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하마의 Friday for Feminism-  열한번째 이야기 

▲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 그라민 뱅크, 오른쪽 사진 창립자 무하마드 유누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그라민 뱅크를 세운 방글라데시 경제학자 유누스가 노벨 경제학상을 받고 한 말이다. ‘남자들은 적은 돈이 들어오면 마시고 노름하는 데 썼다. 하지만 여자들은 적은 돈을 아껴 아이들을 교육하고, 집안을 돌봤다. 처음에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미소 경제는 여성들을 중심으로 확산해갔다.’

1997년 우리나라가 IMF를 겪을 때, 많은 남자가 실업자가 되었다. 당시에 유행했던 노래가 ”아빠, 힘내세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같은 시기에 여성들의 취업이 증가했다. 여자들이 남자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것일까? 생활이 어려워지니 여자들은 임금이 적어도, 힘든 일이어도, 초라한 일자리라도 마다하지 않고 일했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한 내 친구는 마켓의 정육 코너에서 일했다. 쪼잔하지 않으려는 남자는 위기의 시기에 절망했지만, 여자들은 낮은 자세로 다시 삶을 준비한 것이다. 

금지곡이 되어 가사를 바꿔야 했던 조영남의 내고향 충청도의 원래 가사는 ‘어머니는 예배당에, 아버지는 술집에 갔다.’ 였다. 초라한 위치를 견디지 못한 남성과 어려움 속에 내공이 깊어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다.

최근에 세모녀 살인사건은 정말 끔찍하다. 경찰은 피의자의 사이코패스 성향을 조사중이다. 피의자의 살해 동기는 큰 딸이 만나자는 것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No 라는 응답을 들었을 때 그는 견디지 못했다. 그러나 ”왜 안 만나줘“ 보복은 적잖게 일어나는 범죄의 유형이다. 남성들은 여성이 자신을 거부할 때 견디지 못한 것이다. 어쩌다 이런 남성성이 생겨난 것일까? ‘모욕을 버텨내지 못하는’ ‘NO를 견뎌내지 못하는’ ‘자신이 중심이 되려는’ ‘지배하려는 성향의’ 남성성.

페미니즘은 오랫동안 어떻게 여성성이 구성되었느냐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짚어왔다. 여성다움을 성찰하고 비판하려 하니 ‘모성비판’ ‘탈 코르셋’ 등의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어찌 여성성뿐이겠는가? 그것의 대척점에 있었던 남성성도 시대적으로 구성되었다. 

▲ 근대 남성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 로빈슨 크로스.

 플랭클린은 ‘남성성 정의의 변화(1984, The Changing definition of Masculinity)’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시대별로 변화되어왔는가를 보여준다. 고대의 남성다움은 육체적 힘, 성적 능력이 기준이다. 중세시대의 남성성은 신앙적 품성, 모든 계급의 속한 여성에게 너그러울 수 있는 <부드러움>이다. 식민지 시대의 남성성은 이성적, 투쟁적, 영웅주의적 성향을 띤다. 그리고 빅토리아 시대에 이러한 남성성에 대한 저항이 등장한다. 지금 현재의 남성성은 무엇일까? 경제적 능력이 아닐까? 

시대별로 남성성이 다른 이유는 그 시대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현대 남성성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었던 근대의 남성성은 먼 타국에 가서 노예를 잡아 오고, 노략질하는 전투적인 남성성이었다. <로빈슨 크루소>가 보여준 남성성은 대표적이다. 그의 생존방식은 ‘예스와 노’가 공존하는 가족, 친구와의 관계와 소통이 아니라 자연과 원주민을 지배하는 남성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모든 것이 그의 통제 아래 움직였다. 게다가 그가 섬에 난파된 이유는 노예농장주인으로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가 생겨난 일이다.

그렇다면 ‘왜 안 만나줘’ 범죄는 왜 일어난 것일까?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Yes’를 들어야 능력 있는 남자라고 하는 근대의 남성성 신화가 여전히 유령처럼 작동해서가 아닐까? 남성성을 지배력, 타인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능력이라고 보는 시대착오적 생각 때문이 아닌가? 여자들은 탈코르셋을 하며, 내면의 중요성, 내가 누구인가를 다시 물으며 전형성에서 탈피하고 있는데, 남성은 여전히 고리타분한 가치에 매달려 있어서가 아닌가?

여성들에게 ‘No’ 라고 단호하게 말하라고 한다. 그러나 ‘No’를 자신에 대한 인격모욕이나 거부로 여기는 남성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 직진은 하는데 후진기아가 없는 망가진 자동차처럼 남성성을 훈련받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기자들 앞에서 자진해서 자신의 얼굴을 드러냈던 세모녀 살해 피의자는 결국 그 주변의 모든 사람도 함께 수치와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갔을 것이다. 그것은 참회도 뭐도 아니고 여전히 분노에 찬 또 다른 복수였다. 내 가슴도 아렸다.

▲ 남성 자살률 (전세계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자살률이 높다. 한국은 3배정도)

초기 여성운동이 일어날 때 남성들도 함께 남성운동을 펼쳤다. 그들은 전형적인 남성성에 문제를 제기했다. 그들도 가부장제의 피해자인 것이다. 해악한 남성성은 지배와 정복을 중요가치로 여기고, 감정을 억제하게 했으며 병들게 했다. 이러한 병적인 양태는 타인을 해치는 것 뿐 아니라 우울증, 자살률 등도 높게 나타나고 있다. 여성들은 살해당하고 남성들은 자살한다. 무거운 이야기를 또 하고 말았다. 그러나 여자들만 애써서 될 일이 아니다. 건강한 삶은 함께 노력해야 가능하지 않는가? 나에게 너의 아픔이 전해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