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
고대교회에서는 주교를 평신도들이 뽑았다(2)그레고리 1세는 교황 칭호도 거부, 그레고리 7세 이후 교황이 주교 임명
이용섭  |  lys979111@naver.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06년 11월 17일 (금) 00:00:00 [조회수 : 1415]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고대교회에서는 주교를 평신도들이 뽑았다(2)
주교선출제도 교회 공동체로 돌아가야 마땅


초대교회로부터 약 1천년 동안 평신도들이 주교(감독)를 뽑았다는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 천주교인(성직자+평신도)들에게는 참으로 괴로운 문제이다. 올 3월11일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www.cbck.or.kr) 자유게시판에 “사도들로부터 내려오는 관습이나 제도를 제 멋대로 뜯어고쳤던 사람들은 도대체 그 무슨 권한으로 그러했었느냐?”라는 취지의 글을 올리니, 작금 한국에서 천주교회 교리의 수호자요 공의회의 무류성과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의 변호자를 자처해 오고 있는 조모<라는 자> [씨]가 필자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이자는 현직 공무원이고 나이는 동갑이며 인터넷상에서 교리와 신조와 신학에 밝은 자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의 영역 고대 교부문헌들을 거기 자유게시판에다 연속 퍼오면서 핵심 부분들만을 번역했다. 물론 졸역이겠지만 그 의미는 충분히 전달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옛날 옛적에 평신도들이 주교(감독)를 뽑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온갖 추잡하고 비굴한 작태를 계속 행하였다. 그래서 유세비우스(에우세비오)의 ‘교회사’의 영역까지 그곳에다 연속 퍼오니 제주도의 어떤 천주교 신자는 그에게 확인 사살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하였다. 그러고도 그는 자신의 무식함을 인정할 줄 몰랐다.

그래서 후대에 대교황이라는 칭호가 붙은 그레고리우스(<그레고리>. ?~604년 사망) 1세의 영역 서신까지 퍼왔다. 그 서신에서 그레고리우스 1세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편적(우주적. 전체적) 주교(교황)라고 부르는 것을 분명히 거절하면서 자신은 보편적 주교, 즉 교황이 아니라고 확실하게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자신이 보편적 주교라면 자신이 무너지거나 타락할 경우 보편(전체)교회도 함께 무너지거나 타락하게 된다고 주장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사례들을 ‘비오 9세’와 ‘비오 12세’의 과오들에서 명백히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1세는 6세기 말에 ‘적그리스도의 시대가 손 가까이에 왔다.’(서신. Book. v,21)고 하면서 그 시대의 풍조에 대해 한탄도 여러번 하였다. 라틴어로 ‘O tempora! O mores!”인데 그 뜻은 ‘오 시대여! 오 풍속이여!’라고 한다(그레고리우스 1세 서신. Book V, 20. 이상 Book. VIII, 30, V, 43, 18, 19.).

그러자 이 자는 3월13일 그레고리우스 1세를 그레고리우스 7세(1022~1085년)로 착각하여 1077년 1월27일의 소위 ‘카놋사의 굴욕’ 사건에 관한 자료를 가지고 나타났다. 이것은 이 자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 누구라도 역사 책을 통하여 쉽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자의 억지 사과를 받고 그 논쟁을 마무리지었다.

그런데 한국가톨릭대사전은 그들의 주교직을 “5. 성령과 안수 : 감독과 장로와 부제는 민중에 의하여 선출되기도 하고(사도 6:3), 사도들이나 그 후계자들이 임명하기도 하였지만(디도 1:15), 언제나 성령의 은총을 주는 안수로써 그 직무를 수여받았고(디도 1:5 등), 성령께서 그들을 감독으로 세우셔서 당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다(사도 20:28, I 베드로 5:2). 이 안수의 예식은 단순한 축복의 뜻만 가진 것이 아니고 실제로 성령의 은총을 주는 것으로 초대교회에서부터 인정해 오고 있다. 트렌트 공의회도 디모데오 후서 1장 6~7절을 신품성사의 근거로 명시하고 있다(Denz. 1766). 여기서 가톨릭 교회의 교계제도가 그리스도교 발전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신품권을 가진 제도임을 알 수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가톨릭대사전은 평신도들에 의해 선출되었던 주교선출제도(직접선거)가 교황이나 주교들에 의해 선출되는 주교선출제도(간접선거)로 바뀐 원인과 그 과정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천주교회의 아킬레스 건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그레고리우스 7세가 ‘추기경단에 의한 교황선출제도’를 창설한 장본인이고 직접선거에 의한 주교선출제도를 간접선거에 의한 주교선출제도로 완전하고도 확실하게 바꾼 인물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물이 천주교회의 성인반열에 올랐으니 이들의 ‘시복시성제도’에도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정진석 추기경이 자신의 주교 시절인 1974년에 쓴 ‘교계제도사’(성바오로출판사) 165쪽에는 “사도들이 죽은 다음, 상주 주교들이 존재한다. 첫 주교들은 사도들에 의하여 임명되었다. 그 후에는 성직자들과 신자들이 주교를 선출하였고, 이 선출을 수도좌 주교가 인준하고 주교서품을 집행하였다. 세속 국가의 여러가지 간섭이 있었기 때문에, 11세기부터는 주교좌 성당 참의회가 주교 선출권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14세기부터는 주교의 임명과 주교서품은 교황에게 유보되었다. 이것이 현행 교회법에 수록되었는데, 다만 개별법상 예외가 있다(교회법전 제329조 2항, 제 953조).”라고 쓰여져 있다.

또한 이 책 153쪽에는 “하느님의 제정하심에 의하여 모든 주교는 동등하며 오직 교황에게만 종속된다. 그러나 신법으로는 이 두 계층 뿐이지만, 인간의 법에 의하여, 이 두 계층 사이에 다른 계층이 제정될 수 있다. 즉 교황에 의하여 어느 주교가 다른 주교보다 상급자가 될 수 있다.”고 쓰여져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상당히 정직한 편이다.

수원가톨릭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번역서 ‘신품성사’도 직접선거에 의한 주교 선출제도를 고의로 언급하지 않으려는 듯이 보인다. 이 책 24~25쪽에서 ‘로마의 클레멘트 제1서신’ 42~44장을 인용하고 있지만 ‘전체 교회의 동의’라는 말은 찾아 볼 수 없고 32쪽에서는 “신자들에 의해서 ‘뽑힌듯한’ 이 주교서품의 후보자”라는 약간 알쏭달쏭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 29쪽에서는 직접선거에 의한 주교선출제도를 딱 한번이지만 분명히 언급한다.

그러나 이 책 28쪽에는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서품식의 형태는 어떤 경우에도 바꿀 수 없다는 식으로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확언되고 있다.

필자 주, 위 글 중 <...>는 교회연합신문 발행인 강춘오가 제 멋대로 내 원고를 삭제시킨 부분이고 [...]는 강춘오가 자기 마음대로 내 원고에 만들어 넣은 부분이다.

[관련기사]

이용섭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981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