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사람다움에 관하여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창비

미얀마의 민주화투쟁에 관한 소식들이 연일 언론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심각한 폭력을 통한 진압 소식은 마음 한 구석을 먹먹하게 한다. 남 일처럼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역사에도 이와 같은 흔적들이 남겨져 있기 때문이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 ‘소년의 온다’의 배경이다. 역사책을 통해 다소 건조하게 이 사건을 접했던 내게 이 소설은 당시 벌어졌던 폭력과 그로 인한 파괴적 영향들을 마음으로 마주하게 해주었다. 책은 그 시기동안 나타났던 ‘인간의 폭력’과 그로 인한 ‘사람의 아픔’을 그려냈다. 그다지 긴 분량의 책이 아닌데, 읽는데 오래 걸렸다. 읽다가 멈추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마음이 아파서 무던하게 읽어갈 수가 없었다. 한 문장을 읽고, 가슴이 먹먹해져서, 책을 덮기도 했다. 폭력이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들을 마주하면서, 폭력의 여진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하는지 몸서리치게 느낄 수 있었다. 글보다 더한 현실의 무게를 감당했던 사람들이야 오죽했으랴. 

폭력이 이토록 사람을 아프게 하는데,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폭력에 무감각해질 수 있을까? 저자 한강은 인간의 폭력성을 화두로 삼고, 우리를 성찰의 시간으로 초대한다. ‘채식주의자’가 개인적 폭력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를 보여주었다면, ‘소년이 온다’는 국가적 폭력이 어떻게 개개인의 인간성을 파괴하는지와 더불어 그 여진으로 인해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폭력의 영향력 안에 휘감아 들어가는지를 보여주었다.

폭력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고유의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다.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가치를 상실하는 행위이다. 그로 인해 희생자는 사람 고유의 존엄함에 치명상을 입는다. 폭력은 행하는 자나 당하는 자나 사람 본연의 가치를 상실하게 만드는 행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역사 속에서 폭력은 그치지 않고 일어나는 것일까? 다른 무언가가 사람의 가치를 대신할 때, 폭력은 발생한다. 우리나라도 제국주의의 폭력, 이념의 폭력, 독재의 폭력 속에 노출되었던 역사가 있었다. 이 모든 일 속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있었다. 사람의 가치보다 더 중시되는 무언가가 사람을 사로잡는 일이었다.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대한 소식들을 접할 때마다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에게 사람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사람의 가치를 귀히 여기는 만큼 폭력을 거부할 수 있다. ‘소년이 온다’는 세상 속에 만연한 폭력들을 발견하게 해줌과 동시에 사람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다. 아무리 소소한 인생일지라도 누군가의 폭력에 의해 무너지게 해서는 안 된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러한 폭력은 하나님 사랑, 서로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떠난 타락의 현상이다. 하나님과 그가 지으신 사람의 가치를 상실한 시대에서 벌어지는 행위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그가 지으신 사람을 귀히 여기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 ‘자본보다 사람이 우선인가, 이념보다 사람이 우선인가, 다스림보다 섬김이 우선인가.’ ‘소년이 온다’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만연한 폭력성 속에서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가치를 깨닫고, 사람을 귀히 여기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폭력성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는 않을까? ‘소년이 온다’는 인간의 거대한 폭력성 앞에서 사람다움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요청한다. 사람이 그래선 안 된다는 양심. 사람다움을 지키기 위해 폭력 앞에 저항하는 양심. 그것이 거대한 폭력성 앞에 공동체가 사람다움을 지킬 수 있는 길이라고 말한다.

폭력의 세상 속에서 이를 거부하고, 이에 저항하며 산다는 것은 분명 무력해 보이는 일이다. 십자가로 향하신 어린양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신앙의 여정을 걷는 이들에게 추구되어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다는 것은 결국 사람다움을 이루며 살겠다는 것과 그리 멀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부터는 위로부터 임하는 은총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사람다움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며 살아간 이들에게 부활의 아침을 마주하는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정승환 목사 (한우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