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첫째 주일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이 날은 교회 유아실 엄마 품속의 아가들로 부터 마음은 원이로되 선물 때문에라도 아직 어린이임을 포기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까지 교회의 모든 어린이들이 온 교회의 축복 속에서 교회의 주인공이 됩니다.
물론 5월 5일 '어린이날'과 연동하여 그 날을 '어린이 주일'로 지키는 것이지만 '어린이 주일'은 '어린이 날'을 넘어 또 다른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의 제자 됨에 있어서 어린이들의 영적 어드밴티지를 깊이 묵상하고 우리의 마음속에 억눌려 있거나 자의식에 부끄러워 숨어있는 어린이 마음을 불러내어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부드럽고 사랑스럽게 쓰다듬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린이 마음을 어떻게 불러낼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바로 노래입니다. 어린이의 중요한 특징은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항상 노래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는 덜 성장한 어른이 아닙니다. 90년대 유머로 남자와 여자 사이에 ‘아줌마’라는 신인류가 있다하듯 어린이는 '덜 성장한 어른'이 아니라 '노래하는 인간', 즉 '호모 칸타분두스(Homo cantabundus)'입니다. 슬픈 노래, 즐거운 노래의 구분을 떠나 노래하는 마음은 단순하고 깨끗한 마음입니다. 예수께서 어린이를 특별히 사랑하신 것은 그들이 언제나 노래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녔던 강원도의 초등학교는 마을에서 꽤 멀었습니다. 그래서 인근 군부대에서 제공한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는데 어린이들은 그 버스를 부대 이름을 따서 '승리버스'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티브이 만화 중에 '은하철도 999'가 큰 인기였는데 저 멀리 먼지 속에서 하늘색 버스가 등장하면 처음 본 아이가 "승리버스 온다아~"라고 소리를 칩니다. 그러면 삼삼오오 모여 있던 모든 아이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힘차게 달려라 승리버스 1호...."라고 목 놓아 합창을 했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올 때면 삼사십 분 정도 되는 거리를 친구들과 함께 걸어오곤 했는데 그 여정 가운데서도 노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우리 곁에는 늘 노래가 있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를 위해 차량운행을 하다 보면 이천 시내 곳곳에서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보고 있고 그들 사이의 적막은 어두운 새벽공기보다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져서 어린이에게 어린이다움을 강요하는 노래는 진정한 의미의 동요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어린이 마음을 위한 노래’가 동요입니다. 사실 동요라는 구분을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굳이 동요라고 부르고 싶다면 단순함과 깨끗함이라는 노래의 본질에 가까운 노래가 동요이며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모든 노래가 동요입니다.
어린이에게 어린이다움을 가르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어린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가르쳐야합니다. 지적이고 경험적이고 기술적인 것과는 별개로 그들이 어른들 보다 더 음악적입니다. 바흐는 교회음악 합창의 소프라노 파트를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남자 어린이들로 구성하였고 지금도 원전음악을 추구하는 지휘자들이 기교와 통일성 면에서 여성 소프라노에 비해서 어설픈 면이 있고 준비과정도 까다롭지만 보이소프라노의 음색을 중용하는 것은 그 소리에 노래의 본질인 단순함과 깨끗함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음악 교육은 평가하고 경쟁하는 패러다임에 갇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대회에 나가고 칭찬 받고 주목 받기 위해 노래를 배웁니다. 그래서 특출난 몇몇 아이들만 부각됩니다. 흠이 없는 것을 완벽으로 생각하기에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경직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적 바탕이 없는 일본의 영향입니다.
하지만 모든 음악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진정한 음악교육은 기독교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평가와 경쟁이 아니라 존중하고 함께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인간이기에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조금 흠이 있더라도 노래의 본질인 단순함과 깨끗함을 지켜내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렇게 가르칩니다.
1964년부터 지금까지 방송되고 있는 KBS의 ‘누가누가 잘하나’와 2005년 개봉한 프랑스 영화 ‘Les Choristes/코러스’의 노래들을 비교해 들어보시면 쉽게 이해하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누가누가 잘하나’에서는 다른 아이들 보다 잘한다고 평가 받는 아이들이 출연하고 그중에서도 더 잘하는 누군가가 주인공이 되지만 영화 코러스에서는 모든 아이들이 주인공입니다. 그 아이들의 합창 소리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극중에서 모항쥬 역할을 하며 직접 노래를 불렀던 장 밥티스트 모니에의 노래는 깨긋하고 단순하며 진실한 떨림이 있습니다. 음치인 어떤 아이는 막중한 사명감을 갖고 보면대 역할을 하고, 너무 어려서 노래를 할 수 없는 페피노는 선생님 곁에서 조수 역할을 멋지게 수행합니다.
영화 ‘코러스’에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노래들이 가득하지만 제게는 ‘Hymne à la Nuit/밤을 위한 찬가’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이 노래는 ‘프랑스의 바흐’라고 할 수 있는 장-필리프 라모(1683~1764)의 오페라 ‘이폴리트와 아리시(Hippolyte et Aricie)’에 나오는 곡을 프랑스의 교회음악가 조제프 누아용(1866~1962)이 4성부 아카펠라 합창으로 편곡한 것입니다. 가사 또한 음악과 잘 어울리고 너무나 아름다워서 제가 다시 번역해 보았습니다.
오, 밤이여, 대지 위에 잠겨다오
너에게서 흘러나오는 신비로운 마법과 같은 고요함이여
너와 동행하는 어둠의 그늘은 너무나 포근하구나
희망을 노래하는 너의 음성은 감미로운 콘서트와 같고
모든 것을 행복한 꿈으로 변화시키는 너의 힘은 위대하구나
오, 밤이여, 조금만 더 대지 위에 머물러다오
너에게서 흘러나오는 신비로운 마법과 같은 고요함이여
너와 동행하는 어둠의 그늘은 너무나 포근하구나
꿈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너였던가?
희망보다 더 달콤한 것이 정녕 너였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