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천국

<제국과 천국>, 브라이언 왈쉬, 실비아 키이즈마트 지음, 홍병룡 옮김, IVP, 2011년

교회는 가난하고 병들고 외롭고 지친 자들을 위로한다. 진심으로, 열심히 위로한다. 그런데 위로만 한다.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고, 자유롭게 하고, 다시 보게 하신 그 대상들을 우리는 위로한다. 무엇이 그들을 가두었는지, 무엇이 그들을 누르고 병들게 했는지 좀처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모두 다 ‘견딜만한 시험’ 일 뿐이다.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저 교회 밖의 일로 치부된다. 교인들의 소비행위가 자연을 끝장내는 기업을 지탱하고 있는지, 교인들이 뼈가 닳도록 일해도 먹고살기 힘든 분배 구조 속서 신음하는지, 도통 관심이 없다. 눌린 자들, 갇힌 동물이 사나워지듯 사나워진 사람들 속에서 악다구니를 하다가 속절없이 죄를 짓는 마음도 모르고 늘 같은 어조로 회개를 말하니 교회는 죄의식의 하수가 되었다. 

바울 사도가 지금 우리에게 서신을 보낸다면 어떤 말들을 적어서 보낼까? <제국과 천국>은 이 질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저자는 군사력, 경제력, 주입된 신화와 권력이 지탱했던 바울 당시의 로마제국과, 인간을 상품과 이미지를 소비하는 단위로 환원하고 대상화하는 지금의 세계를 견주어 말한다.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골로새서가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그것을 오늘의 우리는 골로새서를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것을 위해 구약을 자신의 시대상황에 맞게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하여 ‘탈굼’을 썼던 옛사람들처럼 저자는 골로새서를 지금의 시대상황에 맞게 적용하여 재구성 한다. 

골로새 사람들은 바울의 편지를 가이사의 통치에 반하는 예언자적 증언으로 여기고 있었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가 로마 사회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위협하는 행위임을 알고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 우리의 교회는 누구에게 어떤 위협이 되고 있을까? 각종 미디어는 재력과 명예와 권력을 취하고 그것을 소비로 증명하라고 종용하는 자극적인 목소리로 가득하다. 돈과 권력과 명예는 예수께서 마귀에게 받은 시험의 문제였고 예수님은 그것들을 모두 뿌리치셨다. 교인들이 예수께서 결연히 거부하신 것들을 삶의 목표로 삼은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것들을 복의 증거로, 기도의 제목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이미 제국을 위협하기는커녕 제국을 지탱하는 존재가 된 것이겠다. 

착취의 경제가 세계를 유린하는 동안 기독교는 제국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제국에서 안녕을 누리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런 존재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소비주의 문화에서 편안함을 느껴서는 안 된다면, 우리의 ‘안녕’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책의 뒷부분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저자는 제국을 뒤집는 탈퇴, 공동체, 해방, 고난의 윤리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당신의 삶을 왜곡하는 권력과 돈, 천재와 전쟁, 바깥 공간과 내적 공허의 불경한 동맹들로부터 탈퇴하라. 
-당신이 어쩔 수 없이 특정한 생활 방식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당신이 제국의 포로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폭력과 이기심, 자아도취와 자기폐쇄가 만연된 세상에서 공동체를 세우고 지탱시키는 것은 바로 사랑이다. 
-좋은 소식을 선포하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될 것을 예상해야 한다.

책에는 위의 내용에 대한 동기부여와 적용이 자세히 담겨있다. 책을 읽으며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을 구체적으로 그리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김국진 목사 (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