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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지상주의를 경계한다올바른 성령운동 수용해야, 이용도 목사님을 조금 언급한 옛 글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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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11월 17일 (금) 00:00:00 [조회수 :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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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은사주의에 대한 몰이해에서 벗어나
올바른 성령운동 수용해야

                      특별기고 기독침례교보 94년 7월 3일 6면

2000년의 기독교회사가 명백하게 증명하다시피 요즈음 우리 한국의 개신교계에서도 사이비 이단 문제에 있어 옛날 서구교회에 존재하였던 그러한 식의 전철을 다시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료되어서 지난 몇년전 부터 적지 않은 우려와 불만을 느껴 오고 있다. 요즈음 우리 한국 개신교계는 사이비 이단 문제에 있어서 잘 하고 있는 부분도 많다고 생각되지만 옥에 티라고나 할까 소위 은사주의에 대한 무지와 이해력 결핍으로 주님의 사역을 본의 아니게 가로막고 있는 측면도 적지 않다고 판단된다.

교권의 제도화

그런데 그러한 것들 중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얼마전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총회 산하 사이비이단문제상담소에서 발간한 "상담소자료집4 사이비이단에 대한 대책과 Ⅱ"가 지적하고 있는 일부의 인물들에 대한 그들의 부정적 평가일 것이다. 그들은 대한기독교감리회가 일제하 감리교회의 삼대 성좌 중의 하나로 꼽고 있는 이용도 목사, 현 강남대학교의 설립자 이호빈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와 한신대학의 설립자 김재준 목사이다.
위의 이용도 목사와 이호빈 목사는 성령운동가였고, 김재준 목사는 송창근 목사와 더불어 자유주의 신학의 거성이었다. 그런데 교회사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가 은사주의로 충만한 카리스마적인 소단위 회중 중심에서 교리와 신조와 신학만을 강조하는 교권 위주의 제도화 되고 조직화된 교단주의로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그때부터 교회와 사회가 부패 타락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의 괴이한 법칙처럼 되어 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자연법칙같이 발생하는 것일까 ?

교리지상주의의 희생자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각도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연구를 하여 그것에 대한 정확한 원인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에서 이러한 작업을 전부 다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면과 시간과 능력이라는 면에 있어서 다소간 벅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제한된 조건들만을 가지고서도 위에서 제기한 문제의 지엽적인 것들은 차치하고서라도 그것의 근본적 해결책은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생각된다. 그런데 그것의 제1차적 원인은 교리지상주의라고 확신한다.

필자는 작금 한국 개신교계에서 사이비이단으로 인식되고 있는 성령운동가들인 고 박덕종 목사, 예태해 목사 그리고 그 밖의 목사들에 대해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답답함과 연민을 느껴오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분명히 사이비이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되어 버린 것에는 그들의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예컨대, 즉각적인 반론과 변호, 적극적인 홍보와 대응책 마련 등등의 부재가 그것이다.

그들이 사이비이단으로 정죄받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장 큰 이유는 교리지상주의라고 생각한다. 즉 그들은 교리지상주의의 희생자들인 셈이다. 그러면 필자는 사이비 이단학의 전문가나 권위자라서 이러한 판단을 내리는 것인가 ? 결코 그렇지 않는다. 필자는 단지 무명의 한 평신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한국 교회를 사랑하는 이름없는 평신도의 진실한 권고와 같은 것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도 나름대로 성서와 신학과 교회사를 알기 위해 오랜 세월 노력해 오고 있고 그 결과 이 방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식을 쌓았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필자 역시 사이비 이단 분별문제에 있어서 결코 문외한만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그리스도교의 정통 교리와 신조를 무시하는 무지한 사이비 광신자가 절대로 아니다.
필자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도신경과 고대교회의 에큐메니칼 신조들 즉 니케아, 콘스틴티노플, 에베소, 칼케돈 신조들을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것들로 간주한다. 곧 필자는 성 삼위일체에 관한 정통 교리와 신조를 충실히 믿고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위에서 지적한 것들을 어떤 사람이 부정하지 않는 한 그를 결코 사이비 이단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또한 진실한 그리스도교인이라면 그 누구라도 이것을 부정할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목사들도 이러한 것들을 결코 거부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사이비 이단학의 권위자로 정평이 나있는 월터 마틴(Walter Martin. 미국 CRI 소장) 박사는 사이비이단은 나쁜 열매가 교리적, 신학적, 윤리 도덕적 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고 하였다. 필자는 사이비 이단 규정문제에 있어서 교리적이고 신학적인 면보다 윤리 도덕적인 면에 그 비중을 더 두고 있다. 왜냐하면 바른 교리와 신조와 신학에 기초한 신앙은 그 열매가 나쁠래야 나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성서도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분명히 증언하고 있지 않은가 ? 즉 하느님의 말씀은 거짓 예언자와 이단자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써 교리적인 측면 보다도 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고 이것과 유사한 성구는 그 밖에도 대단히 많다. 그리고 진실한 소명 속에 사이비이단이란 있을 수 없다라고 생각된다.

교리지상주의의 정의

그러면 교리지상주의란 무엇인가 ? 필자는 그리스도교에 있어서의 가장 중요한 것들로 간주되는 것들 외에 은사주의에 대한 전반적인 몰이해로 인하여 특정 교파나 특정 교단의 교리와 신조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아서 다소 지엽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어떤 사람이나 어떤 집단을 사이비이단으로 정죄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제 여기에서 필자의 사적인 신앙 체험담을 고백해야만 할 시점이 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는 체험과 권능의 종교이지 이론과 두뇌의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파스칼도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하느님이 아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

필자는 불신자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하면서 방황도 많이 하고 비관도 많이 하다가 24세에 그리스도교에 가까스로 입문하고 나서도 신앙을 가지지 못해서 오랜 시간 번민도 많이 하고 갈등도 무척 겪었다. 입문 전에 필자는 칸트, 쇼펜하우어, 니체, 사르트르, 까뮤 등의 사상에 대단히 오염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다녔지만 신앙을 가지기가 대단히 어려웠다.

특히 전지전능 지선지미하신 하느님과 이 지구 상의 악, 고통, 불행, 재앙 등의 부조화는 필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존재와 선하심, 내세의 존재, 악마의 존재 등등에 관해서 더욱 더 회의에 빠지게끔 만들었다. 그때 필자는 성서를 도저히 믿을 수 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필자를 더욱 더 괴롭고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은 무슨 도살장의 종교같이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잔인한 방법만으로써 우리 인류를 꼭 구원해야만 하셨을까 하는 것이었다.

예수라는 인물이 실제적으로 역사 안에서 존재했었는가 만약 존재 했다면 2000년 전의 예수와 필자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고 그 예수의 십자가가 어떻게 필자를 구원할 수 있는가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고뇌를 많이 했다. 즉, 필자는 이 경험을 통해서 불신자가 성서 속의 예수를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로써 인식하고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로써 고백하는 것이 문자 그대로 완전히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뼛 속 깊이 깨달았다.

그러다가 후에 필자의 조그만 신앙체험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는데 이것을 통해서 체험적 신앙의 중요성과 가치를 철저하게 인식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서도 믿어지게 되었다.

인간 이성 초월하는 성령의 역사

정통 개신교 신학은 루터의 비텐베르크 성당 누각에서의 체험과 웨슬레의 알더스게이트에서의 체험에 상당한 중요성과 가치와 의의를 부여해 오고 있다. 물론 필자를 루터와 웨슬레에 비교해 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필자의 체험도 루터와 웨슬레의 그것들만큼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체험을 얻었던 성령운동모임에 다년간 계속적으로 참여했다. 모임 참여 중 책을 통해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너무나도 많이 배웠다. 그래서 그것들 중의 한가지만 소개한다면 성령의 9가지 은사 가운데 하나인 예언의 은사이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계에서 사이비 이단으로 규정된 성령운동가들인 고 박덕종 목사, 예태해 목사 등의 집회에서 발생하고 있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들이 과거의 필자의 모임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나곤 하였다. 그러나 한국의 신흥종교 연구가이자 사이비이단 문제전문가라는 고 탁명환 씨는 이러한 현상들을 최면술에 의한 것이라고 한 마디로 매도해 버렸다.

필자는 성령의 역사의 외부적 표출은 여러 가지 형태와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파악하고 있고 확신하고 있다. 또한 성령의 역사의 외부적 표출은 인간 이성으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현상으로 발생할 수 있고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형태로 일어날 수 있다.

그러므로 외부적인 현상만을 보고서 사이비 이단 규정을 하려 들지 말고 그러한 현상들이 일어나는 곳의 사람들이 성 삼위일체의 제2위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고백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사이비 이단 여부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최면술을 통해서는 절대로 신앙을 가질 수 없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신앙을 가질 수 있는데 이것은 역시 개신교의 정통 교리가 아니겠는가 ?

삯군과 거짓 예언자

성서는 경고한다. 세상 종말 때까지 목자와 삯군이 있다라고. 또한 예언자와 거짓 예언자도 존재한다라고. 그러므로 우리는 삯군과 거짓 예언자를 철저히 배격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중생을 체험해 보지 못한 목사, 신부, 감독, 주교, 신학자들을 단호히 거부해야만 할 것이다.

그들은 죄의식과 악마와 불의와 투쟁해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자들이다. 그들은 거의 모두 모든 종교에 구원에의 길이 열려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물질욕과 명예욕과 출세욕에 사로잡혀 성직이라는 허울좋은 감투를 쓴 자들이다. 그들은 두뇌와 이론만으로써 신앙에 관한 모든 것을 이해하려 들고 설명하려 드는 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소위 은사주의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밖에 또 다른 부류의 삯군과 거짓 예언자가 있다. 그들은 중생을 체험하고 나서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에 처음엔 진실하게 응답했으나 중간에 자기들의 세상욕, 교만, 표리부동, 잘못된 교리 등 으로 인해 스스로 타락해 버린 자들이다. 성서는 이러한 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언을 했고 악마를 추방했으며 기적을 행하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영원히 버림받게 된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무리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그들의 교리나 신조 그리고 신학을 강조하고 자랑한다는 점이다. 앞으로 이러한 자들이 한국교회를 장악하려는 징후가 보이는 것 같다. 만약 그들이 교회를 점령하게 되면 니체는 무덤 속에서 일어나 다시 한번 교회에서 하느님의 송장썩는 냄새가 진동한다라고 세상에 외쳐야만 할 것이다.
이용도 목사는 1930년 초에 "악한 교회가 강단에서 교리와 신조를 설명하며 그것을 자랑으로 삼되 그리스도의 마음은 잊어버리었구나" 라고 고통과 비애 가운데 절규하였고, 또 다른 곳에서는 "아 ! 이 조선의 영들을 살펴 주소서, 머리 속에 교리와 신조만이 생명없는 고목같이 앙상하게 뼈만 남았고, 저희들의 심령은 생명을 잃어 화석이 되었으니 저의 교리가 어찌 저희를 구원하며 저희의 몸이 교회에 출입한다고 하여 그 영이 어찌 무슨 힘과 기쁨을 얻을 수 있아오리까. 교회의 표면에 쳐놓은 신성의 막, 평화의 포장을 걷어 치우고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분쟁, 시기, 냉정, 탐리, 마가 횡행하오니 어찌 그 속에서 천국을 찾아 보며 또 신성을 보겠나이까. 어서 주의 신령한 손이 일하여 주시고 진리와 사랑의 성신이 충만히 임하여 주옵소서. 아멘!" 하면서 한국 교회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다.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서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 교권에 의지하여 교리나 신조만 강조하게 되면 점차적으로 성령의 역사가 약화되다가 결국에는 소멸되고 거기에 수반하여 교회와 더불어 사회도 모든 부문에서 사장되어 가는 것을 분명히 배웠다.

교리지상주의에 대한 경계

이제 한국 교회에 교리지상주의를 경계해야만 할 때가 드디어 왔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교리와 신조와 신학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사도들과 교회의 전통이 전해준 교리와 신조를 잘 지켜야만 하고 올바로 후세에 전해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그것들을 우리 시대의 사상과 문화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것들에 적용시키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시점에서 교리지상주의에 대해서 커다란 경각심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 앞으로 한국 교회가 교리지상주의에 빠지게 되면 성령의 역사가 서서히 사라지게 되고 교회는 상류층이 전유하는 사교장과 삯군과 거짓 예언자의 사적인 소유물로 전락하게 될 것은 불을 보듯이 너무나 뻔한 일이다.

필자 주 / 글을 일부 수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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