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봄에 취하여!
황은경  |  hallofreund@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21년 04월 14일 (수) 18:20:25 [조회수 : 3464]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텔레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일주일 사이에 온 천지가 새롭게 바뀌고 있다. 지난 주일  비가 온다는 소식에 지역에 벚꽃으로 가로수를 만들어놓은 저수지를 예배 후 일부러 찾아갔다. 제법 커다란 저수지의 산자락을 제외한 부분에 모두 벚꽃을 심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봉오리가 꽤 굵고 커져서 탐스러웠다. 꽃구경을 하는 이쪽에서 저수지 건너편을 바라보니 무릉도원에 온듯 빼어난 경치였다. 잔잔한 물과 우람한 산, 햇빛을 받은 분홍 벚꽃잎이 환하게 피어남이 황홀 그 자체였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자연의 놀라운 변화, 새 계절의 꽃잔치를 맘껏 누리고 있으니 이 봄이 어찌 아름답지 않으랴.

복숭아가 유명한 지역이라 우리 마을도 햇볕 잘드는 산 아래는 복숭아가 주요 과수다. 거기다 지난주에는 필듯 말듯한 봉오리가 일주일 사이 만개하여 산 전체가 분홍색으로 물들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고 환하여 어떻게 하면 휴대폰 안에 저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이 들기도 하였다. 벚꽃의 분홍과 복숭아의 분홍이 같으나 다르게 자신의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색감이 서로 비숫하여 붓을 잘못 놀리면 분명 뭉개질 수 있겠으나 봄볕과 주위의 파릇파릇 돋아나는 나무들의 새순 덕에 그들은 자신들의 모습을 자신만의 색으로 멋드러지게 표현하고 있다. 오랜 세월 지켜온 그 처절한 노력이 이 봄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으며 그 덕에 나의 눈과 마음은 호사를 누린다.

작년 늦가을, 마당 한가득 화초로 발디딜 틈 없이 사시던 분이 타 지역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그 화초들을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셨는데 나도 그 이웃에 끼였다. 날을 정하여 차로 한가득 실어와 마당 화단과 뒤안과 담장 아래에 이름표 없이 마구 심었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 겨울이라 동사를 면치 못했을 것이라 여겼는데, 어머나! 나의 걱정과는 달리 여기저기 앞다퉈 얼굴을 디밀고 나와 화단과 뒤안과 담장 밑을 보는 재미에 푹 빠지게 한다. 그저 심기에 몰두하느라 꽃들을 너무 가까이 심어놓아 상서화 사이로 돌단풍이 올라왔고, 백합 사이에서 금낭화가 피었다. 작약과 무스카리가 얽혔고, 히야신스와 원추리가 어우러지고, 개나리 사이로 라일락이 얼굴 내밀기에 힘쓰고 있다. 그리고 냥이들의 화장실이 된 화단이 녀석들의 대소변으로 파헤쳐져 그것들을 또 복원하느라 연신 들여다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눈에 띄는 잡초도 한번 더 뽑게 되면서 정리정돈까지 되니 일석이조의 효과다. 막 뿌려놓은 양귀비 씨앗도 뿌린 씨만큼 발화하였다. 잘 자라 준다면 올 여름엔 알록달록 화려한 양귀비로 길가던 마을 사람들의 발길을 붙들 수 있으리라. 

제법 세찬비가 내렸다. 강수량도 많았다. 또다시 마음을 졸이며 맞는 비다. 봄비가 아닌 여름날 장마처럼 내려 작년의 우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역시 수마의 잔상은 깊고도 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비를 맞은 대지는 움틀듯 말듯, 필듯 말듯, 움츠린듯 터트릴듯한 새순들을 일제히 열어제끼기 시작하더니 오늘 연회를 참석하러 가는 평택간 제천 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의 산들은 깊은 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어도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럴땐 음악이 빠지만 앙꼬없는 찐빵과 같다. 배경음악으로 잔잔하고 조용한 클래식을 트니 더없이 낭만적이고 감상적이다. 혼자 누리는 여유의 끝판이다. 서울에 있었을 땐 일부러 찾아다니며 보는 경치였는데 아래로 내려오니 오고가는 계절이 날마다 해마다 새롭게 다가와 만끽하게 한다. 행복이 별건가. 있음과 없음을 알아차리고 누리는 것이지. 그런면에서 난 얼마나 복받은 인생인가.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을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내 앞에 펼쳐진 모든 것에 적용한다면, 파랑새는 지금 여기에서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미 와 있는 화사한 봄속에 넋놓고 취해봄도 나쁘지 않으리. <끝>

황은경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79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 100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최대 20000byte)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