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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제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박은희  |  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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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년 04월 07일 (수) 15:51:02
최종편집 : 2021년 04월 07일 (수) 15:51:57 [조회수 : 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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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은 제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단원고 2학년3반 유예은엄마 박은희전도사(화정교회)

   
 

4월1일 달력을 넘기며 가슴 한 가운데로 무거운 추 하나가 쿵 떨어지는 기분이 듭니다. 벌써 7년째 맞는 4월이건만 올해도 도통 마음이 진정 되지를 않습니다. 특별히 7이라는 숫자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완전 숫자입니다. 7일을 지나 다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몸이 기억하는 이 7일의 주기는, 완결과 새로운 시작의 기운을 상기 시키는 숫자이건만 여전히 열린 결말로 제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황이 마치 건전지가 다 되어 한자리에서 계속 흔들리는 시계 바늘처럼 답답하고 힘겹기만 합니다. 문득 아이와 마지막 아침 식사를 한 게 7년 전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미친 듯이 요동칩니다.

2014년 4월16일 참사가 있기 9일 전인 4월 7일 저는 단원고 바로 옆에 있는 작은도서관에서 작은 행사 하나를 치루고 있었습니다. 지역의 작은도서관협의회의 1대 회장으로 취임하는 행사였습니다. 행사 도중 인사말에서 저는 말했었습니다. “벚꽃이 눈부신 저 학교에 제 아이가 있답니다.” 참사가 제 아이를  빼앗아가기 전 저는 그렇게 평범한 삶을 살면서 스스로에게 만족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참사의 된서리를 맞으며 거리로 떠밀려 나와, 길에서 국회에서 그리고 청와대와 광화문에서 잠을 자고, 전국을 돌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진상규명을 위해 애원하고 울부짖는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이 길은 제가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저희아이들은 이런 참사의 피해자가 되기를 조금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선택하지 않은 자리로 내몰린 저희를 향한 일부 왜곡된 시선들을 보면서 저는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한 차별과 혐오를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돈이 우선인 사회에서 자라는 혐오

참사가 있던 날 뉴스에 오른 자막 중 하나가 보상금에 관한 거라는 것을 나중에 알고 소름이 끼쳤습니다. 아직 아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언론은 아니 언론 뒤에 숨은 일부 시민들은 슬픔보다 부러움을 품고 가족들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배 아파했습니다. 뒤늦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가족들은 나가서 뭔가를 사는 게 무서웠습니다. 보상금으로 집을 늘리고 가전제품을 싹 다 바꾸었다는 근거도 없는 소문들 때문에 밤에 몰래 마트에 가기도 했습니다. 저도 한 겨울 세탁기가 오래 되서 고장이 났는데 바꾸지도 못하고 맨손으로 빨래를 하다가 산처럼 쌓인 젖은 빨래를 안고 엉엉 울기도 했습니다. 거리를 나가면 모든 사람들이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들처럼 보여서 사람 만나는 것이 무서웠습니다. 악성댓글에 삶을 포기하는 이들을 어리석다고 생각한 저의 지난날들이 부끄러웠습니다. 은밀한 혐오가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참사초기 가족들의 모습은 모자이크 처리 없이 언론에 나갔고 피해자가 아닌 공인이 되어 일거수일투족이 평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가난한데 왜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냐는 이야기부터 이혼가정이 많다는 이야기, 학부모 가운데 어떻게 정치인 한명 없냐는 이야기 까지 왜 이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관심보다 부모들과 관련된 가십거리를 쫓는 언론들의 공격이 늘 무서웠습니다. 어묵을 희생된 아이들에 빗대며 조롱하는 이들, 단식하는 부모들 앞에서 폭식투쟁으로 비상식적인 행동을 이어가는 이들, 지금도 계속되는 ‘시체 팔이’라는 끔찍한 말들..... 지금 생각해보면 엄연히 그것은 폭력이었고 마땅히 대응해야할 사안이었지만 반복되는 혐오에 주눅이 든 가족들은 마음껏 싸워보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특히 이러한 혐오들은 믿기 어렵게도 교회를 통해 많이 전파되었습니다. 교회와 교인들이 그렇게 보상금에 관심이 많은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보상금-좀 더 정확인 말하자면 참사책임에 대한 마땅한 배상금-이 집행조차 되지 않은 때에 피해가족들도 모르는 배상금 액수가 교회안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빠르게 퍼졌습니다. 진실이 밝혀졌느냐 보다는 보상금액이 얼마냐는 데에 대한 관심이 더 컸습니다. 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처참했습니다. 향유를 깨트려 예수께 부은 마리아를 꾸짖는 제자들에 대한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요한복음 12장 6절) 어떻게 보면 우리들은 우리가 그렇게 손가락질한 가롯 유다의 모습을 그 누구보다도 닮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마태복음16장26절) 라고 말씀 하신 생명존중을 향한 예수님의 뜻은 교회 안에서 희미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 어떤 집단보다도 돈에 대해 민감한 한국교회의 민낯을 피해가족들은 보았고 그래서 교회라면 무조건 경계하거나 신자였던 이들이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차별이 아닌 나 대신이라는 마음으로

참사로 인해 거리로 나앉으면서 이미 거리에 나와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해고노동자들, 장애인들, 성소수자들 등 참사 이전에는 차마 다가가지 못했던 이들과 이웃이 되었습니다. 거리로 나온 우리들의 공통점은 서두에 말한 것처럼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참사도 해고도 장애도 성정체성도 선택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당하거나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남자와 여자, 인간과 동물도 태어나보니 이미 정해진 것들이었습니다. 다름에서 오는 차별은 내가 그들의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다는 이해로 아니 그들이 나대신 십자가를 지고 있다는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는 거였습니다. 외롭게 싸움을 이어온 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은 어찌 보면 나대신 겪는 수많은 고통에 대한 일깨움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사이전의 안락했던 나의 일상은 수많은 소외된 이웃들의 대신 아픔에서 비롯된 거였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절규가 그들만의 것이 아니듯 내가 누리는 안락과 풍요는 나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받치며 함께 연대하여야하는 한 몸이었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고린도전서12장26절) 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이 참사를 겪으면서 더 깊게 와 닿습니다.

세월참사의 원인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이 켜켜이 쌓여서 만들어진 참사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사회적 참사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복잡하지만 그래도 풀어내어야할 사건입니다. 참사의 진상규명을 통해 사회의 병든 부분들을 알아낼 수 있고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또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참사 직후 많은 시민들이 우리아이가 당했을 뻔 했다면서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또 수많은 원인 가운데 나의 책임도 있음을 느끼며 피해학생들에게 미안해했습니다. 시민 대부분이 이런 마음으로 미안해하고 어떻게 해서든 진실을 밝혀보려고 애쓴 것과 다르게 정부나 국회 그리고 검찰은 수사의 의지가 없어 보입니다. 저희 문제뿐 아니라 해고자,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문제도 좀처럼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만의 문제로 던져두고 자신들의 자리보전에만 급급합니다. 시민촛불로 바뀐 정권에서 겪는 냉대는 더 가슴 아픕니다. 차별의 해결은 너의 자리와 나의 자리를 바꿔보는데서 시작하는 것인데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를 않습니다. 간혹 일부 지각없는 이들의 조롱까지 더해집니다. 또 다시 망각의 강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7년 전 참사 이전과 다른 세상을 만들겠다던 약속에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모을 때가 되었습니다.

혐오와 차별은 결국 “내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가복음12장 31절) 는 예수님의 선언에 대한 거부가 깔려있다고 봅니다. 다른 곳도 아닌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약자와 피해자를 향해서 행해지는 혐오와 차별을 막는 일은,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을 올바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고난을 당하는 자들을 돕는 일이 우리의 거룩한 선택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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