 생수이다. 그러므로 황금을 팔아서라도 생수를 사야 한다. 생수 한 모금에 감사하고, 일용할 양식이 주어지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광야에서는 축복의 장맛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이슬 같은 은혜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광야에서의 목표는 오직 하나, 살아남아 무사히 광야를 통과하는 것이다. 

인생의 광야를 지날 때 만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만나와 메추라기 구름 기둥과 불기둥, 반석에서 터져 나오는 물 갈라지는 홍해와 같은 광야를 지날 때만 체험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 광야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다. 광야는 하나님의 음성이 가장 크게 들리고, 하나님을 가장 분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광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그것은 반드시 오아시스를 만날 때마다 들렀다 가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괜찮다고 그냥 지나치면 얼마 가지 못해서 쓰러지고 만다. 오아시스에 들러 충분히 생수를 마시고 쉬었다 가는 사람이 더 빨리 광야를 벗어날 수 있다.
  
사막에는 길이 없는 것 같지만 사막에도 길이 있다. 사막의 지도를 보면 거미줄처럼 길들이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지름길로 나 있지 않고 왜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 오아시스를 들렀다 가도록 길이 나 있기 때문이다. 사막의 길은 오아시스와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길이다. 어디를 가든 오아시스를 들렀다 가야 사막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광야에 무덤을 만들게 된다.
 
광야를 지날 때는 서둘러서는 안 된다. 더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겠다고 마음을 조급하게 먹어서도 안 된다. 광야를 건너는 일에만 몰두하다가 오아시스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광야는 계속 이어지고 서두른다고 해서 빨리 지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아시스에 더 많이 들르는 사람이, 오아시스에 더 오래 머무는 사람이 더 빨리 광야를 통과할 수 있다. 인생광야에서 한 주간의 오아시스는 주일과 예배이다. 
  
그리고 교회는 광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늘이 되어 주는 곳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심어놓은 에셀나무 아래서 쉬었듯이, 그리고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잠을 자며 쉬었듯이 지친 영혼들이 와서 쉼을 얻고 회복되는 나무 그늘과 같은 곳이 바로 교회이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비를 내려 주시면 광야에도 꽃이 핀다. 광야가 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광야가 살아나게 된다. 광야가 생명을 품게 된다. 사막과 같은 우리의 심령과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인생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생수가 흘러들어 오면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인생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그 길이 비록 광야와 같을지라도 축복의 길임을 다시 깨닫게 해준 귀한 책이다.

강옥지 사모 (강화 에덴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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