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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복음은 없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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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4월 17일 (토) 23:30:53 [조회수 : 1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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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장 6-10절

다른 복음은 없다

 

가. 다른 복음은 없다.

7절a, “다른 복음은 없나니...”

* 본문은 그리스도를 떠나 쉽게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에 대하여 바울이 경고한 말씀이다. 참 구원의 길을 버리고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는 것은 위험하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9절)라고 하였다.

* 본문 6절의 ‘다른’(헤테로스) 복음은 이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특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6절)인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 종교다원주의는 현대사회에서 우상숭배의 대표적인 전형이다.

* 그리고 7절의 ‘다른’(알로스) 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질적이 차이가 있는 이단사상을 가리킨다. 그들의 목적은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7절)에 있다. 여기서 ‘변하다’(메타스트레포)는 ‘왜곡하다’라는 말이다. 이단은 진리를 왜곡하여 그리스도 대신 교주를 신격화하고 회중으로 하여금 교주를 섬기게 한다. 다른 복음은 없다.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따라야 한다.

 

나. 주의 은총을 오해하면 안 된다.

6절,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 성도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기독교는 은총의 종교다. 은총을 떠나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그런데 은총에 대하여 오해하는 것이 문제다. 첫째 오해는 ‘은총 무용론’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은총을 이해하지 못하고 율법주의로 되돌아가는 오류를 범하였다.

* 둘째 오해는 은총이면 다 된다는 ‘율법 무용론’이다. 초대교회의 많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율법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마5:17)라고 하셨다.

* 은총에는 칭의의 은총과 성화의 은총이 있다. 인간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어차피 칭의의 은총이 필요하다. 그러나 칭의는 하나님의 의를 따라 의롭게 살려는 믿음(성화)을 통해 가능하다. “오직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2:4). 칭의의 은총이 전부가 아니다.

 

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굳게 붙들라.

7절b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굳게 지켜야 한다. 정통교회 안에도 이단적인 생각들이 많이 내재되어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지켜야 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칭의가 목적이 아니라 죄의 권세를 이기고 의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4절)라고 한 말씀을 참조하라.

*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롬1:17)라고 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쉬네)는 칭의가 아니라 의로움이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을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성숙한 믿음으로 인도하는 시금석이다.

* 그리스도의 복음을 올바로 따르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리스도를 믿음’에서 ‘그리스도의 믿음을 따르는 것’으로 신앙생활의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갈2:16)라고 한 것은 ‘그리스도의 믿음으로써’(소유격)라고 읽어야 한다.

 

라. 복음의 의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10절,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를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좋게 하다’(페이도)는 ‘믿다’ 또는 ‘기쁘게 하다’라는 말이다. 즉 하나님을 믿고 확신하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종교행위를 넘어 의를 이루어야 한다.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기쁨이 우리에게 돌아온다. 하나님이 환하게 웃으시면 우리에게 복이 된다(민6:24-26, 아론의 축도 참조). 하나님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라고 하셨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복이 온다.

* 소위 ‘삼박자 구원’은 오해다. 실은 정신을 바르게 하고 범사를 바르게 해야 강건한 삶이 된다는 말씀이다(요삼1:2). 기복신앙은 사람을 기쁘게 할 뿐이다. 단순히 종교행위를 강조하는 기복신앙이나 교회성장신앙은 잘못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우리에게 필요한 복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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