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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도 목사인가?― 그러나 생각이라고 하는 것은 하며 삽니다 ―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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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4월 07일 (수) 21:54:44
최종편집 : 2021년 04월 17일 (토) 04:35:46 [조회수 : 16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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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를 받는다고 다 목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저는 목사안수를 받았으니 당연히 목사입니다. 그러나 목사가 아닙니다. 자격이 미달이기 때문이지요. 무엇 하나 목사다운 데가 없습니다. 목사는 누가 뭐래도 신앙의 지도자인데, 저에게는 그럴만한 신앙이 없습니다. 인격도 성정도 지도자가 되기에는 한창 부족하고 알맞지 못합니다. 지식도 부족합니다. 학문을 했던 사람이니 전공 면의 지식이라면 일반인들보다는 조금 나을지 모르나 그도 같은 전공자 대열에서라면 말단을 면하지 못할 정도일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목사라면 성경지식이 많아야 하는데, 저는 그렇지를 못합니다. 많기는커녕 속된 말로 젬병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목사 됨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목사라 스스로 말하는 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글로도 쓰지 않습니다. 남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이야 막을 수 없지만, 다른 호칭으로 불러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늘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제가 성경에 얼마나 무식한가를 하나의 사례를 들어 고백하고자 해서입니다. 아니지요, 아닙니다. 아무런들 무식을 폭로하여 그렇지 않아도 바닥인 존재를 더욱 찌그러뜨리고 싶어서이겠습니까. 드리고 싶은 말씀이 따로 있는 것이지요.

어떻든 저는 지금 그 이야기를 좀 드리려고 합니다. 저는 근년에 들어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저를 하나님 아버지의 그 귀하고 거룩한 길로 인도해 주옵소서. 성삼위 하나님의 길, 아버지의 뜻, 그러니까 말씀의 길, 진리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새 생명의 복음의 길, 아버지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랑의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이에 이어 이런 기도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이러한 은혜의 길로 가는 것을 방해 하는 저 악한 마귀, 사탄이 틈타지 못하도록 지켜 보호해 주옵소서. 이미 틈타 있거든 물리쳐 주옵소서. 그리고 더 이상 죄악이 접근치 못하도록 지켜 주옵소서. 이미 지은 죄는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어 그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회개하여 사함 받게 하옵소서. 그리고 또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런데요, 문제가 되는 것은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주기도문)에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6:13)가 있지 않습니까. 그에 따른 것이지요.

무슨 말이냐고요? 웃지 말고 들어 주세요. 아, 글쎄 이를 시험에 처하지 않게 하여 주시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기도를 드린 것이에요. 시험을 당치 않게, 만나지 않게 해 주시라는 것으로 이해한 겁니다. 그런데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여기에서 ‘시험’에 해당되는 헬라어는 ‘페이라스모스(πειρασμός)’인데요,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시험’으로 ‘test’를 말하는 것과, 악한 세력, 그러니까 마귀사탄과 같은 것들로부터 오는 ‘시험’으로 ‘temptation’을 말하는 것의 두 개의 의미가 있지요. 그러니 후자는 ‘시험’이라기보다 ‘유혹’인 것이지요. 그러기에 공동번역 성경도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의 이 말씀을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고 옮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라는 마6:13의 이 말씀을 우리는 거의 그대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 기도해 오고 있는데요, 이를 새번역에서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 옮기고 있습니다. 말씀인즉슨 제가 이 새번역의 ‘주기도문’에 한번 눈길을 돌려보기라도 했더라면 이를 시험을 만나지 않게 해 주시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은 바보짓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능력이 없으면 성실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니니 이 또한 목사일 수가 없다는 증거의 하나인 것이지요.

목사라면, 더욱이 학문을 했던 목사라면 당연히 헬라어 원문을 찾아보는 것이 당연한데, 그러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의 ‘말다’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무엇일까요. ‘에이세넹케스(εἰσενέγκῃς)’로 ‘안으로 들어가다, 데리고 들어가다’와 같은 의미이지요. 그러니까 이를 우리말로 직역하면 우리를 ‘시험 안으로 들어가지 않게 하소서’가 되는 것입니다. 새번역의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가 더 이해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 옮긴 공동번역이 본래의 뜻에 더 부합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시험’을 만나지 않게 해 주시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기도를 드렸으니 그 기도가 순조롭게 나갈 수 있겠어요. 이 복잡하고 다난한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도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으셨는데 말이에요. 꼬일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그러한 기도라 해도 무익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 가르침에는 무엇인가 제가 모르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며 기도드렸는데요, 피할 수 없는 시험이 있다는 것이 기정사실이니 그 시험을 통해 인내로 연단을 쌓아 영적 성장을 이루게 하여 주시라고 기도드렸거든요.

 

 

마귀·사탄의 힘은 얼마나 셀까

 

제가 아는 어느 장로님께서는 구역예배라든가 어떤 소모임의 예배를 인도하고 마칠 때면 ‘주기도문을 암송함으로 예배를 마치겠습니다’라 하는데, 아니지요. 암송이 뭣입니까. 글을 보지 않고 외우는 것 아닙니까. 기도는 무엇인가를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온 자신의 생각을 온 몸과 마음을 다해 드리는 것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냥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생각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가 아니면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다 알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도움을 청하며 기도드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 이 장로님뿐 아니라 우리 중에도 주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를 ‘주기도文’이라고 하는 하나의 문장을 외우는 것으로 끝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데요,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이 기도를 ‘새번역’에서 옮겨 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라는 말로 시작되는데요,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라는 말에는 따로 ‘“아버지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소서’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같은 것들이 우리가 이루어 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인도와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이루어 가고자하는 소망의 핵심이고,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신 말씀의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가 바로 이런 것이지요. 여기에서의 ‘먼저’란 우리가 소망하는 그 ‘핵심’이라는 뜻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데요, 우리가 세상에서 이 같은 가장 값진 소망을 이뤄 가고자 할 때 반드시 마주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고난과 환난 같은 시련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것들은 많은 부분 ‘시험(πειρασμός)’ 중의 ‘유혹(temptation)’에 의한 것들입니다. 마귀·사탄에 의한 것들이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다 그렇지는 않다 해도, 적어도 그 악하고 추한 것들이 기뻐하는 일임은 틀림없습니다.

마귀, 사탄은 하나님의 반대편에 서서 그분과 가까워지려는 우리를 멀어지게 하려는 존재입니다. 하나님를 영화롭게,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우리의, 그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발을 걸어 넘어뜨리고, 그런 우리에게 올가미를 씌우려고 안간힘을 쓰는 존재이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들 마귀·사탄의 궤계(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혹자는 그까짓 마귀사탄이 뭐라고 그러느냐 하기도 하는데요, 아닙니다. 그것들은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그 힘이 막강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나의 힘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기도가 필요한 것이지요.

물론 우리는 그런 마귀·사탄에 초점을 맞추고 살며 무서워 벌벌 떨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나를 안아 보호해 주시고 계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니까요. 그러나요, 아무리 사랑의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당신을 개-무시하는 자들까지 보호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시험에 들지 않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시라고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이고요.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영적 만남인데, 만남이 없이는 그분과 가까워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가까워짐을, 진짜로 가까워짐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물론 하나님과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기도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서도…, 아니 말씀 없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지요. 어떻든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습니다.

 

 

맷집을 길러라

 

그런데 말씀을 지식적으로 안다 해서 그것이 믿음이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은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으니 그 말씀을 대할 때에도 성령이 도와주심으로 그것이 믿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만으로는 많이 부족합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만날 때, 더욱 친밀하게 만날 때 말씀은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하나님을 지근거리에서 만나도록 도와주시는 성령님께서 말씀 또한 말씀되게 해 주시는 것이지요.

이에 어떤 사람은 그렇다면 말씀이 말씀이 아니면 뭐냐고 하기도 하는데요, 아니지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알기는 하는데, 사랑하기는커녕 미워한다면 이는 말씀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지식에 불과한 것이지요. 실제로 사랑할 때, 그러니까 말씀이 말씀으로서 기능할 때 그 말씀은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말씀이 말씀이 되는 것을 우리는 믿음이라고 하는데요, 내가 철저하게 종이 되어 하나님을, 성삼위 하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죽도록 사랑함으로 섬기는 것을 가리켜 믿음이 좋다고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되는 것은 말씀이 말씀이 된 결과인데요, 그 과정을, 나를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의 사람이 되어, 다시 말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감으로 하여 믿음으로 굳게 서게 되면 그 막강한 마귀·사탄도 우리에게 범접하기 어렵게 됩니다. 만약 공격해 온다 해도 맷집이 생겨 끄떡없게 되지요. 그 공격이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test)이 됐건 마귀사탄으로부터 오는 유혹(temptation)이 됐건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당신의 자녀들은 저들의 공격으로부터 지켜 주신다는 것이지요.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붙잡아 주시는 하나님의 손을 놓아 버릴 때이지요.

그리고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격투기시합에서 선수가 상대방의 가장 약한 데를 노려 공격하듯이 마귀사탄도 우리의 가장 취약한 부분을 찾아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성미가 급한 사람은 그것을 파고들어 공격하고, 돈이나 성 같은 것에 약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취약점이 많은 사람은 저들의 공격이 아니더라도 스스로 무너지기 일쑤이기도 하지요.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칭찬하시고 얼마 안 있어 당신께서 유대인 지도자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라 하자, 베드로는 그리 말라 했고, 예수께서는 그런 그를 향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했습니다. 물론 베드로 자체가 사탄이라는 말은 아니지요. 그리스도의 구속의 대업을 방해하는 사탄의 궤계가 숨어 있음을 보신 것입니다. 적극적인 것까지는 좋은데 표현이 좀 그렇습니다만 덜렁거리는 데가 있는 그의 약점이 화를 부른 셈이지요. 그래도 그 정도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기는 합니다만.

그런데 정말 일을 낸 것은 예수를 판 가룟 유다였습니다. 요한복음은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13:2)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 또한 그의 취약점을 사탄은 이용한 것이지요. 그는 돈에 약한 사람이었고, 여러 가지 면에서 스승 예수를 팔만한 인격의 소유자였던 것이지요.

이처럼 마귀사탄은 인간들의 취약한 부분을 찾아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저들 악한 세력뿐 아니라 성령께서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맞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마귀·사탄의 유혹을 물리치고, 성령을 충만하게 받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철저한 종이 되어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죽도록 사랑함으로 섬기는 것이지요. 그 말이 그 말 아니냐고요? 그렇지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것이지요.

 

 

그대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

 

그런데요,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엡6:11)라고 말합니다. 전신갑주요? 그건요, 오늘날로 말하면 군인의 완전무장과 같은 것이지요.

여기에서 바울은 이런 의미의 말을 합니다. <진리=허리띠(탄띠), 의=호심경(가슴받이, breastplate), 복음=신(군화), 믿음=방패, 구원=투구>라는. 그런데 이런 것들로 마귀·사탄의 공격을 무력화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일한 공격무기로 성령을 들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를 하나님의 말씀과 동일시하고 있지요. (엡6:11-17 참조)

그런데 바울은 이를 위하여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6:18)라고 권면합니다.

저는 지금 전신갑주는 오늘날의 완전무장과 같은 것이라 했는데요, 전신갑주가 됐건 완전무장이 됐건 전쟁을 위해 군인들에게 필요한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같은 것들이 평화로울 때는 어떤 것이 될까요. 이를 사도 요한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계19:8)이라 표현하고 있는데,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19:9)이 입는 옷이지요. 그리고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19:8)이고요.

마22:1-14은 예수께서 왕의 아들 혼인잔치를 들어 비유로 말씀하시는 장면인데요, 왕은 하나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으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가리키고 있지요.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이신 임금은 사환들에게 성도로서의 ‘옳은 행실’로 지어진 세마포 예복을 입지 않은 하객들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라고 명령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양의 혼인 잔치’란 어떤 것일까요. 그건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영접한 성도들이 그분과 연합함으로 하나가 되어 그분과 영원토록 진정한 기쁨을 누리는 것을 비유한 것이지요. 천국의 시민이 된다는 말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신 말씀의 그의 나라의 국민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요, 그러려는 우리의 발을 걸어 실족케 하는 악한 세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무서워 벌벌 떨 것은 없어도 방심하는 것도 금물입니다. 전신갑주를 입고, 세마포 예복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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