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노동’만 하고 있지 않는가? 

<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지음, 한길사, 2020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상 큰 용기가 필요하다. 문체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지만 사상적 깊이를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인간의 조건』을 다시 읽는 것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또한 책임적 존재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날 현대사회를 돌아보면 ‘노동’을 매우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노동을 하고 싶어도 쉽사리 취직이 되지 않으며 그로 인하여 많은 청춘들이 상실감을 겪고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좋은 여건을 보장하는 노동의 자리를 희망하게 된다. 문제는 여기서 실존은 들어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저 자본의 위치에서 사유하고,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고 또한 현실적인 것이라 여기고 있다. 물론 이런 말이 틀리다고 할 수 없고, 실제로 굉장히 정답이다. (아무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은 그렇다고 말하기 때문이고 다들 인정하는 부분이 많지 않겠는가)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에서 3가지 형태의 개념을 주장한다. 그것은 “노동, 작업, 행위”다. 그녀는 『인간의 조건』과 『정신의 삶』을 『전체주의의 기원』으로 이어주면서 삼중구조의 형태를 이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그녀의 스승이 칼 야스퍼스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야스퍼스의 영향이 짙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저번 칼럼에 칼 야스퍼스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바라보는 세계정위”에 관해 서술한 적이 있다. 실제로 칼 야스퍼스는 『철학』이라는 책을 쓰면서 크게 “철학적 세계정위, 실존조명, 형이상학”을 주장했다. (한국어 단행본으로는 철학Ⅰ, 철학Ⅱ, 철학Ⅲ으로 출판되어 있다.) 

그와 비슷하게 한나 아렌트는 자신의 세계를 설명하는 세계정위로서, 생물학적 삶을 연장하기 위한 “노동”을 그리고 노동하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실존을 찾아 의미를 가지는 “작업”을 그리고 더 나아가 형이상학적 사유가 포함되는 “행위”를 주장한다.

칼 야스퍼스의 세계정위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관한 정위”이다. 그런 점에서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노동’이라는 세계정위를 이루어 낸다. 왜냐하면 노동 없이는 삶을 영위 할 수 없기 때문이며 다들 한번 정도 하는 말처럼 “다 먹고 살려고 하는 짓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노동하는 동물’을 넘어서 그 속에서도 자신이 하는 행동에 대한 의미를 찾고자 한다. 그야말로 ‘실존조명’의 순간이다. 자신의 실존을 찾는다는 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삶을 위한 노동만이 아니라 거기에 자신의 의지와 의미, 또는 이유를 찾고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렌트는 인간이 ‘작업’을 넘어서 ‘행위’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행위는 실존조명의 빛 속에서 형이상학적인 사유로 나아가는 것이다. 형이상학적 사유라고 말하면 되게 두루뭉술한 서술 같지만 개인적으로 이 말을 ‘책임적 사유’라고 말하고 싶다. 

한나 아렌트는 언제나 정치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전체주의적 사고’를 경계한다. 그 이유는 전체주의적 사고로 인하여 초래한 인간의 도구화, 또는 사유의 불능성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자세한 내용은 독자가 직접 읽어보는 것으로 귀한 체험을 하길 바라며, 최소한 오늘날 노동하는 우리가 그리고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어떤 세계를 지향해야 하는가 하는 지점에서 이 책을 읽어보기를 바란다.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한 실존의 사유 없이는 ‘행위’ 할 수 없음을 통해서 책임 있는 삶과 더불어 ‘상식’으로 여겨진 모든 전체주의적 사고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경우(대학원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